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졌다.
늘그막에 이 무슨 주책이람. 회사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밤에 잠도 안 온다.
(현충일 제외하고) 삼백육십사일 오로지 그녀 생각뿐이다. 마음은 붕붕 뜨고 호흡은 불안하다.
갑작스레 화딱지도 내고 신경질도 부리고 통사정도 해본다. 그녀가 정녕 토라지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든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고, 8차선 고속도로가 아니며 함께 오르내리는 굽이굽이 오솔길, 첩첩산중 고갯길이라고 사랑의 역사는 말한다. 그러하니, 내 마음 몰라 준다고 타박하고 째려보거나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억지로 끌어당겨 화들짝 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늘로 쏘아 올려진 서로의 마음이 안정된 궤도에 진입하는 때. 힘을 뺀 시간은 오히려 산뜻하니 가볍지만, 서로를 이끌고 나누는 힘은 강해진다. 숙성하는 시간의 힘, 사랑의 힘이겠다.
물끄러미 그녀를 아니, 그녀들을 바라본다. 그녀들은 바로,
서랍 속에 먼지 모양으로 소복이 쌓여 있는 미완성 글들이다. 눈물 콧물로 쓴 글, 아프거나 괴로운 글, 쓰다만 게으른 글, 누군가에게 상처 줄 것 같아 망설인 글들이다. 언젠가 두 손 맞잡고 궤도의 시간을 맞이하리라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괴롭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랑은 어렵다. 밀당도 하루 이틀이지, 어쩔 것이냐 이 대책 없는 사랑을. 글 쓰는 일이 이다지도 애정 절절 다정 혼절할 일인가. 너무도 좋은데 세상 어렵다.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쓰는지.
6년 전, 온 나라가 ‘사드’라는 단어로 시끄럽던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사업 중단으로 빚더미만 안고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도, 아내의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한마디 말없이 버텼지만, 그 막막한 길 끝에 쓰러지면서 더 깊은 침묵의 시간속으로 빠져들었다.
무릎은 꺾이고 눈빛은 초점을 잃었으나, 생사가 오가는 수많은 통곡의 시간들을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나만 절망의 계절이 아니었다. 모두의 아픈 역사를 지켜보면서 질문했다.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생명 자체보다 소중한 그것은 무엇인가?
정제되어 걸러진 부드럽고 선명한 과제는 역시 사랑이다. 더욱 사랑하는 일, 사랑을 더욱 나누는 일이다.
사랑했던 기억을 남기고 간다면 아마도 홀가분한 마음이려니, 흔들리는 몸 일으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으로 치닫던 마음을 붙잡아 쓰기 시작했다. 내 이름 석 자도 잘 써지지 않던 작은 노트에 사랑을 쓰기 시작했다. 안정된 인생 궤도를 이탈한 이 고장 난 인공위성은 폐기처분장 앞에서 이렇게 글을 만났다.
사랑의 출발점은 바깥세상도 어느 타인도 아닌 내 마음속 깊은 우물이라는 또렷한 점. 밖에서 안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라는 명징한 선. 점과 선을 연결하니 중심과 방향을 착각하고 길을 잃었던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 날 이후로, 묵묵한 걸음과 짧은 문장이 회복을 이끌며 손톱만큼의 전진을 이끈다. 다시, 나로부터의 출발이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이제 모든 걱정 내려놓고 오롯이 아빠의 삶을 살라던 딸의 고요한 눈빛.
그날을 잊지 못한다.
보르헤스의 명언을 좋아한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이 말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바꿔본다. “우리는 문장을 쓰지만, 그 문장을 살아낸다.” 공원에서 하루에 2만 보를 걷는 것처럼, 어르신 에어로빅 댄스팀에서 귀염둥이 막내로 활동하며 새벽마다 신들린 듯 춤을 추는 것처럼, 내게 쓰는 일은 살아내는 일이다.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니 꾸준히 배우고 쓸 수밖에, 저러니 사랑에 빠질 수밖에.
당연히 어려운 일이나 마땅히 좋아하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때론 막막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걷고 읽고 배우고 쓰고 살아갈 뿐. 다시 사랑할 뿐.
헤어날 수 없는 이 애정의 바다에 퐁당 빠져 내가 쓰는 이유다.
사랑도 감기처럼 숨길 수 없다 했던가? 나는 이 애절한 사랑을, 절절한 연애를 감출 수 없다. 애써 숨기지 않는 공개연애다.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이 늘그막의 연애에.
모든 쓰는 자가 그러하듯 기꺼이 사랑의 무게, 글의 무게를 감당하련다.
오늘도 여전히 냉탕과 온탕이지만
그녀는 다정하다.
이 사랑에 이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