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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운명처럼 정해진 일

by 김물꽃

어렸을 때 엄마랑 마트에 자주 갔다. 따라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한두 개씩 집어드는 재미도 있었지만 내가 원한 건 책이었다. 보통 같이 갔어도 나는 서점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고 싶은 책을 고르고 있었고 엄마는 그 사이 장을 보고 내게 돌아왔다. 돌아오면 책만큼이나 엄마랑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자 주인공이 온갖 정보를 알려주는 유형의 만화를 좋아했는데 잡지식으로는 도움이 됐던 것도 같다. 당시 그리스 로마 신화라든지 무서운 게 딱 좋아 같은 만화책들이 엄청 유행했던 것도 책에 재미를 붙이게 해줬던 것도 같다.


만화책만 예로 들었지만 좋아하기론 소설책 종류를 특히 좋아했다. 고구려 벽화를 보러 갔다가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든지, 박물관에 숨어 들어갔다가 비밀을 발견하게 됐다는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었다. 초등학생교 때는 특히나 그렇게 학원을 다니면서도 학교 도서관에 꼬박꼬박 들러서 책을 빌렸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일탈의 유형으로 독서를 즐겼다. 그때는 유독 인터넷 소설이 유행이었다. 신파로 범벅된 이야기인데도 막상 보다 보면 눈물콧물 쏟아내며 과몰입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가상 캐스팅을 보면서 나도 혼자 누가 더 어울릴지 상상하곤 했다.


대학교 때는 전공이 연극 연출이었던 만큼 희곡을 다양하고 깊게 읽어야 했다. 특히 공연을 맡은 작품이 있다면 시대배경부터 캐릭터 하나하나의 사연을 떠올리며 읽었기 때문에 기존에 해오던 독서보다는 그야말로 학문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읽었던 것 같다. 동시에 히가시노 게이고에 엄청 빠지면서 추리소설을 섭렵하듯이 읽어냈다.


졸업하고 나서는 언론고시를 준비한다며 아이템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꼭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기 싫어지는데 이때는 책이 그랬던 거 같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읽어야 한다고 강박을 가지니 독서가 일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재미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읽어봐야 알지만 그걸 파악하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에 재미가 보장된 책들만 골라 읽으려고 했고, 그걸 찾는 것 또한 과제 같았다.


그런 흐름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됐다. 드라마 제작사에 들어갔을 때는 기획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정말 쏟아지는 대본들을 하나씩 쳐내듯이 읽었다. 신인 작가를 찾기 위해 수십 개씩 쏟아지는 대본을 하루 안에 쓱쓱 훑어보며 이게 좋은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했다. 기존 작가님들과 회의를 앞두고서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어떤 게 좋았는지, 아쉬운지, 어떻게 보충해야 할지를 찾기 위해 분석하듯 읽어 내렸다.


영화 일을 할 때에도 대본은 어떤 일을 하게 될 지에 대한 로드맵 같은 정보 정도에 불과했기에 그 의미를 하나하나 음미하기보다는 오늘의 스케쥴을 보듯이 훑었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독서는 바쁜 일정 속에 하나의 일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1년간 일을 쉬면서야 오랫동안 즐겨왔던 그 본연의 의미를 되찾고 있다. 올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근 몇 년간 빌려봤던 양을 넘어설 만큼 거의 끊임없이 독서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 권인데 일본 가정식 도시락이라는 요리책, 그러라 그래라는 에세이,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책이다.


책을 왜 좋아하냐는 말에 사람들마다 각자의 대답을 내놓지만 나는 그냥 재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아무리 거창한 말로 포장하려 해도 사실상 나한테는 책도 영화도 재밌으면 그만, 아무리 좋은 의미가 담겨있어도 읽는 재미가 없다면 책장을 덮게 된다. 아마 그런 태도가 내 삶의 전반적인 면모에 녹아있는 것도 같다.


너무 다른 종류의 책을 한 번에 읽는 것도 다소 집중력이 약하다거나 산만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각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다르기 때문에 세 가지를 더해야만 각각의 재미가 채워진다.


요리책은 예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것 같지만 뭔가 힐링되는 느낌이 있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내 머릿속에서 실행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작가의 짧은 에세이가 더해져 음식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도 덧붙여있는데 요리법과 함께 읽다 보면 작가의 집에 초대받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에세이는 올해 들어 자주 읽게 된 것 같다. 사실 예전엔 다른 사람이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다. 모든 삶을 살아봤을 것도 아닌데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루고 싶은 걸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을 때라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피해의식 같은 게 더해졌던 이유도 있긴 하다.


근데 올해 들어 나와 비슷한 삶의 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재미있었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서도 비슷한 순간에서도 다른 결정, 다른 생각을 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내 삶이 조금은 더 풍부해지는 거 같았다. 그런 경험을 나눠주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이번에 읽고 있는 양희은 선생님의 책 역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상의할 수 있는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이 있어도 늘 혼자 끙끙 앓았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내가 성인이 되고서도 늘 내게 좋은 말을 해줄 어른을 꿈꿨고, 그건 내가 혼자 일어서는데 방해가 되는 결핍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작년을 보내며 자립할 마음가짐이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필요한 만큼 찾게 되는 법을 알게 된 거 같다. 내 옆에 실재하는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어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꼭 그분이 나에게 해주는 조언 같아서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양희은 선생님 역시 잘 몰랐기 때문에 이분이 과연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다. 한편으론 성공한 어른이 너무 쉽게 삶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섣부르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보고 삶에 대해 오만한 생각을 가지는 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걸 겪었기 때문에 더 덤덤해지고 겸손하게 대하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누군가의 따뜻함을 경험해 본 만큼 이 마음을 꼭 보답하고 싶다는 겸허함을 가지게 됐다.


안나카레니나는 사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골랐다. 예전부터 그 첫 문장에 끌려 매번 읽어야지 했었는데 한편으로도 이미 긴 이야기일 텐데 그게 몇 권이나 되다 보니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딱 이 이야기에 꽂힌 날이 있어 도서관에서 빌려오게 됐는데 딱딱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막장 드라마 보듯이 술술 읽혀서 계속 보고 있다.


어떤 취미는 꼭 원래부터 그걸 좋아하게 되어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내게는 독서가 그랬고 모든 책들을 읽게 되는 게 어쩌면 하나의 인연으로 이어져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더 반가워진다. 읽어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내 마음에 딱 맞는 작가를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끼게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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