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ori Jan 07. 2019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My tomorrow, your yesterday

 호우시절(好雨時節),  8월의 크리스마스, 건축한 개론, 너의 이름은과 같은 영화처럼 애틋한 영화들이 있다.  특히 청소년 시절부터 청춘시절에 보는 이런 영화는 사람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묘한 기분에 휩싸여 며칠을 상상을 해보던던 시절들이 아련한 추억 같다.


 일요일 밤에 골라 본 영화다. 우연히 만난 청춘 남녀의 발랄함이 아니다. 첫 만남부터 작은 눈물 방울이 묘한 기분을 준다. 식스센스처럼 혹시 저 젊고 이쁜 처자가 귀신 아닐까? 환하게 웃는 모습보다 그녀가 탄 지하철이 내달리는 모습과 플랫폼에 남겨진 젊은 총각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제목만 보고 골라서 본 영화인데 미묘한 슬픔과 아련함이 그려져 시작부터 부담스러웠다. 요즘 시대와 달리 잔잔한 감성을 볼 때 조금 더 오래전의 감상을 갖고 만든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나의 기대는, 지루한 기다림 또는 허망한 시간 낭비로 끝날 때가 많다. 불안함과 걱정은 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나미야 잡화점, 환상특급처럼 판타지처럼 시간의 흐름이 교차한다. 견우와 직녀도 칠석날이면 만나는데, 5년에 한 번씩 만나는 슬픈 인연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런 기분이 싫다. 애틋함을 통한 감성의 자극이 가끔 너무 잔인하다. 아예 만나질 못하게 하던가? 기억도 못할 운명이라면.


 나와 같은 존재이지만 다른 시간의 흐름 속을 살아가는 후쿠주 에미는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작가는 왜 이런 상상을 했을까? 점점 망각의 숲으로 잊혀가는 아름답고 애틋했던 추억과 기억의 소중함 때문일까? 


 그러다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교차된 시간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다. 지금 20살이면 에미는 앞으로 20년 뒤에는 소멸해야 하나? 타카토시가 100살을 살면 에미는 몇 살부터 삶을 시작한 거야? 그럼 이 아가씨는 어떻게 태어나지.. 이런 생각을 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로 했다. 부질없는 짓을 한다. 그래서 부질없는 짓이다.


 5년 만에 만나 30일을 보낸다. 당신은 내일 내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지만, 하루가 더 지나면 당신은 나를 잊을 것이란 설정은 저주다. 오늘 내가 만난 당신은 사라지고, 계속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의 과거와 만나야 한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 없다. 이 운명이 그들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강요한다. 타카토시는 그림을 그리고, 에미는 사진을 찍는다. 그 삶의 실체를 평평한 2D 종이에 남기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슬프다.


 만화 같은 영화다. '너의 이름은'이란 영화에서 "꿈에서 깨어나도 절대 잊지 않도록 서로에게 이름을 써주자"라고 말하듯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을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다. 밤에 괜히 봤어..


#mytomorrow #youryesterday #komatsunana


 


매거진의 이전글 도어락(Door Loc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