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중록 (簪中錄) 1
中 이웃집 어깨 너머로 본 책이 강한 호기심을 끌었다. 무협 드라마, 만화는 봐도 무협지는 읽지 않는 희한한 취미다. 금년 '대군사 사마의'는 바쁜 와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무려 8년을 촬영했다는데 삼국지에서 전투 장면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 상황, 전략, 심리 묘사는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뜻을 알 수 없는 제목도 호기심을 끌었다. 비녀란 뜻은 이웃집 글에도 있었는데 다 읽고 찾아서 알았다. 목선을 드러낸 여인을 강조한 것인지, 비녀를 강조한 것인지, 이서백이 갖고 다니는 붉은 물고기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여인의 뒤태는 위험하다는 신호가 분명하다. 화장하고 치장한 여인은 우선 두려워해야 한다.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은 마음의 페르소나고, 화장과 치장은 얼굴의 페르소나다. 철이 들면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민낯의 여인들은 강하다.
긴 호흡의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한 장을 넘어설 때마다 대군사 사마의를 보는 것처럼 연상이 된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상상과 연상이 재미있고 치밀한 편이다. 가족 살인의 누명을 쓴 황재하(양숭고), 시크하고 마음을 드러내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완벽하고 조금 못된 기왕 이서백, 소란스럽고 눈치도 없는 시체 검사의 달인 주자진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전개와 속도감, 절제된 감정이면의 숨은 이야기들이 전후 맥락에 맞게 잘 이루어져 있다. 누명을 벋기 위해서 다시 범인을 찾아가는 주인공, 자신의 비밀을 간직하고 응원인지 관찰인지 세심하게 채근하고 보살피는 이서백의 불가근불가원한 관계도 보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어떤 기대를 하게 한다. 사람들이 세밀한 심리적 상황, 다양한 주인공들의 상황이 어우러져 지루함이 없다. 작가의 설정이 세밀하고 꼭 그 설정이 조화롭다. 저 붉은 물고기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길게 흘러갈 듯하다.
셜록홈스와는 또 다른 맛이다. 왜냐하면 동양의 운치와 맛이 정서적으로도 와 닿기 때문이다. 이 바쁘고 정신없는 시절에 야밤에 틈틈이 읽고 있는 것만 봐도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아주 흥미진진할 것 같다. 조선왕조 오백 년의 장희빈보다 더 재미있게 펼쳐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여인들의 순수함, 욕망, 자기애, 목표의식, 저돌성을 보면 아주 무섭다. 그저 "이쁘냐?"만 흥얼거리는 덜 떨어진 종자들이 잘 읽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길을 가는 이서백도 곧 그렇게 되겠지라는 상상을 해본다. 별수 없으리라. ㅎㅎ
정관의 치라고 일컫는 당태종과 위징의 고사가 "위정"으로 번역된 것은 오류인 듯하다.
잠중록 1국내도서저자 : 처처칭한 / 서미영역출판 : 아르테(arte) 2019.04.03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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