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이다. 누군가 이사오나보다. 창틀 넘어 살짝 보니 웬 이상한 아저씨다. 몇 년간 옆방이 비어서 적적했는데 누군가 온다니 다행이다. 이왕이면 잘생긴 아저씨가 왔으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아닌 듯싶다.
주인집아주머니 얘기론, 예순 살 아저씨라더만 얼핏 보면 사십 대 같고 낑낑거리며 짐을 나르면서도 실실 웃는 게 철부지 소년 같다. 이삿짐이라곤 궁색하니 그저 책만 보인다. 출판사에 다니나? 좀 이상한 아저씨다.
이십여 년 여기 사는 나도, 좀 무서워하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서릿발같은 눈칫밥을 극복하더니 이사 오자마자 옥상텃밭을 일궈내곤 흐뭇해한다. 흠. 생각보다 강단이 있어 보인다. 제법인데? 상추 다섯 장을 따오더니 첫 수확이라며 나더러 먹으란다. 뭐지? 이 허당스러운 귀여움이란?
어쨌거나 답례를 해야 하니, 김과 쓰레기봉투 새거 몇 장을 문고리에 걸어놨다. 어라? 참외 두 알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온다. 고맙단다. 제법 사회생활도 잘 해온 듯싶다. 하기사 대충 봐도 직장인 나부랭이로 보인다.
뭘 먹고 사나 알고 싶진 않지만 쓰레기봉투 내역을 스캔해 보면 대충 파악된다. 살림살이 경력 칠십여 년 차 나에겐 안 봐도 유튜브다. 에휴. 그럼 그렇지. 온통 일회용 용기 천지다. 저 굴러다는 건 뭐지? 아휴. 역시구만. 핑쿠빛깔 이즈백이라니. 혼자 사는 아저씨가 대충 뭐 그렇겠지. 안 되겠다. 독거노인 한 명 구제해 보자. 오랜만에 실력발휘해 보자. 카레를 한 대접 만들어 갖다 줬더니 또 득달같이 달려온다. 또 참외 두 알이다.
참외 덕훈가? 카레맛에 감동했는지 인도카레가 맞냐 인도 음식점을 하셨느냐 칭찬이랍시고 몇 마디 건넨다. 후훗. 내 음식솜씨에 감동 먹은 1인 추가요.
맑던 하늘에 먹구름 몰려오더니 와장창 비 온다. 빨래를 걷으러 나서보니 아이고 이 아저씨 수건이며 신발이며 건조대에 올려놓고 그냥 출근했구먼. 얼른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옮겨논다. 어느 날엔 이불 빨아놓고 건조대에 대충 구겨 놓고 그냥 출근. 넓은 빨랫줄에 널으라 말했건만 굳이 자기 방 문 앞 조그만 건조대에 대충 널어논다. 이 무슨 X고집이람.
아니면, 내 방문 앞 빨랫줄에 뭔가 널어놓기가 쑥스러운 건가? 나이는 먹을 만큼 먹고도 저러는 걸 보니 I 가 분명하다.
E는 아닐 터. 이불을 쫙 펴서 빨랫줄에 넓게 널어논다. 날이 좋으니 금방 마르겠지.
똑똑똑. 옆방아저씨다. 헛. 이번엔 뭔가 다른 걸 들고 왔다. 상추 몇 장과 설레임 아이스크림이다. 빨래 구해줘서 고맙단다. 날씨 더운데 시원한 거 드시란다. 드릴게 맨날 참외뿐이라 이번엔 새로움을 생각해 봤단다. 빨래를 구해줘? 새로운 설레임? 이 아저씨 말하는 거, 표현력 좀 보소. 희한한 아저씨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동네 경로당에 가보니 이 아저씨의 정보가 슬슬 돌아다닌다. 공원 에어로빅 아저씨로 유명하단다. 어쩐지 새벽마다 달그락거리고 나가더라니. 글도 쓴다더라. 출간작가는 아니지만 새벽을 거닐고 문장을 노니는 문학소년이란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가상학교도 다니는 대학생이란다. 어쩐지 새벽마다 불 밝혀 조곤조곤 들리는 소리가 인터넷사이버 강의였구나. 깊은 한숨소리와 콩콩 머리를 쥐어박는 소리가 이제사 이해된다. 늘그막에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꼭 물어봐야겠다. 왜 저러는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목소리는 꿀이 뚝뚝. 눈동자는 하트뿅뿅이다. 애인인가? 대충 추리해 보니 딸인가 보다. 학교에서 이번학기 올 에이뿔을 맞았단다. 딸의 성적얘길 하나보다. 어라. 통화는 끝났는데 문 앞에 멍하니 우두커니 앉아있다. 오잉? 우나보다. 노을 속에 비친 또르륵.
저것은 분명. 흔히 볼 수 없다는 사내의 눈물? 아니 저 인간 왜 저러는 거지? 점점 궁금해진다.
조용한 저녁이다. 오늘도 하루가 간다. 피곤하니 일찌감치 밥 먹고 얼른 자려는데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린다. 딩가딩가. 생초보의 서툰 솜씨다. 안테나를 올리고 레이더를 켜서 소리의 출처를 추적해 낸다. 옆방이다. 하이고. 이 아저씨. 참 다채롭게 산다. 저 나이에 뭐가 저리 하고 싶은 게 많을까,
혼자서도 심심하진 않겠다.
그나저나, 내일부터는 나도 저 아저씨 따라 새벽운동이나 가볼까? 관절도 아리고 허리도 쑤시니 이참에 에어로빅이라도 따라나서 해볼까? 늦었다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고 박명수 옹이 말한 바 있지만 웃자고 하는 얘길 테고, 늘상 바쁜 저 아저씨 따라 나도 뭔가 해보고 배워볼까? 일상이 심심하진 않을것 같은데?이따 퇴근해 오면 슬쩍 물어봐야겠다. 복지관 꽃꽂이 강좌에 어떻게 신청하는지도 물어볼 겸.
세상 조용한 절간 같던 한 지붕 네 가족 이 집구석에, 혼자 유난스레 부산스러운 저 아저씨덕에 뭔가 생기가 흐른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저 아저씨 별명이 80년대 이승기란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괜히 웃기다.
희한하고 이상하지만 자꾸 궁금해진다.
옆방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