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온도

by 김호섭


며칠 전 주말이다. 오랜만에 카페 wknd hous에 갔다. 홍예문 윗길에서 자유공원 쪽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다. 이 카페는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멋지고 예쁘며 시원시원

하게 탁 트인 공간이다. 멋지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며 시원시원과는 거리가 먼 낡은 나는 이 카페에 잘 안 왔었다. 수 년전, 이 카페 건물이 새로 생길 즈음에 너무 근사해서 사진 찍으러 한 번 왔었고. 며늘아기가 나에게 처음 인사하러 온 날, 몇 날 며칠 고르고 고른 꽃다발을 그 어여쁜 아이에게 안겨주던 날, 아이들 따라서 왔었다. 두 번 이 카페에 와보고 오늘이 딱 세 번째다. 낡은 내가 이 공간에 자주 들락거리면 젊은 공간마저 낡아질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는 일부러 여기에 오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다 무심히 바라본 유리창의 문장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Hello, Spring!
Hello, Spring!
Hello, Spring!

애타게도 부른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이렇게나 애절히 환대하며 부르는데 매몰차게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봄은 그래서 삼 단계로 온다. 더디게 와서 뭉근히 졸다가 와르르 온다. 그래서 세 번의 인사가 필요한가 보다. 어느 날의 벚꽃처럼. 오늘의 나처럼. 그러니, 분명하다. 매사가 더딘 나, 내가 봄이다.

창가 쪽 풍광 좋은 명당자리에 당당히 앉지는 않는다. 그런 자리는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어느 한 구석, 있는 듯 없는 듯 아스라한 자리 하나 찾아 앉으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굳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로서 존재한다. "아메리카노 따스한 거 한잔요." 너무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봄은 시끄럽지 않다. 다만, 오늘 같은 환대에 조용히 응답할 뿐이다. 응답은 한 번만 해도 충분하다.

"안녕, 나의 젊음아."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현재의 두께와 폭과 시간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맨날 방구석에서 공원에서 트로트만 듣지 말고 가끔은 이런 근사한 공간에서 젊음의 노래도 들어보자. 그러면, 나의 오늘도 젊음이 된다. 마땅히 봄이다. 노화를 무작정 거부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노화 속에서도 얼마든지 젊음을, 젊음의 기억을 끌어 올 수 있으며, 그 기억을 마침내 오늘 현재에 파릇하게 피워낼 수 있으니, 이런 기회를 자주 찾아 나서자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새봄의 꽃이니까... 약간 흐린 꽃도 꽃이니까...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해몽은 무해하다.

억지가 춘향이라지만 춘향이는 예쁘다.


카페를 나서는데 한 문장이 불쑥 마음에 들어온다.
"환갑이 지나도, 봄이 이렇게 설레다니... 이를 어쩔 것이냐..."

오늘의 이 마음을 "주책"이라 부르진 말자. 세월은 흘러도 여전히 내 안에 생존해 있는 "낭만의 흔적, 생명의 기억"이라 부르자. 근사하지 아니한가. 가끔은 젊은이들의 카페에도 가보자. 잠시라도 봄처럼 앉아있다 오자. 제철 봄책도 몇 줄 읽어보자. 어쩌면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맞이하는 자의 온도일지도 모른다. 더디지만 오고야 만다는 믿음의 온도.

햇살 품은 창문 너머로 젊은 내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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