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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Feb 14. 2020

상황이 바뀌면 판단이 바뀌고 격은 숨길 수 없다

초격차

 금방 생각났던 괜찮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쉽다. 책을 읽고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비교해 본것, 나를 돌아보고 거친 것과 미숙한 부분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한다.


 재작년에 나온 책이다. '격과 치'라는 책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데, "초격차"라는 멋진 단어로 재탄생했다. 국내 기업가들의 책을 읽으면 경험, 의지, 소신 그리고 약간의 운을 보탠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선진 기업과 뭔지 모를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말, 그 이상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업이라고 불리는 의미, 기업가 철학이 개인을 넘어 조직으로 형성된 사례를 아직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다. 물질 문명을 운영하는 의식 수준, 그 수준에 따른 행동 양식이 다르다. 그것이 차이다. 사람은 물질과 외형이 아니라 정신을 통해 그 사람의 격을 말한다. 나는 격(格)이란 말은 총체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업가를 통해서 기업 철학, 업의 정의에 관한 언급이 있는 첫 번째 책은 아닐까?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실전의 생각을 통해 작은 tip도 얻었다. 그러나 독자의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초일류 기업이란 모토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도 익숙하다. 90년대 중후반 초일류는 삼성이란 기업에게도 굉장한 화두였다. 경영전략, 전략경영이란 부분으로 삼성에 가서 이야기하던 혹독한 교수님이 생각난다. 20년이 조금 넘어 다시 초격차라는 단어가 초일류와 거리감없이 느껴지는 이유다. 부질없지만 '이런 저자의 사고가 10년만 먼저 한국에 자리잡았다면?'이란 생각을 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상상일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실력을 바탕으로 한 '기세'가 필요한 시대다.


 이 책을 읽으며 '손자병법', 레이달리오의 '원칙', '한비자', 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 게리 해멀의 '경영의 미래', '슈퍼플루이드 경영전략'과 같은 책들이 다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엘리트 정신(또는 자존감), 한비자와 같은 냉철함, 손자와 같은 치밀함 그리고 대단히 높은 관찰력이 느껴진다. 지도, 망원경, 나침반을 든 조타실의 주인은 분명 선장이 아니라 군함의 장수다라는 확신을 준다.


 1. 리더

 사람이 잡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사람과 직무 관점에서 해석하고 처리한다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특히 '사람은 닦아 쓰는 것이 아니다 vs 가능하다"라는 해묵은 문제에 관한 약간의 tip을 얻은 것 같다. 본성과 훈련의 과정에 대한 질문이 내게는 품성과 재능에 관한 문제로 해석된다. 이 두 가지는 alternative가 아니라 mandatory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이 이 선택을 요구하고, 그 결정은 의사결정자의 안목에 따른다. 그것이 어려울 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잘 하고 있는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변화, 그들과 함께 한 결과지만 리더는 공은 나누고, 과는 홀로 짊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황이 바뀌면 판단은 달라져야만 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완수할 것인가'에 관한 자문자답과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의 완곡한 글과 행동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행간일까?


 과거를 분석한 결과(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과정과 예측된 미래를 보고 다시 현재를 정의하는 과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일이다. 그 차이가 커다란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후자의 의미속에 명확한 방향과 목표, 열정, 도전정신, 투지, 기세의 크기가 다르다. 망한 결과를 분석하며 리더에 대한 비난을 꿰맞추는 전문가들은 많다. 과거에 망한 리더는 재기의 여지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망하는 방향으로 가는 리더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하는 전문가는 의외로 드물다. 여지도 없다. 문제가 터지고 하는 일은 준비라고 할 수 없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시간의 안배를 기획하고 정의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


 이 챕터를 읽으며 리더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예민하게 상황을 감지하며, 과감하게 올바른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를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을 함께한 스탭들의 노고와 역량도 보통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이순신이 돋보이지만 그 밑은 죽을 경을 칠 수 밖에 없다. "엄훠 야가 또 나간다냐~ 워메"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 조직

 작은 부러움이 있다. 사일로를 파괴하는 과단성과 과격한 역지사지의 방식을 적용한다.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판단이 바뀌는지'에 대한 의사결정이다. 그 배경에 대상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었다고 생각한다. 조직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모가 작아도 제한적인 범위에서 가능한 부분이다. 케인즈가 금본위제에 대한 비판과 금을 통해서 큰 돈을 벌고 한 말이라고 기억한다. '상황이 바뀌면 판단이 바뀐다. 경은 어떠한가?" 내주에 "경은 어떠한가?"라는 말에 노이로제 걸린 녀석이 있다. 나 때문에...


 심플이란 말로 수렴하는 조직도는 거대한 기획의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명칭으로 불리는가는 어떤 것의 정체성을 확정한다. 그 정체성안에 본질, 기능, 역할, 책임, 미래가 담긴다. 나는 심플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길게 쓰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한 줄, 한 단어로 줄이는 고통만큼 쉽지 않다. 일상의 관찰을 통한 통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뇌의 시간, 홀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 선배들로부터 그런 조언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라는 회의 문화 부분은 공감이 깊다. 저자 스스로 외로움을 고독으로 그 고독함을 성과를 도출하는 에너지로 활용한 것은 아닐까? 이 한 마디가 저자가 살아낸 시대의 특성과 발전 단계, 장벽을 내포한다. 나와 같은 세대에서 이것을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넓게 형성된 문화를 단시일에 끊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익숙함을 떨치는 것은 밥을 끊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 될 때가 많다. 회의에서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 질문은 타인이 마음을 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아직 한국문화는 묵묵부답과 분주한 상하좌우 눈알 굴리기 운동으로 끝나는 일이 너무 많다.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논리력과 사고력이 떨어지는 일이고, 수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관한 확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배울 의지도 없으니 묻어가기 전략으로 입 닫고 눈알만 분주한 경우가 많다.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3. 전략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손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끝이 없는 준비가 너를 영광케하리라'는 감언이설로 들릴때가 있다. '끝이 없는 준비'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과도 미래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판단과 선택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문고리를 잘못 잡으면,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경영자의 역할에 적시 의사결정도 있지만 올바른 의사결정도 있다. 좋은 결과는 좋은 선택에서 시작하고, 적확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위한 기본 전제조건과 같다. 이를 통해서 방향을 선명히하고, 버려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을 상황에 맞게 분별할 수 있다.


 초격차 전략은 그 단어만으로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내겐 명확하다. 기업이란 조직은 분업을 전제로 순서를 배열하고 역할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고도화를 위해서 배수진을 쳐 투지를 이끌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게하는 방법은 인상적이다. 시장환경과 기업내부 환경을 이 전략을 통해서 alignment한다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지향해야 할 과제다.


 세계적인 선도 IT기업은 어떻게 자발적으로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가 사용한 방법은 현실적 타협이다. 초격차라는 단어세도 그런 의미가 과거의 아쉬움도 포함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한 환경은 반쪽짜리 방식을 쓸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기도 하고, 이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숙제가 된다. 지금은 임시방편이다. 사람들은 관성에 따라 하던대로 한다. 현실에서 좋은 말과 소통을 통해서 진행하면 정말 좋은 방향으로 가는가? 그래서 나는 '성인군자나 하는 일은 못합니다'라고 윗분들께 표정하나 안바꾸고 말한다.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의 완곡한 표현이나 오해를 많이 산다. 왜냐하면 나는 표준정규분포 곡선을 볼 때마다 오른쪽의 1%와 왼쪽의 또 다른 1%는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산다. 그래서 오른쪽의 1%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왼쪽의 1%를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성공의 방식은 미래와 같이 불확실하지만 망하는 방식은 훨씬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여건이 아쉽다. 저자는 적자부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말한다. 내가 접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프로세스를 말하지만 잘 관찰하며 프로세스대로 안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핑계가 넘쳐나는데 상하좌우 눈치보면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떠들면 결론은 내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의 실존적 문제다.


 협상에 대한 고수의 풍모가 있다. 필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조를 설계하고, 타인의 인지를 강요하지 않으나 상황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타인이 인지하도록 상황을 설계한다. 그러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지 않아도 타인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쉽게 표현하면 타인에게 병풍을 쳐준다. 잔치상을 줄지, 향을 피울지는 상대방 하기 나름이라는 대단한 자신감이 보인다. 내 경험에서 이럴 때 변수는 의도적인거나 의도치 않았거나 상대가 눈치가 없는 경우다. 흥선대원군의 주사처럼. 학습과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이 부분은 학습한다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이기기 힘들다. 스스로도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면서 잘 하는 무아지경의 설계자를 만나면 그렇다. 그러나 학습과 노력이 잘 알아듣게 해준다. 그 힘이 대책을 세우는 능력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떼려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지쳐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은 오롯이 실력을 바탕으로 가능한 일이다.


 이 챕터에서는 '삼성이란 기업도 별반 차이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면 하수다. 한국 사회라는 문화가 제공하는 수준을 극복하기 위한 삼성이란 하나의 예를 보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얻는 사람이 고수다. 현재를 살아내는 세대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동시에 가능성이다.


 4. 인재

 쉽게 읽을 수 있는 챕터다. 과거 젊은 동료들이 "00회사와 경쟁하는데 가격이 정말 낮아요, 우리도 그 회사처럼 가격을 낮춰야 해요', "우리 회사도 구글처럼 좋은 환경이면 좋겠다", "아니 000은 이걸 왜 이렇게 한거야" 라는 말을 내게 했다. 나의 대답은 "00회사에 가서 그렇게 싸게 제품을 팔수 있도록 이력서를 제출해 봐?", "구글같은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구글같은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겠다", "000이 경력이 0년인데 그걸 기가막히게 하면 너보다 상관이지"라고 말했던 기억들이 있다. 염장을 지르려고 한 말이 아니다. 일상에서 "내가 그 유명한 000을 안다"가 중요한가 아니면 "그 유명한 000이 나를 안다"가 중요한가의 차이를 이야기하려고 한 말이다. 이 챕터에서는 현실에 대한 공감과 내가 안고있는 어려움이 상존한다. 상황이 다르니 나의 판단이 달라야 하고 아직도 답을 찾는 중이다.


 타인을 바꾸려고 하면 싸운다. 사람은 오로지 나만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해야 한다. 이게 환장할 노릇이다. 모든 사람은 유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보람과 재미도 있다라고 말 해 볼 수는 있겠다........ 그것이 기대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함시킬 수 있는 상태가 오너쉽의 출발"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함시킬 수 있는 상태가 직원정신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개념이 사회에 안착된지 오래되다. 대표이사라라는 직책도 전문 경영인이란 명칭이 주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직을 수행하는 직원이다. 내가 "저는 100% 직원정신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사장님께 이야기 했다가 건조한 한 마디 "나가"라는 말을 듣고 아주 짧은 면담시간에 즐거워했다.


 직원은 조선시대 노비를 일컫는 하대의 의미가 아니다. 직원은 그 직책이란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다. 주인은 전문성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그 말에 전문직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선무당을 만나면 고생을 한다. 하지만 주인은 알아서 주인정신 갖는다. 직원은 직원정신을 갖아야 한다. 내껀 원래 잘 챙긴다. 남의 것은 잘 못챙긴다. 재미있고 쉬운 것은 돈 주고 안 시킨다. 왜 유체이탈처럼 직원이 주인정신을 갖으려고 안달이 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건 책의 내용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


 유비가 삼고초려를 통해 채용한 제갈량이 직원인가? 주인(왕)인가? 제갈량이 주인정신을 갖으면 역성혁명이다. 제갈량이 왜 채용되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나는 왜 채용되었는지를 돌아보면 된다. 제갈량이 어떻게 넘버투 재상이 되었는지와 내가 왜 아직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인지 지피지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깨닫게 된다면 관리자로써의 역할과 책임도 역지사지로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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