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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의 문패

by 김호섭


토요일마다 엄니 계신 본가에 간다. 이런저런 동네 병원 순례를 마치고 아들의 첫 책을 엄니의 고운 손에 살포시 올려 드린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지난 시간이 꽃잎처럼 떨고 꿈결처럼 흐른다.

기력이 많이 쇠잔하시지만, 초롱초롱 눈빛으로 또랑또랑 글자를 짚어 가신다. 엄니가 물어보신다.

"프. 롤. 로. 그... 얘야. 이게 무슨 말이냐?"

"네.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부분이에요. 음... 가게로 치자면 간판? 같은 거죠.

<주단포목. 이화> 처럼요. 이 집은 한복 만들고 파는 집이요. 하는 말처럼 <이화상회>를 손님들께 알리는 머리말? 그런 거예요."

엄니의 다음 말씀에 숨이 턱 막힌다.


"문패 같은 거로구나."




노모의 가녀린 어깨너머로 생의 태도를 배운다.

생은 곧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나로서 걸어온 길을
문패처럼 내 거는 선언이다.

집집마다 내 건 문패는

옹기종기 오순도순 생을 이어가는 생애의 얼굴들
독단자로서 홀로 선 자들의 공동체다.

생은 존재이고
책은 사람이다.


건강하소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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