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의 늪

by 김호섭

욕을 잘 하지 않는다. 급히 끼어든 운전자를 향해 무의식의 자동 반사신경으로 놀라움을 살짝 표현할 때를 제외하곤, 살아오면서 욕한 기억이 거의 또는 아예 나질 않는다. 배운 자가. 더군다나 요즘 배우고 있는 자가 욕이라니. 욕이란 나의 사전에 없는 말이다.


누군가 물어본다.


혹시 욕도 하세요?

(나는 답한다) 욕이란 무엇인가.

육십여 년 인생살이에 어찌 욕 한 번 안 하셨겠어요?

(이 인간 봐라) 환갑이란 무엇인가.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그렇지, 욕도 하긴 하시죠?

(어디 해보자는 건가?) 과묵도 병이라 한다면 병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후회한 적 있으세요?

(당신에게 욕하고 후회하고 싶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무엇인가

어디 한번 가장 센 욕 한번 해보실래요?

(마계인천 시장통 세상 찰진 욕 한번 들어보실 텐가) 언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싱거워졌는지 어물쩍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별게 다 궁금한가 보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 학교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간에 배운, 김영민 작가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 글을 실생활에 적용해 본 거다. 배우고 익히고 써먹으니, 때론 즐겁지 아니한가?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그러나 21세기의 냉정한 과학자가 느끼한 연애편지를 쓰던 20세기 청년이 더 이상 아니듯이,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의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 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이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 김영민 교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경사 높은 언덕배기가 있다. 젊은 청년들도 건장한 택배 아저씨들도 울며불며 넘는다는 경사각 대충 58.4도 통곡의 언덕이다. 새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언덕 앞에서도 늘 과묵하겠다고 다짐하건만 역시나 실패한다.

말문 트인 아이처럼 방언 터진 할머니처럼 세상에 없던 찰진 욕을 허공에 난사한다. (김수미 배우님을 귀엽게 보는 우리 어머니의 욕을 닮아있다)

누군가를 향해 쏘아대는 십자포화인지도 모르면서.

쏟아져 나오는 언어는 욕이 아니라 그저 시라고 떼쓰면서.


이 언어는 염통에서 쏟아지는 소리. 문학적 진정성 가득한 한줄기 싯구인 거다. 이 언어는 언젠가 광채의 세계를 만날 터이니 보무도 당당한 시가 틀림없는 거다.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냉소적인 목소리.

이 시대에 필요한 문학 아니겠는가. 하지만 문단에 발표하진 않는다. 아니 못한다.

문단이 날 모르니 당연하다.


아. 이 살벌 달콤한 (문학)달동네여. 세상에서 기울어진 구석이여.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아니더라.

이 허름하고 낡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 인생의 과제는 무엇인가.

과제란 무엇인가.

시험이란 무엇인가.


하…. 기말고사 시험을 망쳤다. 수능 금지곡에 버금가는 무엇인가의 늪에 빠져 공부도 하지 않고

이런 이상한 글만 쓰더라니.

무엇이란 무엇인가.


망칠 만하다.

치료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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