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악산은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에 있다. 산 입구에는 곡성 야영 텐트장이 있어 산을 오르는 사람보다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도 예전에 이 야영장에서 밤새 별을 바라본 적도 있다. 산은 초행길이었으나 입구는 익숙한 곳이라 낯설지 않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야영장을 지나 산길을 오르는데 도림사에서 내건 등이 오색찬란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시는 날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1달 늦춰졌다고 한다. 그래도 절은 등이 하나의 풍경이니 왠지 부처님 앞에서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악산 입구>
도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末寺)라고 한다. 원효 대사가(617~686년) 도림사를 지을 때 풍악 소리가 온 산을 진동해 산 이름을 동악산(動樂山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계곡에서 울려 퍼지는 물소리가 그동안 감염병 때문에 불안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몇 해 전인가 부산에 있는 절에 갔을 때 주지 스님은 내게 울화가 있으니 물소리를 많이 들으라고 했다. 가능하면 집 안에 어항을 두고 물 그림도 두면 좋다고 했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니 화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저절로 화가 사그라질 것 같았다.
도림사에서 시작해서 동악산으로 오르는 길에 이정표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정표는 맞지 않은 듯 지워졌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으로 인해 원래 표기된 것을 억지로 지우고 돌로 새겨둔 표시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거리가 맞지 않았다. 정상 입구에서 100m면 충분한 길을 누군가 400m라고 나무를 긁어 표시했다. 한 그곳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정표가 지워진 거로 보아 군청에서 대충 짐작하여 만든 것 같았다. 그걸 또 사람들은 심술부리듯 지우고 자기만의 셈법으로 새겨놓았으니, 나 같은 초짜가 가기에는 약간 어리둥절한 산이었다.
정상은 해발 735m이다. 곡성읍 서편 산악회에서 만든 돌탑 밑에 정상 표지판이 있다. 나는 블랙야크 수건을 꺼내 100대 명산을 입증하는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사진 찍길 기다리던 사람도 100대 명산을 찍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온 사람이었고, 어제 비행기를 타고 여수로 가서 조계산을 찍고, 오늘은 동악산을 찍고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가 찍은 개수는 84개라고 한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그가 왜 산을 오르는지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저마다 산을 타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죽도록 걸어야 하는 운명 같은 걸 타고난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걷지 않으면 고동이 제 살을 파먹으며 자라듯 내 안의 생각들이 나를 파먹고 자라 스스로 두려움을 두껍게 만들어 결국 나를 먹어 버릴 것 같다.
지난해, 처음 100대 명산에 도전할 때 강진 덕룡산에서 만났던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53개째라고 했는데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죽기 살기로 일주일에 서너 개씩 산을 탔다고 하는데 그의 혈색이 좋지 않았다. 머리도 민머리인 게 꼭 암 환자 같았다. 직접 물어볼 수 없었으나 ‘죽기 살기로’라는 말 앞에서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하산할 때 만났던 99개를 찍었다던 할아버지도 생각났다. 그는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1년 새에 99개를 찍었으니 앞사람과 같이 산에 미치지 않고서는 힘든 이야기이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정표’도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에는 이정표가 많다. 굳이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도 친절하게 이정표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거나, 갈라지는 길이 많거나 하는 이유로 이정표를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정표가 필요한 곳은 유명하지 않은 산이다. 그런 산은 이정표 개수도 얼마 안 된다. 코스가 단조로워서일지 몰라도 대게 그런 곳은 이정표 표시 지점과 지점 사이가 멀다. 한 길로 쭉 걸으면 되지만 그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구간이 길면 내가 잘 걷고 있는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작 있을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되는 곳에 있는 이정표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