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09, 선운산

친구가 묻힌 곳에서 만난 '찰나'의 순간

by 도도해

선운산에 가는 길은 늘 마음이 무겁다. 어릴 적 학교에서 야영훈련을 갈 때면 늘 가던 곳이다. 군기 잡는 선생님들이 싫었고, 캠핑용 버너에 불을 붙이는 게 너무나 두려웠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게 '' 죽음을 안겨준 친구가 묻힌 곳이기도 해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블랙야크의 100대 명산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가고 싶지 않은 산이다. 일행에게 그런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불편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금방 그칠 것 같았지만 올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비를 맞는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지만, 혹시나 감기에라도 걸리면 예민한 시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전 세계가 ‘코비드 19’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이다. 내가 사는 지역인 장성에도 감염자가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학원을 운영하는 터라 특히 몸조심해야 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올라가기로 했다. 빗방울이 굵어지거나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진달래>


선운사를 지나 석상암으로 올라서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이제 막 깨어난 야생화들이 계곡을 따라 피었다. 제비꽃, 현호색, 산자고를 카메라에 담느라 발걸음이 더뎠다. 간혹 길을 멈추고 친구를 흘려보냈던 쪽도 바라보았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머물렀다.


30여 년 전,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친구는 형제가 많은 집의 막내딸이라 귀하다고 해서 '오복'이었다. 나와는 비슷한 형편이라 더더욱 친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보고 한낮의 열기로 가득 찬 벤치에 앉아 하소연했다. 맞수로 생각하는 친구보다 성적이 안 나와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반가운 시절이었다. 사춘기라는 녀석 때문에 늘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나라서, 그녀의 그런 하소연조차 귀여웠다.


힘내자, 2학기 때는 꼭 이기자.


그녀와 난 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그녀와 나, 다른 친구들은 빙 둘러앉아 교정을 바라보았다. 또 한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의 고민을 들었다. 교회에서 수련회가 있는 데 가고 싶다고. 학교에서 수련회 활동을 못 하게 하니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그렇지만 갔다 오겠다며 씩 웃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수련회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방학 중간에 보충수업을 나갔을 때 그녀의 소식을 들은 우리는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울먹이던 친구들의 난감한 모습. 오복이는 수련회 도중 물놀이를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고,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난 믿지 않았다. 앞니가 툭 튀어나와 복어처럼 생겼던 오복이, 마음이 따뜻했던 오복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자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오복이었다.


다섯째 되던 날 오복이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한 줌의 재로.


우리는 통학버스를 타고 오복이가 어릴 적 뛰놀았던 선운산으로 향했다. 선운산 입구 강가에 오복이를 뿌렸다. 강가를 가득 메웠던 국화꽃 송이들. 나는 아직도 그때 물길에 떠내려가던 국화꽃을 줍는 꿈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 깨어나면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는다.


살면서 가끔 우리가 오복이의 죽음의 원인이 아니었나,하고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가지 말라고 말렸다면 그녀는 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살다 보면 가끔 되돌리고 싶은 시절이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어떤 기억의 한 조각이 아른거릴 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 쉼 없이 살다가도 문득문득 내 발걸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들. 그 파편의 상처로 인해 나는 불안하고 우울한 날을 보내지 않을까.


불편한 생각들을 안고 걸을 때 안갯속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분명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지만 선명하지 않았던 실체가 나타났다. 그녀들을 만나니 어쩌면 오복이도 그렇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상인 수리봉에서 사진을 남기고 돌아섰다. 우리 인생을 흔히 안개에 비유한다는 데 안갯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안개가 걷히니 마치 신선의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다.

<정상인 수리봉>


안개가 걷히고 사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찰나’이다. 내가 오복이를 생각하고 오복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짓던 순간도 찰나처럼 보인다. 마치 한낮의 꿈처럼.

<안개 가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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