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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Sep 14. 2019

2천 년이 넘은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세우다

사기 명문장 100구

지자천려 필유일실, 우자천려 필유일득(智者千慮 必有一失, 愚者千慮 必有一得)이란 문구를 보면 참 당연한 말을 멋지게 써 놓았다. 똑똑한 사람은 완벽해 보이지만 그 똑똑함에 가려진 실수로  삶의 가혹한 맛을 본다. 바보 같은 사람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 한 번의 좋은 생각으로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풍부한 이유다. 이런 이유로 삶은 자신을 걸고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후진 없는 정주행의 게임은 거대한 도박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미래의 이정표는 없다. 내가 걸어가며 이정표를 쓰는 과정이다. 하지만 수많은 옛사람들의 이정표를 볼 수 있다. 그들이 현재를 다시 살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의 수많은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다. 그 기회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도플갱어처럼 머릿속에 흐르는 현재의 상황, 언젠가 경험한 감각을 이끌어낸다면 현재를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다. 그렇게 현재는 기원전, 천 년 전, 오백 년 전과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와 연결된다.


 사기(史記)는 본기, 세가, 서(천문지리), 열전, 표(연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김원중 교수의 완역본을 한 번 읽어봤는데 본기, 세가, 열전만 읽어도 2천 페이지를 훌쩍 넘어 책을 8권 정도 읽는 양이다. 열전이 가장 재미있고 다양한 고사들을 담고 있다. 나는 본기도 재미있고, 세가는 역사적 배경이 부족해서 검색을 통해서 자주 보충했지만 세가도 괜찮았다.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읽으면 사기의 고사들을 통해서 현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생각을 봤으며, 신동준의 "사마천 부자 경제학"을 통해서 화식열전을 풀어가는 방식을 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열국지, 초한지 계열의 책은 사기와 연결된다. 이 책은 대만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사기에 대한 한국인, 중국인, 대만인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샀다. 


 사기를 다양한 책을 통해서 조금씩 읽으며 재미있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지금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이다. 오후 내내 두 번째 하루를 경험하는 느낌이 실제가 아니라 머릿속이라는 사실을 오후 늦게 알았다. 현상의 변화 이면에 담겨있는 본질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변화가 내가 아주 조금 영향을 준 셈이다. 어차피 사람의 본질에서 나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도 깜박증이 잦아지는 나이를 조금이나마 보완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가 현재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첨단 과학이 만들어낸 물질적 현상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어떤 목표를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상황에 따라서 판단은 변하지만 판단하는 인간이란 종은 변함없다. 이 상수를 이해하는 과정이 인문학, 인간학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역사, 철학, 시, 서, 화, 예의 포괄적 활동을 통해서 그것을 외형적 특징과 전형적인 틀을 외우는 것도 인간의 다양함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다. 나는 그런 지식의 축적보다는 그런 지식을 현재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더 많다


 사기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고 쓸 수 있지만 현실에서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의를 외치며 정의를 지킬 힘을 키우지 않고, 입신양명을 외치며 실력을 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연모하며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바를 베풀어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기는 이야기를 통해서 뜻이 드러나게 쓰여있지만 그 뜻은 아주 상식적인 것들이 많다. 그 상식이 도드라지는 이유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현실에서 차고 넘치는 모지리 같은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스스로도 자유롭지 않다.



 The Difference를 지향하는데 종종 그 difference가 우리들의 상식적인 행동에 달려있다는 모순 아니 순리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2천5백 년 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렇다. 사기를 읽다 보면 한풀이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해봤어, 내가 해놨더니 이렇더라!"라는 환청이 들린다.


 본기, 세가, 열전 1, 열전 2의 순서에 따라서 뽑힌 100개의 문장과 고사가 아주 멀지 않다. 상당 부분 사람들도 접해서 익숙한 이야기와 사자성어들이 나온다. 각 편마다 그 편의 해석과 일상에서 활용할 만한 작가의 견이 더해서 재미있다. 사기와 또 현재를 살아가는 대만 사람의 식견을 더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또 재미가 있다.




사기 명문장 100구국내도서저자 : 공손책 / 양중석역출판 : 눌민 2015.11.0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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