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하기 싫거든!
한국 사회에서 야근은 일상이다. 서울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가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유머가 있다. 지금은 은퇴 세대 선배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고도성장'과 '하면 된다'라는 정신력으로 일궈온 문화의 잔재라는 생각도 한다. 그때는 투입한 자원만큼 성과물이 산출되는 산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후발주자가 갖는 장점이다.
현대 사회를 관찰하면, 성장은 무작정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 수준이 업무를 감당할 수준이 되었을 때 투입에 비례할 가능성이 커진다. 구직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람을 찾는 기업이 많은 현상 사이에 이런 지식과 경험의 격차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와 산업이 고도화되었다는 반증이다.
2010년을 넘어서면 사회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산업의 고도화를 넘어가기 위해서 지식과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과 도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변화 속도는 매우 더디다. 전환점에서 요구하는 사고는 과거 현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파괴적이다. 혼동이 발생하는 이유다.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과거의 경험을 무작정 현재에 도입하는 근거 없는 용기가 발휘되는 경향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소모된다.
내가 하던 해외 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다. 중동, 유럽과 시차는 오후 시간부터 바쁜 이유가 되고, 미주와 이야기를 하려면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시간대에 시간을 바쁘게 쓸 수밖에 없다. 2-3년간 남미, 호주, 유럽 쪽을 담당할 땐 24시간 쉬지 않고 들어오는 메일이 살인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전화도 곤란할 때가 많았다.
출장을 다녀오고 400개가 넘는 메일은 로딩부터 압도적이다. 본인들도 바빠서 하나도 처리를 못해줬다고 미안해하는 선배들을 보며 "정말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해요, 일찍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 거예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시차 적응도 안되고 읽고 처리하려면 내일 저녁에나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부 파일 중 발주서와 주요 문서를 분류하고, 나머지 메일을 과감하게 전부 지웠더니 그날 마무리할 정도였다. 고객을 무시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제한된 시간에 전부 읽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해야 할 업무 우선순위에 따른 기준으로 처리했다. 지원진 메일에 대해서는 '정말 급한 고객은 반드시 먼저 연락이 온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시에 퇴근하려는 나를 보면 엄청 잔소리와 기가 막히다는 소리를 하는 선배들의 말을 들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정리되었다. 특별한 경우나 3교대와 같은 업무 특수성을 제외하면 야근은 없는 것이 좋다. 그런데 우리는 야근에서 자유롭지 않다.
근로기준법에 따라서 야근, 특근, 철야에 따른 수당이나 추가적인 교통비의 지급은 대기업 접하지 일상과 먼 경우가 많다. 규모가 작을수록 법률 준수율은 낮은 경향이 존재한다. 첫 직장을 크고 좋은 기업에 가는 것도 당연한 이유다. 이런 현상은 한국화(koreanization)가 어찌나 잘 되는지 외국계 회사도 미국과 한국에서 제도 운영이 동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제도와 일상의 차이만큼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수준과 운영 수준의 격차가 조금 커졌다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현재가 아닐까?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 수준이 얼마나 높아지는가라는 화두가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균형 잡힌 문명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하고 싶어서 야근 시간까지 업무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야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삶의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할 때가 야근이다. 물론 많은 사무직들이 대가를 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법률적 기준과 정서적 기준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야근을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수많은 하소연과 이런저런 부당한 놈들에 대한 뒷담화가 만발한다. Work & Life의 균형이란 나와 다른 4차원 세상의 이야기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수당 지급은 조금 다르겠지만, 외국기업 팀장들의 업무량을 보면 그들도 야근을 한다. 왜 어디나 어째서 왜 야근을 하는가? 나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야근을 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리더의 무능 때문이다.
관리자란 하위 관리자를 부려먹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기업이 R&R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인력의 장단점을 고려하고 배치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업무와 조직 목표와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보다 높은 성과와 동기부여를 이끄는 부분과 사람과 사람의 좋은 문화를 함께 구축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변화하는 업무, 사람들의 감성적 변화에 따라 조율과 균형을 끊임없는 조율하는 작업이다. 하는 일 없이 노는 것 같아도 리더에게 더 보상하는 이유는 필요하다. 리더는 자신의 역량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통해 시너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적인 말과 현실의 차이는 감정적 반응을 유도할 때가 있다. 리더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성원은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냐?'와 같이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에서 그 사람의 능력과 발전 단계를 넘어서는 일을 시키면 당연히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 리더가 직무와 역량을 판단하지 않고, 지원도 하지 않으며 떠넘기듯 일을 시키면 성과는 저조하고 직원은 지속된 야근의 후폭풍 속에 살게 된다. 퇴사라도 하면 다른 인력이 대체하고 조직의 업무 피로도는 더 상승한다. 그런 일을 리더가 처리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리더의 책임이 큰 부분이다. 프로세스로 봐도 주어진 업무를 사람이 무슨 잘못인가? 준비도 안된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한 리더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배임이란 자신의 의무를 하지 않는 일이다. 야근의 필요와 원인은 리더의 판단이 직급상 더 큰 영향을 주고, 그 지시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상위 직급자의 몫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시킨 대로 안 하고 본인 해석대로 일을 해서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 역할을 분담시켜야 한다. 리더의 안목이 중요한 이유다.
폼나게 상사는 한가하고 직원은 바빠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의 팀장, 임원, 대기업의 임원들의 생활을 보면 한가하지 않다. 사실 그래야 한다. 그들의 손에 몇 명의 삶이 달려있는데 노닥거리는가? 업무파악을 하지 못하는 상사에게 보고서를 쓰느라 자기 일을 늦게 남아서 하는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을까 한다. 업무 숙련도를 위해서 일부러 시키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이런 일이 야근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이유다. 야근을 가장 많이 하는 이유는 어쩌면 리더의 등신력이 가장 크다.
내가 미국 출장 중에 업체 부사장과 잠시 미팅을 했다.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 2일째 집에도 안 가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환하고 웃으면 맞이해주는 얼굴이 반가웠다. 동시에 그 나이에 유지하고 있는 체력에 감탄했고, 직원들이 몇 일째 자기들은 퇴근하는데 저 사람 정말 대단하는 말에 감탄했다. 리더는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앞서서 보여주는 사람이다.
야근이 일시적인 업무의 증가, 사건사고의 대응, 교육 차원의 단기간 숙련도 훈련을 위해서 필요할 때가 있다.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지속적인 현상이 되면 리더의 무능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제일 재수 없는 리더가 하위직급자들이 burn out 되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 조직장들 아닐까? SNS에 흔한 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리와 권위의 힘에 기대어 혼자 살아가는 것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타인의 시간과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미래가 밝다면 인간 문명을 새롭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그럴싸하지만 피곤한 형태가 있다. 자신도 할 줄 모르고, 하위직원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남의 회사의 부러운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올림픽 금메달이 갖고 싶고, 애꿎은 하위 직급자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조직의 발전을 위한 제안인가 본인의 영달을 위해 조직을 수단으로 사용하는가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기준이 존재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야근을 벗 삼느라, 달빛은 보지도 않고 땅만 보며 퇴근길을 나선다.
2) 야근을 초래하는 시스템과 사람들의 대책
야근이 일상화되면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다. 어차피 일찍 업무를 마감하면 다른 일을 더 시켜서 야근하고, 늦게 하면 마무리를 하느라 야근하는 일상이 된다. 이때 황당한 관리자들의 무지한 코멘트 중 "우리는 불이 꺼지지 않는 열정 있는 회사를 만듭시다"라는 말이다. 깨어있고 발전하는 취지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밤새 일하자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자발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계발과 도전을 위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만연된 비효율의 시스템이 동작하면 직원들의 대책은 이렇게 발현된다.
야근이 지속되며 정상 근무시간의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 야근은 신체적 피로감을 양산하고 좀비와 같이 산다는 느낌은 의욕 저하를 부른다. Work & Life는 균형이 아니라 구분이 없어진다. 국가가 백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정부는 정책을 통해서 추진하고 백성은 정책을 보고 난 뒤 대책을 수립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업 속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패를 다 보았는데, 이에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목표와 직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우는 방향이 된다. 결국 대충 하게 된다는 말이다. 리더가 시스템의 효율과 비효율을 분별해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방치가 되면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하면 더지랄"이란 감탄사가 남발하고 다시 문화와 조직을 추스르는 시간을 오래 써야 한다.
3) 분수를 모르는 리더, 손금 없는 자가 만드는
산업이 고도화되고 있다. 나사 돌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점진적으로 로봇을 사용하는 과정에 있다. 반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인력들이 존재한다. 최상급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가능한 인력 중에 없거나 극소수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박사도 못 푸는 문제가 있다. 특히 2000년대가 되며 기업의 지식수준이 대학과 동등하거나 역전하는 단계에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우리의 미래사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람의 잠재력이 현실화되는 과정엔 시간이 필요하다. 현안 문제의 수준과 자원 중에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현실에서 공짜 좋아하는 문화가 인력 문제에도 들어간다. 초등학생 수준 인력에게 술 한 잔 사주고, 칭찬 좀 하고 동력학, 유체역학 시험문제를 주고 잘 해결해 보라고 하는 예가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직무 폭탄 돌리기나 차도살인의 계략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신문기사에 나온 불굴의 의지를 갖은 인력은 그 이유 때문에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보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한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당연히 낮다. 문제는 고위층의 이런 한 마디에 손금 없는 자들이 이 어젠다를 이슈화하고 철야를 하고, 하지는 못해서 전전긍긍한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좋은 계획인데 실행하지 못한 사람들을 나무란다. 이런 일은 야근이 아니라 공염불이 맞다. 근로기준법으로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전기 쓰며 있음으로 야근이라 해야 한다. 흠이라면 결과와 책임소재의 불분명이다. 손금이 사라질 정도로 아첨하는 무리들은 작은 실력과 재주가 있다. 이점이 또 세상이 복잡해지고 일이 발생하는 이유다. 간신을 우습게 보는 관점이 변해야 세상을 더 냉철하게 볼 수 있다.
4) 일하기 싫은 때도 있다
자발적 태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감성적 동물이다. 출근길에 맘에 드는 사람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누군가 내 발을 밟아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기계는 전기 꼽고 돌리면 성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그렇게 동작한다고 설명서에 쓰여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분 좋으면 한 달이 걸리는 일도 하루에 해결하는 확률(매우 낮긴 하다)이 있다. 하루에 할 일도 일 년이 넘도록 방치하기도 한다. 기분이 나쁘거나, 그냥 오늘 좀 일하기 싫으면 대충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유지하면 좋겠지만 내 업무 처리를 기다리는 고객과 다음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독촉 때문에 후회 속에 야근을 할 수 있다. 이럴 때 마지못해 듯 대충 문제를 타인에게 던지기도 한다. 직무에 붙어있는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조금 더 다음 단계로 미루는 것이다. 운이 없으면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야근을 할 수도 있다.
5) 대충이란 원인을 찾아서
장문의 문서가 도착했다. 산만한 문장과 보고 내용을 줄여서 다시 보고하라니 옛날 대학생들이 하던 기술이 학교 졸업하고 오랜만에 봤다. 글씨 폰트를 줄이고, 줄 간격을 줄여서 반으로 만들어 왔다. 어른이 돼도 사람은 잘 안 변하나 보다. 어이가 없어서 둘이 마주 보고 한참 웃었다.
모두 시스템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조직에서 생활한다. 시스템이나 조직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순서도처럼 회사의 조직도를 잘 이해하면 이어달리기를 통해 지속적인 속도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지혜가 담겨있다. 시스템에는 흐름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바통처럼 생긴 다이너마이트를 건네주기 시작하는 일이 시스템 문제를 만든다. 만화에만 나오는 일이 아니며, 만화가 현실을 상징하는 것뿐이다.
대충 해서 영업한 결과가 대충 연구 개발하는 이유가 되고, 대충 연구 개발한 결과가 제품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작품으로 공장에서 거듭난다. 다시 어떤 분이 이런 일을 누가 갖과와서 승인 내고 진행했는지 조사를 하고, 일거리를 갖고 온 자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갖고 왔고, 해준다고 해서 진행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연구개발은 할 수 있는 일인지, 해야 할 일인지 분별도 못하냐는 잔소리를 듣고, 영업이 대단한 사업상 분석 결과를 근거로 요구해서 안 할 수가 없다고 변명한다. 생산하는 제조는 똑바로 개발도 안된 제품을 공장에 갖고 와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한다고 불평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잔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이 과정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하느라 누군가는 또 야근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의 중요한 사람들이고 실력자들이다. 이들도 그 재주로 인해 야근이 많다.
무엇인가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 속의 야근은 자신의 계발과 발전에 필요하다. 문제는 시간을 낭비하고, 사람을 불태워 재만 남기는 야근이다. 뛰어난 제갈량 밑에서 일하는 것은 나도 싫다. 쉴틈이 없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밑에서 일하던 집현전 학자의 태반이 과로사라는 농담이 있다. 이름이라도 오래 기억되는 야근과 과로 속에 성취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이도 저도 없는 현대의 직장인들이 삶과 일의 균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무엇이 균형인지 깨닫고 있는가? 균형은 누가 만드는가?
조직장을 하며 늦게까지 일하는 팀원들을 보면 내 탓이란 생각을 한다. 늦게까지 일하라고 말한 지 않는다.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합심해서 도전해 보는 과정이 야근을 부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개인 생활에 영향이 가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해석은 팀원들의 몫이지 나의 노력이 꼭 그러한 결과와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대신 내가 야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바를 그들에게 모두 전달함으로 내가 없어도 그들이 잘 운영할 수 있는 실력 배양을 도와주는 것이다. 당장 수당, 인센티브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이는 내 권한 밖의 의사결정일 때가 많다. 물고기를 잡는 법, 내가 아는 것이 비록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방법과 나에게서 갖고 간 것을 합쳐서 더 나은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예전에 공부해서 남 주냐는 집안 어르신들의 말이 그때는 이런 의미인지 몰랐다. 공부해서 남 줘야 한다. 많이 줄 수도록 많이 남는 게 삶의 영업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베풀어야 하는데 부족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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