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Jul 15. 2024

문학소녀의 문패


토요일마다 엄니 계신 본가에 간다. 이런저런 동네 병원 순례를 마치고 아들의 책을 엄니의 고운 손에 살시 올려 드린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지난 시간이 꽃잎처럼 떨고 꿈결처럼 흐른다.

기력이 많이 쇠잔하시지만, 초롱초롱 눈빛으로 또랑또랑 글자를 짚어 가신다. 엄니가 물어보신다.

"프. 롤. 로. 그... 얘야. 이게 무슨 말이냐?"

"네.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부분이에요. 음... 가게로 치자면 간판? 같은 거죠.

<주단포목. 이화> 처럼요. 이 집은 한복 만들고 파는 집이요. 하는 말처럼 <이화상회>를 손님들께 알리는  머리말? 그런 거예요."

엄니의 다음 말씀에 숨이 턱 막힌다.


"문패 같은 거로구나."




노모의 가녀린 어깨너머로 생의 태도를 배운다.

생은 곧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나로서 걸어온 길을
문패처럼 내 거는 선언이다.

집집마다 내 건 문패는

옹기종기 오순도순 생을 이어가는 생애의 얼굴들
독단자로서 홀로 선 자들의 공동체다.

생은 존재이고
책은 사람이다.


건강하소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인천 #송림동 #평생 #고생하신 #한복집
#이화상회 #문패 #간판 #걷기 #쓰기 #그리기  #나의글  #좀더 #벼릴걸 #좀더 #잘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어머니

매거진의 이전글 호흡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