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내가 태어나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하는) 영화는 타이타닉이다. 극장에 가서 본 건 아니었고 아마도 엄마가 빌려왔을 비디오테이프로 보게 됐다. 그때가 한 7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가 그 영화를 이해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결말에 가서는 펑펑 울 정도로 영화에 완전히 몰입했었다.
사실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엄마가 드라마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녁때면 늘 가을 동화나 겨울 연가 같은 드라마를 한방에 모여 온 가족들이 시청했다. 허준이나 대장금 같은 대하드라마도 빼지 않고 본방을 지켜봤다. 물론 그 당시는 ott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보는 게 쉽지 않아 그랬어야만 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드라마를 보는 건 포기할 수 없는 낙이었다.
드라마가 일상적인 취미였다면 영화는 좀 특별한 외출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시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집 근처 지하철 역 주변인데 그곳에 온갖 상점과 영화관이 모여있었다. 친구와 시내에 나가 조조영화를 보고 스킨푸드 같은 주변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매니큐어를 구경하는 게 초등학생 때의 주말 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영화 보는 건 왠지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뭔가 독립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지금이야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영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는 무조건 상업영화만 보러 갔다. 사실 예술영화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온갖 영화를 섭렵해 조예가 깊은 친구들이 있지만 난 그냥 영화관에 걸려있고,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이면 주저 없이 관람했다.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더 별로라 표가 아까웠던 적도 많지만 영화 자체보다는 외출에 의의를 뒀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사람들마다 인생 영화의 정의가 다르고 그걸 선정한 의미도 다양할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누가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물어본다면 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고심 끝에 한두 개를 말하게 된다. 하지만 내게 인생영화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내 인생의 변곡점 같은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동의 1위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다.
물론 영화 자체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신박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인생영화라 꼽을 수 있지만 조금 다르다. 인셉션이 개봉했을 당시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이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해도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세상에 없던 가상의 이야기를 눈앞의 현실처럼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영화가 끝나고 도대체 이런 이야기는 누가 만드는 걸까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던 내가 연출이라는 존재를, 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알게 된 순간이다. 그전까지도 가수며 배우며 무언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자신이 없어 늘 억누르기만 했다. 하지만 감독이라는 존재에 완전히 매료돼서 자신의 생각을 현실의 세계로 만들어내는 이런 일을 한다면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막연한 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글을 쓴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연극 연출을 전공했지만 우리 학교에선 이미 존재하는 극본으로 연출 무대를 올렸다. 희곡을 분석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새로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글이란 걸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끝내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드라마 pd를 준비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미 존재하는 대본으로 연출하는 걸 꿈꿨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일기나 논술 같은 글이야 예전부터 써왔었지만 픽션은 익숙하지 않았다.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가 돼서야 시험 준비를 위해 그런 형태의 글을 처음으로 써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썼던 작문을 생각해보면 에세이를 살짝 변형했다고 느낄 정도로 조금 애매한 글이었다. 그때는 같이 준비하던 스터디원에게서 한 번도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열심히 노력한 건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또, 점점 피드백에 대한 오기가 생겨 누가 이기나 보자며 글을 썼던 것도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된 거 같다. 결국엔 스터디원의 피드백 없이 작문시험을 합격했으니 그때의 목표는 이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시나리오를 써본다거나 영화를 찍어본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 세계를 구축한다는 건 분명 멋있는 일이지만 그건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공부 기간이었지만 나는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떤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영화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시나리오를 써볼 생각도, 그럴 자신도 없었던 내가 어느새 단편영화를 세 편이나 연출했고 독립영화며 상업영화 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영화 일을 하면서도 종종 내가 지금 이곳에 와있구나 신기했던 순간들이 많은데 글을 쓰는 지금에도 내가 결국은 이걸 하게 되는구나 싶은거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생각 없이 줄곧 이 꿈을 꾼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처음 연극 연출 공연을 올리고 타로를 봤던 적이 있다. 연출이라는 일 자체가 단순히 희곡 분석이나 무대 동선을 만들어내는 일만 하면 된다고 착각했었다. 23살에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본 적이 없었다. 연출은 소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색깔을 만들기 위해선 몇십 명이 되는 사람과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좁혀나가야 했다.
과연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 끝에 무사히 작품을 올렸는데도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앞으로 다가올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불안했다. 그걸 내가 감당하지 못할 거라 미리 겁을 먹었다. 내가 이 일을 계속 하게 될지, 금방 그만두게 될지 차라리 남이 정해줬음 하는 마음으로 타로를 보게 된 거다.
정답은 간단했다.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지만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국 계속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 나는 그 이후에 학교 연출 대신 휴학계를 내고서 잡지 기자며 다큐멘터리 연출이며 사진작가 등 많은 대외활동을 경험했지만 결국 연출을 준비했다. 드라마 제작사며 영화 제작팀이며 돌고 돌았지만 영화를 공부하고 작품을 만들게 됐다. 지금 새로운 글을 쓰면서도 결국은 이 글이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질지를 상상하게 되는 걸 보면 계속 이 길로 돌아오는 거 같다.
치열했던 인간관계도, 매번 고민하게 되는 시나리오 작업도, 작품을 만들기엔 번번이 부족한 재정 상태도 아직 달라지지 않았고 아마 한동안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걸 뛰어넘고 싶을 정도로 아직은 영화를, 연출 일을 너무 사랑한다. 다치고 깨지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조금 지나고 나면 다 떨쳐버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남이 결정해주길 바랄 만큼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의 운명은 결국 모두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들인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영화를 꿈꾸게 되는 걸 보면 예전보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 단단해진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하루하루가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더라도 그 모든 과거가 쌓여 내게 자신감의 기반이 된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고 그때는 또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바라건대 지금 이 순간들 역시 내가 걸어갈 운명 같은 인생에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