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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재 Sep 26. 2017

한글을 ‘우수한’ 문자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조원형

[제67호] 인사동칼럼

한글을 ‘우수한’ 문자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조원형


1.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

 

 오는 10월 9일은 571돌 한글날이다. 해마다 그래 왔듯이 이날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이야기하면서 ‘한글’뿐만 아니라 ‘한국어’에 대해서도 매번 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보자.

  먼저 한글이 ‘과학적인’문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과학적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뜻밖에 그리 많지 않다. 학교와 사회에서 단지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라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발음하는 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서 자음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어의 모음조화 규칙을 반영해서 모음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음의 경우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ㄱ, ㄴ, ㅁ, ㅅ, ㅇ이라는 다섯 글자를 만들고 발음이 거세어질수록 획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지면 관계상 언어학적으로 정밀한 설명은 되도록 줄이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간단하게 풀이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기 바란다.

  (1) ㄱ은 혀의 뒷부분이 입천장 뒷부분(여린입천장)에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을 앞쪽으로, 오른쪽을 뒤쪽으로 간주하면 ㄱ은 혀의 뒷부분이 위로 올라간 모습을 단순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ㄱ 발음을 할 때 실제로 혀 모양이 그렇게 된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아음(牙音), 즉 어금닛소리라고 했다. 입천장 뒷부분이면 어금니 근처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그리고 발음할 때 혀의 모양은 똑같이 만들고 소리만 좀 더 거세게 내면 ㅋ 소리가 나는데, ㅋ이라는 글자는 ㄱ에 한 획을 덧붙인 것이다.

  (2) ㄴ은 혀의 앞부분이 잇몸 쪽에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역시 왼쪽을 앞쪽으로, 오른쪽을 뒤쪽으로 간주하면 ㄴ은 혀의 앞부분이 위로 올라간 모습을 단순화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ㄴ 발음을 항 때 실제로 혀 모양이 그렇게 된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설음(舌音), 즉 혓소리라고 했다. 혀의 여러 부분 가운데 감각이 가장 발달한 혀끝이 잇몸에 닿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으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발음할 때 혀의 모양은 ㄴ과 같아지지만 조금 더 강하게 내는 소리는 ㄷ, 그보다 더 강하게 내는 소리는 ㅌ인데 ㄷ은 ㄴ에서 한 획을, ㅌ은 두 획을 각각 더 그은 글자이다. 획을 많이 추가할수록 소리가 거세어진다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ㄹ은 발음하는 방법이 ㄴ, ㄷ, ㅌ 등과 조금 다르지만 혀뿌리가 입의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점에서는 ㄴ과 비슷한 점이 있기에 ㄴ에 획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었다.

  (3) ㅁ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순음(脣音), 즉 입술소리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두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다. 그 모양은 한자 입 구(口) 자와 똑같이 입의 모양을 네모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보다 소리가 강한 ㅂ은 ㅁ에 두 획을, ㅂ보다도 소리가 더 강한 ㅍ은 ㅁ에 네 획을 각각 추가한 글자이다. ㅁ이 대칭적인 형상을 갖추고 있으니 획을 추가할 때도 대칭이 되도록 두 획과 네 획을 추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ㅅ은 이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이를 치음(齒音), 즉 잇소리라고 했다. ㅅ을 발음할 때는 날숨이 윗니와 아랫니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잇소리라고 부르고 글자도 이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다. ㅈ, ㅊ은 ㅅ에 한 획과 두 획을 각각 덧붙인 것으로서 ㅈ은 ㅅ보다, ㅊ은 ㅈ보다 소리가 거세기 때문에 각각 이런 모양이 생겨난 것이다.

  (5)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후음(喉音), 즉 목구멍소리라고 불렀다. 다만 ‘목구멍소리’라는 것은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초성 ㅇ은 아무런 소리가 없는 글자, 즉 묵음(默音)이다. 즉 ‘아’는 모음 ‘ㅏ’만으로 구성된 음절이다. 그리고 종성 ㅇ은 엄밀히 따지면 ‘ㄱ’과 같은 계열의 소리다. 즉 혀 모양을 ㄱ과 똑같이 하고 콧소리(비음)를 내면 종성 ㅇ 소리가 된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이 종성 ㅇ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ㄱ을 변경한 글자 대신 ㅇ에 꼭지를 단 옛이응을 사용했다. 다만 ㅇ에 두 획을 덧붙인 ㅎ는 목구멍 쪽에서 마찰이 일어난 소리이니 목구멍소리라는 말 뜻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음 글자는 한국어의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을 각각 형상화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에는 점으로 표기되었던 작은 선이 긴 기준선의 오른쪽 또는 위쪽에 붙어 있는 것은 양성모음 ㅏ, ㅑ, ㅗ, ㅛ이며 왼쪽 또는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은 음성모음 ㅓ, ㅕ, ㅜ, ㅠ이다. 그리고 ㅡ는 음성모음에 속하고 ㅣ는 어느 쪽도 아닌 중성모음이다. 수학 그래프에서 1사분면에 점이 찍혀 있으면 양성모음이고 3사분면에 점이 찍혀 있으면 음성모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대립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라져 가는 추세이나(예컨대 1988년 이후로 ‘아름다와’가 아니라 ‘아름다워’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졸졸’과 ‘줄줄’, ‘탈탈’과 ‘털털’등 일부 의성어와 의태어의 대립 등에서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글의 글자 모양은 한국어의 발음법을 면밀히 분석해서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국의 음성학 연구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 한글은 결코 ‘우수한’ 문자일 수 없다


  그런데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해서 ‘우수한’ 문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문자도 다른 문자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이 ‘우수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문자는 단지 사람이 하는 말을 시각 기호로 옮겨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꼭 발음 기관의 모습을 본떠야 할 필요도 없고 그 밖의 다른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글은 단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뜨는 등 발음법을 글자 모양에 반영했다는 특징을 가진 문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발음법을 글자 모양에 반영했다는 것은 관점을 달리 하면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한글은 단지 한국어 발음법을 반영한 글자이기 때문에 한국어와 말소리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언어를 표기하는 데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한때 찌아찌아어 등을 한글로 표기하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으나, 말소리 구조가 단순하고 간단하면서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가 없거나 적은 언어면 몰라도 영어나 아랍어와 같이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가 많은 언어를 표기하는 데는 한글이 그리 적합한 문자라 하기 어렵다. 한글의 창제 원리를 살려서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를 표기하는 글자를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한글 특유의 발음 기관 상형 방식과 가획 방식이 양날의 칼로 작용해서 글자 모양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난점을 피할 길이 없다. 반면 글자 모양에 발음법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글자와 말소리를 자유롭게 대응시킬 수 있는 로마자는 별다른 제약 없이 편의에 따라 다양한 언어에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모양을 단순한 방식으로, 즉 발음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점을 찍거나 가획하는 방식으로 변형해서 다양한 말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발음이 비슷하면 글자 모양마저 비슷해져서 오히려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한글과 달리 로마자는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글자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글자를 읽고 구분하기가 한글보다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한글에는 없는 로마자의 장점이다. 이는 로마자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자나 키릴 문자 등 한글을 제외한 알파벳식 문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본래 라틴어 문자로 고안된 로마자에 다양한 방법으로 가획을 해서 베트남어 표기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이 그동안 여러 차례 고안된 바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번잡하고 불편해서 얼마 쓰이지 않고 사장되었다. 설령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되살린다 하더라도 글자 모양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로마자를 변형하고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보다 특별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렵다. 굳이 동국정운식 표기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이른바 ‘한글음성문자’등 한글을 바탕으로 고안한 말소리 표기법과 로마자에 기반한 국제음성문자를 대조해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글에 기반한 문자 쪽이 한눈에 보기에도 복잡하고 번잡하다. 이는 한글의 과학성을 고수하면서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표기하려는 시도는 실용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어느 한 문자를 다른 한 문자보다 일방적으로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우수하다는 말의 판단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수함을 단정할 수 있는 일방적인 판단 기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줄곧 ‘한글은 과학적이니 우수한 문자’라는 생각을 아무런 비판 없이 답습해 왔지만, 세간의 통념과 달리 과학적이라고 해서 우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글이 지난 ‘과학성’은 ‘우수함’을 가르는 일방적인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당초 그렇게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어떠한 것이 우수하다는 말은 그 밖의 것이 열등하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과연 특정한 문자가 어느 한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등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자 개성이 존재할 뿐 어느 누가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문자도 어느 특정한 것이 다른 것보다 우수할 수도 없고 열등할 수도 없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한글은 단지 한국어 발음법을 반영해서 만든 문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결코 다른 문자보다 우수한 문자도 아니고 열등한 문자도 아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우수함’에 대한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남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르려는 통념이 너무나 뿌리깊게 박혀 있다. 한글날만 되면 되풀이되는 한글에 관한 이야기마저 이러한 통념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개성이 존재할 뿐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면서 한글은 우수한 문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한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한자와 한문을 아는 사람들만이 지식과 사상을 독점해 온 불평등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것이 한글의 창제 목적이 아니었던가. 어디서든 어느 한두 가지 특성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람이나 사물의 우열을 가르고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을 구분한다면 이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 문자와 서로 맞지 않는 까닭에 그 문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현실을 외면했던 옛 사람들의 태도와 결과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중국 문자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심지어 ‘중화’와 ‘오랑캐’까지 구분해 가면서 중국 문자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최만리 같은 사람들의 행태와 비합리적인 잣대로 우리 문자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오늘날 사람들의 행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와 같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 대한 비이성적 우월 의식이나 열등 의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없으리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한글은 우수한 문자’라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타파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서 ‘우수함’과 ‘열등함’이라는 구분 자체를 넘어서는 논리를 구축했으면 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571돌 한글날, 2017년 10월 9일이 그 첫걸음을 떼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인권()을 생각()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인사동 칼럼

_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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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상기 필자 개인이 작성한 것으로서 한국 인권재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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