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세요. 강사님 보다 더 잘하시는데요!"
후훗. 벌써 세 번째 받는 칭찬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라니. 이렇게 된 이상, 이젠 그냥 허투루 넘어갈 문장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칭찬으로 도배된 이 문장으로, 신은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하시는가. 세 번의 의미를 집중 분석해 보자.
<어르신 건강 에어로빅>. 인천 자유공원 광장에서 하루 2회 * 365일 진행되는 운동이다. 나는 이 팀의 막내. 어느새 8년 차. 댄서다. 자신을 댄서라고 표현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살짝 망설였지만, 8년 차라는 시간의 무게에 살짝 기대어 본다. "나는 에어로빅 8년 차 댄싱머신 문학소년이다."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로다.)
처음 칭찬해 주신 분들은, 광장을 지나가던 네 분의 여사님들이다. 모두 60대로 보이고, 여고 동창생끼리 공원에 나들이 오신 걸로 추정된다. 광장의 댄서들이 모두 어머님들인데, 광장 구석자리 유일한 청일점 하나 눈에 들어왔는지 아저씨 주위를 포위하더니 따라서 춤을 춘다. "아저씨. 완전 잘 추시는데요? 우리 좀 가르쳐 줘요." 가뜩이나 낯가림 심한 부끄럼쟁이 앞에 놓인 이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도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가. 발그레 발그레 당황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솟아나는 도파민에 제가 마치 강사라도 되는 양, 구령도 외치고 팔다리를 쭉쭉 뻗는다. 하기야, 어떤 일이든 성과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어 본 지가 수십 년도 넘었으니, 그날의 나는 제정신 못 차리고 흥분할 만했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 균형과 불균형의 충돌... 온몸이 과부하로 쑤셔왔지만 아무튼, 생경한 날로 기억된다.
두 번째는 외국 관광객이다.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 쪽, 중앙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나라의 은퇴자들이 부부동반해서 요즘 인천으로 관광들 많이 오시니 그렇게 추정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나의 춤사위에 감탄을 하시며, 영어로 한참을 말씀하셨는데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요약하자면 "You are the best Performer! Amazing. Wonderful." 그런데, 사실 우리 팀의 에이스는 따로 있다. 그 녀의 이름은 "진주"다. 나보다 한 두 살 더 많은 60대 중반의 나이인데, 마치 30대 40대로 보일 정도로 파워풀한 댄싱을 구사한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오랜 기간 동안 춤으로 단련된 정통 에어로빅러임이 분명하다. 마땅히 그 녀의 자리는 맨 앞줄 센터 포지션이다. 모든 어머님 댄서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에이스는 에이스이고, 아무튼 나는 그날, 본의 아니게 글로벌 시티즌으로부터 글로벌 댄싱머신 인증마저 받아낸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어느 날의 해프닝 정도로 여겼다. 여고 동창생들이나 외국 관광객들이나 기본적으로 들떠 있는 마음의 상태일 테니, 그런 하이 텐션에서 출발해서 자연스럽게 도착한 칭찬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칭찬이 발생한 어느 날이다. 공원에 자주 올라오던 어느 젊은 부부가 세 번째 칭찬의 문장을 선사한 것이다.
"너무 잘하세요. 강사님 보다 더 잘하시는데요!"
이 문장을 뜯어보면, 앞 선 두 번의 칭찬 문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강사님"이라는 비교 대상과 비교 우위를 표현함으로써 문장의 구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쯤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질문한다. "정말요? 에이... 경로 우대성 농담이죠? 아하하하." 젊은 부부는 연신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아니에요. 여러 날 뵈었는데 정말로 잘하세요. 강사님은 좀 딱딱한 동작인데, 아저씨의 춤사위는 물 흐르듯 유연하세요~!" 비교 우위의 근거마저 구체적이다.
이 문장을 등에 업고, 아저씨는 과거와 미래로 휘리릭 여행을 떠난다. 20대 청년시절 디스코 열풍이 온 나라, 온 지구촌을 강타하던 그 시절. 인천 신포동의 유명한 디스코 텍. 바덴바덴, 앙앙, 우산 속... 등등에서 발바닥에 불나도록 춤추던 열혈청년이 보이고, 70대 노년시절 공원광장과 복지관, 문화센터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신나게 춤추는 열혈노년이 보인다. 참... 내가 나를 생각해 봐도, 귀 얇은 아저씨임에는 틀림없다. 제 멋대로 여행을 다녀온 후, 급기야 강사님께 다가가 호기롭게 질문을 던진다. "강사님, 에어로빅 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강사 자격증은 어디서 따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할 법도 한데, 강사님은 친절히 안내하신다. "왜요. 강사 하시게요? 완전 좋은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팀의 에이스는 아저씨거든요. 동인천 근처에는 없고 주안역이나 제물포 역 근처에 가면 에어로빅 학원이 있어요. 거기서 교육받고 자격증 따면 됩니다."
이 날 이후로, 나의 상상력은 폭발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정말 잘 추는 건가? 내 안에 숨어 있던 진짜 재능을 이제야 찾은 건가? 그러다가 찬 물도 한 바가지 끼얹어 본다.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어여삐 보아주고 좋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의 덕담이겠지." 제 나름의 균형을 잡아 본다. 내 춤사위를 내가 볼 수 없으니 무언가 객관적 판단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춤추는 내 몸의 그림자를 사진 찍어 보았다. 동영상도 찍어 보았다... 아뿔싸, 초등학생 학예회 율동에 가깝다. 큰 일 날 뻔했다. 칭찬 몇 마디 덥석 물고 서투른 기쁨에 나대다가 완전 대형사고 칠 뻔했다. 크게 한숨 돌린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 한 게 있다. "자기 객관화!" 사진 찍어 보길 정말 잘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봄맞이 비가 내린다. 덕분에 동구 밖까지 너무 멀리 나간 마음 붙잡아 채고 이제야 다시 차분해진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 세 번의 칭찬 문장은 어떤 의미로 나에게 온 걸까. 다시 과거로 떠난다. 약 10년 전, 한 걸음 걷기도 버겁던 나날들, 진땀 흘리며 해발 70미터 공원에 겨우겨우 올라왔던 첫날. 월미도 앞바다의 황홀한 노을, 그 안에서 들었던 에디뜨 피아프. 후회 없이 살았노라는 그 녀의 노래. 휘청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한 눈물의 산책길, 그리고 초대받은 춤의 광장... 이제야 나는 알아챈다. 이 세 번의 문장이 나에게 선명하게 말하려 했던 의미.
방구석에서 광장으로. 제 몸에 갇힌 문장에서 열린 문장의 춤으로. 나에게서 우리로. 꾸준한 반복 속에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라는 말, 아니겠는가.
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싶다. "문학소년아. 잘 버텼고, 잘 버티고 있으며, 잘 해낼 것이다."
웃자고 시작한 글인데, 갑자기 울컥해진다. 도대체 갱년기의 끝은 언제인가. 10년 정도 춤추면 끝나려나?
10년 정도 춤추고 나서 그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최고령 에어로빅 강사. AI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춤추는 문학소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아저씨도 꿈꾸게 한다.
난 참 귀가 얇은 녀석이다.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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