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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Apr 15. 2017

프로에서 마스터

내게 가당키나 한 말일까?

  Professionalism (전문직업의식, 프로기질, 전문가 기질, 전문성), Master(대가, 마스터), Legend(전설적 인물)란 단어를 최근 많이 생각해 보았다. 직업을 갖고 전문성을 쌓아가고 그 전문성을 넘어서는 사람들을 보고 만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업과 professionalism이란 낮은 수준에 한 가지 획을 긋고 안주하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또 나의 수준은 어떠한가에 대한 자문자답도 하게 된다.


 일본을 왜놈과 일본인으로 구분하는 나지만 영업적으로 일본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고 복이다. 미국의 Buying office 아시아 지사와 거래할 때에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응원해주던 분이 있던가 하면, Yamaha에 납품하는 장비를 할 때에는 일본의 높은 기구설계능력, 품질검사기준을 하나씩 가르쳐주던 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Panasonic출신들의 높은 모노즈쿠리(장인정신)와 스리아와세(연마기술)을 다시 체험하고 있다.  유럽, 중동, CIS, APAC 지역을 주로 담당하는 입장에서 일본 영업의 체험은 느슨해진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된다. 그렇다고 일본 시장의 특성만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에 목표를 두고 전문성을 쌓는 것이 좋지만 동시에 이는 더 넓은 시장의 입장에서는 편견이 되기도 한다. 그 특성에 묘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Professionalism과 Master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한 업종에 종사해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거쳐서 베테랑 또는 professional 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내 업종에서 계속 변화하는 지식, 기술, 시장을 볼 때 어떤 기준을 갖고 professional 하다는 말을 할 것인가? 이 부분은 계량적으로 입증할 기준을 만든다면 대단히 유용하거나 학술적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이 아직도 자주 읽히는 이유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은 어느 업종이나 아주 소수다. 그렇다면 또 Master라고 불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학술적인 분석과 지식이 부족한 내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기준을 생각해 본다. 언제나 항상 뛰어난 실력을 내는 선수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의 차이, 엄청나게 잘 팔리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과 도자기를 만드는 인간문화재, 항상 꾸준한 실적을 담보하는 영업인력과 사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업인력, 나는 단순하게 프로와 마스터의 차이라는 접근을 하게 된다.


 일본인들의 품질 관리를 경험하다 보면 식스시그마, ISO 9001과 같은 기준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끊임없이 why를 던진다. 장독을 갖고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고려청자에 근접하기 위한 지속적인 도전을 한다. 사업적으로는 그런 도전이 투입 대비 효용의 한계점을 넘어서 막대한 투입 대비 얻는 이익이 적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문화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면 해야 한다는 엄청난 세밀함의 문화를 통해서 professionalism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빨리빨리라는 적절성과 속도에 집중한다면 그들은 완벽이란 가치를 속도와 적절성보다 높게 추구하는 가치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능력을 갖은 일본인들을 만나는 것은 쉽다. 문화적인 차이가 한국인이라면 금세 '그 정도 하면 되지 않았나|?'라는 말의 용도를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이런 논리적인 접근 외에 다른 아우라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 뛰어난 검술 능력을 갖은 제다이와 Master Yoda의 차이처럼 말이다. 


 프로들과 일하다 보면 사실 피곤하다. 대충 넘어가는 것이 없이 꼼꼼하고,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준수하며, 시간적인 일정을 정확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계획 대비 차질이 생길 때 이를 참지 못하는 성질머리를 볼 때도 있다. 그래서 시킬 때야 상관없지만 부림 받는 입장에서 감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좀 더 나은 성과와 결과물, 이에 대한 기쁨과 만족이 이 보다 크다. 이런 보상이 좋은 기억을 만들지만 다시 함께 할 때 꺼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Master들의 차이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품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자연스러운 존경과 따뜻함을 통해 스스로 열정을 만들게 할 뿐만 아니라, 성과라는 감동을 넘어 스스로의 만족과 감동을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압박의 방식이 다른다. 무엇을 하라도 닦달하지 않기도 한다. 영화처럼 단순한 무한 반복을 통해서 그 미세한 차이를 스스로 발견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의 목적인 그것을 했을 때의 이득과 효용,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감내해야 할 사항과 비용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나를 감싸 버린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환경적인 접근 설계는 대상자가 스스로 자발성과 마음으로 존경을 스스로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논리와 수리로 진행되는 경제, 경영분석의 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보통 말하는 깨달음, understanding이 아니라 insight를 구축해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논리적인 효용은 단기적인 경향이 있다. 현재의 역량을 기준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대의 결과를 얻으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마스터는 현재의 역량을 키워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에 내가 생각하는 Master의 방식이 항상 좋은 방식이라고도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이런 방식이 좀 더 큰 효용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왜 이를 굳이 구분하는가 하면 Professionalism의 인력과 Master는 협력의 관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단기적인 완벽과 빠른 상황의 대응은 우리가 말하는 베테랑, 프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현업의 전문성, 변화를 따라가는 능력도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야의 대가, Master는 Professionalism의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마음의 눈을 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기계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열정을 심어주고, 스스로 역량을 키워줌으로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의 최대 가능성을 늘려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문제라면 이해되지 않는 것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한 분야에 종사하면 Professionalism의 단계를 지향하고, Master의 단계를 꿈꾸면 이루어 간다고 생각한다. Master의 단계가 된다는 것은 아마도 사람을 키워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도 professionalism이란 허명 속에서 헤매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저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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