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도된 우연의 연속이라 했던가?
동네 복지관에서 모집한 옥상 텃밭 도시농부 되기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얼떨결이다. 산책하던 길목 현수막에 선착순이라 쓰여 있길래 군대 시절 전투본능이 깨어나 냅다 뛰어 들어가 신청했는데 덜컥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농부가 되었다. 건강히 그을린 턱선, 파르라니 선명한 힘줄,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하트 알통 단단한 다리와 굵은 땀방울. 내가 생각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세상 넓은 지구촌에는 연로하신 농부와 어린 농부, 스마트 농부도 있겠으나 대지의 깊고 넓은 터전에서 오로지 억센 두 팔과 두 다리의 힘으로 흙을 쟁이고 고르고 씨앗을 심어 새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수확하는 이미지 측면에서는 원초적으로 건장한 사내가 우선 떠오른다. (선입견. 맞다)
동물계, 식물계를 통틀어 뭐 하나 제대로 키워 본 적 없고, 신체 나이, 건강 나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가 농부가 된다고? 그 흔한 반려견, 반려묘, 반려식물과는 이생에도 전생에도 인연이 없어 보이며, 다만 오로지 반려주 이슬만 사시사철 애지중지 품에 끼고 사랑해 온 내가 농부가 된다고? 세상이 껄껄 웃고 하늘이 꺼이꺼이 웃다 엉엉 목 놓아 울 지경의 노릇이다. 하지만 어쩌랴 닥친 일 맞이해야지. 농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준비물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등산에 앞서 온갖 패션 아이템과 짱짱한 지팡이, 근사한 배낭을 사 모으듯, 낚시에 앞서 현란한 찌와 낚싯대를 준비하듯, 나도 농사에 앞서 근사한 밀짚모자, 비가 와도 철통 방어할 키 높이 장화, 날카로운 곡괭이와 번쩍이는 삽을 사야 할 텐데 이런 건 어디 가서 사야 하나? 다이소에 있을까? 당근 나눔을 클릭해볼까? 이런 한심한 생각은 곧 쓸모없어져 버린다. 복지관의 젊은이들이 가로 1m, 세로 60cm, 높이 30cm 정도의 나무상자와 흙, 비료를 싣고 와 세팅해 준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이 옥상 텃밭의 주인공이다. 역시 마지막에 등장한다. 상추와 고추와 이름 모를 나머지 식용식물의 새싹들이 가지런히 제 무대에 착착 안착한다. 농사를 위한 대단한 중장비와 기구들은 하등에 필요 없겠다. 물 뿌릴 바가지 하나와 흙을 꼭꼭 눌러줄 손가락 두 개만 있으면 되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농부의 마음. (농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 번 무릎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새싹에 혹여나 흙이라도 묻을까 애지중지이고, 동네 고양이들이 와서 뜯어 먹을까 G.O.P 경계 초병의 새파란 눈빛이 되살아난다. 하여튼 뭔가에 빠지면 ‘적당히’가 잘 안되는 성향을 이젠 그러려니 한다.
1차 수확의 날은 상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열흘 만에 새싹 상추는 장군 상추가 되어있다. 깜짝 놀란 농부는 재빨리 지혜의 여신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어머니, 얘네들이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건가요?” “끌끌 끌… 걔네들이 불쌍타. 이렇게 허술한 농부를 만났으니. 어서 수확해라. 너무 커지면 상추가 억새 지니 먹기에 안 좋다.” 떨리는 손으로 그 여린 상춧잎을 떼어낸다. 마음이 쓰리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다. 상추 태생의 의미는 관상이 아니라 식용이라니까. 아. 드디어 상추가 나에게로 왔다. (복지관 청년들) 자전거 타고 왔다. 총 열 장 수확의 날이다. 분배 계획을 짜본다. 일단, 한 지붕 네 가족부터. 아래층 주인 어머니 다섯 장. 옆방 어머니 다섯 장. 뒷방 아저씨는 방구석에 거의 안 들어오니 패스. 당근 나눔 계의 거목인 나에게는 영장. 허구한 날 받기만 할 거냐. 너도 나눔을 좀 실행해라. 계획이 섰으니 바로 행동에 돌입한다. 다섯 장을 맨손으로 전해드리는 건 배운 자의 예의가 아니니, 밥공기에 담아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상추를 보시더니 주인 어머니께서 피식하고 웃으신다. 흙이며 식물들이며 집에 들이면,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 똥 싸고 난리 친다며 엄청 눈칫밥 주시던 어머니께서 잠시 앉으라 하신다. 현관과 거실의 경계 어드메쯤에 어색하니 걸터앉자마자 “이봐요 2층 아저씨, 나 요즘 왜 이리 힘이 없고 의욕도 없는지 모르겠다오. 하루 한 끼 해 먹기도 힘들고 설거지도 지치고…”로 시작된 주인 어머니의 이야기는 삼십 분이 훌쩍 넘어선다. 어머니의 삶의 역사와 자식들 걱정, 죽음에 대한 불안들이다. 새로 이사 온 아저씨의 농부행세에 못마땅해하며 눈칫밥 주시던 모습은 온 데 간데 어디 가고 당신의 하소연을 하염없이 쏟아내신다. 상추 다섯 장을 소담히 담은 밥공기를 두 손 고이 받쳐 들고 새색시처럼 얌전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난 2층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어머니, 일단 식사를 잘하셔야 기운 차리세요. 오늘부터 이렇게 해보세요. 하루 두 끼는 꼭 먹자. 설거짓거리 안 생기게 반찬은 영양가 있는 반찬으로 몇 가지만 차리시고. 종일 혼자 방에만 계시니 새벽에 저와 공원 산책하러 나가기. 어때요. 걱정거리 다 내려놓으시고요. 다른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건강한 삶이라 하잖아요? 제가 농사 더 잘 지어서 다음 2차 수확 때는 삼겹살도 구워 올게요. 일단 잘 드셔야 합니다.” 주인 어머니의 피식 웃음이 함박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여튼, 평소엔 과묵 9단이지만 했다 하면 청산유수다.
다음은 2층 옆방 어머니. “똑똑똑” 장군 상추 다섯 장 담은 국 공기를 앞세우며 “어머니, 이것 좀 드세요.” 역시 픽 웃으신다. “아이고, 그걸 뭘 주세요. 아저씨 드셔야죠.” 손사래 치시는 허공의 얇은 빈틈에 국 공기를 잽싸게 요리조리 드리블하여 안겨드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혹여나 이번에도 이야기가 길어지시면 낭패이니 말이다. 이사 온 지 며칠 안 돼서 서로 서먹하고 어색했던 집안 분위기는 다음날부터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 주인 어머니는 반찬(무말랭이를 고추장에 버무린. 정확한 이름은 모름)을, 옆방 어머니는 쓰레기봉투 새것 몇 장을 문손잡이에 걸어놓으셨다. 이 사연을 지혜의 여신님께 보고했더니 즉석에서 뚝딱 잡채를 만드시고는 “두 어르신께 갖다 드려라. 감사 인사 전하고.” 잡채가 로켓 배송된 다음 날, 문제의 사달이 일어났다. 옆방 어머니께서 급기야 뇌물을 건네주신다. 아….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철컹철컹이 염려된다.
세 통으로 된 당당한 뇌물김을 백주 대낮에 받아 들고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작은 상추 몇 장일 뿐인데, 한 어머니 삶의 역사와 또 한 분의 정 깊은 뇌물이 내 삶에 어느 날 불쑥 들어왔으니 이것이 의도된 우연의 연속이라면 이 또한 삶 이련가?’ 작은 것의 나눔일지라도 오고 가는 것은 크고 다정하다. 굴곡 깊은 인생사와 고소하고 정다운 향기.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어쩌면 이런 우연의 연속극은 오래전에 보았던 <한 지붕 세 가족> 그것처럼, 재미난 인생 드라마와 닮아있다. 이사 오길 잘했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맛. 아니겠는가.
뭔가를 심고 키우고 틔우고 살찌워 수확하고 나누는 농부의 마음. 단어를 생각하고 씨줄 날줄 직조하여 끄적이고 지우고 다시 쓰고 쌓아 올려 제법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고 글을 지어 독자와 나누는 작가의 마음. 좀 억지가 춘향이지만, 농부와 작가의 마음이 아마도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당당히 우겨본다. 농부와 작가는 아마도 가까운 사촌지간일지도 모른다고 박박 우겨본다. 난 건장한(?) 도시농부이자, (출간작가는 아니지만) 당당히 쓰는 자이니까. 내가 농사지은 글 들은, 어떤 우연 속에 어떤 글의 인생 드라마나 삶의 대본을 쓸지 몹시도 궁금하다. 이왕이면 기가 막히고, 현란하여 드라마틱한 글들이 탄생하여 이 땅의 수많은 독자가 열광하거나 문학계 출판계 서점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역작은 무슨. 그저.
비 오는 어느 적적한 날이나 선선한 어느 산책길에서
괜히 쓸쓸하거나 어쩌다 신나는 어느 방구석에서
갑자기 눈가 붉어지는 어느 일터에서
애인과 헤어져 먹먹하거나 약속이 틀어져 혼자된 어느 카페에서
켜켜이 먼지 쌓인 도서관 어느 책상 앞에서
늦은 오후 햇살 가득한 퇴근길 버스 안 어느 여행길에서
씩 입꼬리 미소 짓거나 끌끌 혀를 발로 차거나 해가면서도
상큼하거나 맛나고 토닥이거나 정겹게 독자들에게 읽히게 될 글이면 좋겠다.
글맛 잃은 누군가에게, 새싹 상추같이 작더라도 맛나게 글맛 돋우는 글을 쓰고 싶다.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반딧불이같이 작더라도 힘이 되어주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어디 보자.
저리 내다보자.
옥상 텃밭에 상추가 쑥쑥 자라는지.
컴퓨터 화면 밭에 단어와 문장이 깊고 넓게 익어 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