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바꾸신단다. 대입학력고사를 앞둔 어느 날이다.
(넓을 호, 물 건널 섭) 호섭에서 (동녘 동, 선비 언) 동언으로 바꿔야 한다고 어느 등굣길에 말씀하셨다.
왜 바꿔야 하는지 언제부터 새 이름을 써야 하는지 정작 이름 소유주에게는 세세히 설명하거나 맘에 드냐
어떠냐 묻지 않으신다. 워낙에 말씀이 없으시니 과묵하시고, 이의제기를 위한 반론의 기회조차 허락지 않으시니 단호하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동언이다. 딱 한 말씀만 하신다.
“너는 책 읽기 좋아하고 늘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녀석이니 동쪽에서 온 선비, 동언이다. 그리 알아라.”
어린 호섭은 맥없이 어리둥절 등교했지만, 이 사건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개명이 그리 흔치 않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친구들이 나를 부를 때 어색해하거나 낯설어 놀리거나 할 그 상황과 장면이 떠오르니 이를 어쩌나 하며 오래도록 속만 태운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반드시 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나라에서 특별히 허용 해주거니와,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아버지는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공부하기도 바쁜 이 시기에 쓸데없이 웬 개명이냐고 야단이었던 어머니는 한복 가게 주인장이셨고
아버지는 셔터맨 이셨으니 애초에 승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그렇게 동언이라는 이름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사그라졌다. 약주가 과하신 날마다 “동언아”라고 부르시던 아버지의 나지막한 음성은 이제 역사의 추억으로 남는다.
아들의 이름을 바꾸려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지어오신 이름이 별로였던 걸까? 어느 유명한 작명소에서 손주의 이름을 지어와 뿌듯해진 할아버지는 “넓을 호 물 건널 섭”으로 날 부르신다. 할머니는 정작 다른 이름으로 날 부르신다. “호범아”. ‘호섭과 아범’을 한꺼번에 담은 의미인지 모르나 집안에서 오래도록 불려 온 아명이다. 호섭도 호범도 마뜩잖았던 아버지는 무려 20년 가까이 묵혀있던 거북한 마음을 개명이라는 도전으로 털어내었으나 미완에 그친다. 그 심정 또한 궁금하다. 이름을 바꾸면 아들의 미래가 좀 더 희망차려나 기대하는 마음의 바탕은 아버지의 사랑이리라 추측할 뿐이다. 이제는 여쭐 수 없으니.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생에 걸쳐 궁금했던 이 질문을 다시 꺼내 보면 성격, 성향, 인성, 경험, 외모, 나의 글 등 나를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여러 요소가 있겠으나 한 가지 더 있다. “이름”이다. 한 사람의 주체성과 유일무이성을 이름이라는 짧은 단어로 명명한다. 이 유일무이성은 기나긴 삶의 여정 속에 나의 본질을 대표하고 때로는 대변하며 나를 세상에 알리거나 보호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여되고,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굳혀지는 이름이 곧 “나”로 인식되는 게 당연하듯이 이름 속에 간직된 건 오로지 나 홀로 인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고유한 이름에는 나만이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단 세 글자 비용치고는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작명소에 내신 고심 많던 할아버지가 계시고,
담배 피우시던 조그마한 손으로 우리 손자 “호범이” 누룽지 한 사발 끓여주시던 다정한 할머니가 보이며,
아들의 이름이 마뜩잖으나 수신자가 “김호섭”인 어느 회사의 최종 합격 통지서 등기를 받아 들고 온 동네잔치를 벌이시던 과묵한 아버지가 계시며,
“너는 나이 들수록 네 아버지를 닮아가는구나.”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또박또박 “기모섭”을 부르시는 어머니가 계시다.
그러니 내 이름은 김요한, 배월희, 김창진, 최병란의 총합이다. 그 이름들이 없으면 내 이름은 증명할 수 없다.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훗날, 내 이름도 아들딸에게로 흘러가 손자 손녀의 이름과도 만날 것이다.
이래서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이름은 살아서 가족의 역사 속에 흐르는가 보다. 유구하게.
그러니 잘살아 내야 한다. 이름 석 자 걸고.
이래서 내 이름은 네 개다. 아니 하나다. “넓을호물건널섭아호버마동어나기모서바”
그러니 모여진 하나로서, 사랑해야 마땅하다. 나를. 내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