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죽음에 대하여

by 김물꽃

모두 각자의 루틴이 있겠지만 나는 소설을 쓸 때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편이다. 대개의 경우 그 상황을 떠올리며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먼저 재생하고 이야기를 상상하다보면 그 세계관 자체에 집중하기가 더 쉽다.


한동안은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들을 틀어놓고 작업하기도 했지만 분량이 길어질수록 가사가 있으면 어느 순간 방해가 됐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피아노곡을 재생하곤, 셔플을 통해 비슷한 음악을 추천해 계속 재생을 이어가는 식으로 글을 썼다.


그중 하나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는 곡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곡 같았지만 이렇게 각 잡고 재생을 한 건 처음이었다.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들은 덕분인지 내가 그려놓은 세계관에서 이 음악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먹먹하다고 느꼈다. 아직 성장하기 전의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고통이 담겨 있는 것도 같았다. 앞으로 종종 듣겠구나 생각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별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순간 내가 듣던 그 음악의 작곡가 아니었나? 하고서 검색했더니 역시 맞았다. 확인하고 나니 더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을 달래려는 행동이었을까?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재생했다.


얼마 전까진 내 글의 상상력을 북돋아주던 그 곡에서 전과 다른 애틋함이 들렸다. 앞으로의 음악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어딘가 허무하기도 했다.


지인의 장례식에 처음 참석했던 건 대학 때 처음으로 연출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장례식이다. 선생님은 35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나와 연이 있고 많이 의지하기도 했던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건 많이 허망하고 아픈 일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내리 연기 수업만 받을 때 약간의 반항심이 들기도 했다. 연출과로 들어와 연기만 배우고 있으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1학년 1학기, 처음으로 참여했던 연극 워크샵에서 선생님은 나와 내 동기에게 조연출 자리를 맡겼다.


아는 것이 없어 열심히만 하면서 연출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나씩 장면들을 완성시켜 나갈 때 연출의 재미는 계속 쌓여갔다. 앞으로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학교에서 연극 연출을 하게 되는 날 선생님께는 꼭 그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 생각했었다.


2학기 겨울방학, 새로 준비하려던 공연의 오디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술과 담배, 그걸 빼놓고는 선생님을 말할 수 없었다. 평소 연습할 때도 배부르면 집중이 안된다며 식사 대신 콜라나 커피 같은 음료만 드시는 분이었다. 건강 좀 챙기시라며 소소하게나마 먹을 것들을 가져다 드리곤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서 술자리에도 늘 따라가며 선생님의 길을 보이는 대로 쫓아보고 싶기도 했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분. 매일같이 밤새며 연습을 하면서도 선생님과 작업하면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그 분위기를 닮고 싶었다.


일상이 그러셨으니 쓰러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뇌 혈관 쪽에 문제가 있어 지금은 코마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이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싶었다. 많은 피가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에 동기들은 주변을 수소문하며 같은 혈액형의 수혈을 부탁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선생님의 상태가 익숙함으로 자리 잡은 순간도 있었다.


선생님이 깨어나셨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했다. 동문 모임 같은 자리에서 선생님을 거의 1년 만에 다시 뵙게 됐다. 이제 술과 담배는 선생님을 떠나갔다. 선생님이 술잔을 물로 채우는 걸 보고 놀리기도 했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그 마음을 전달했다.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겨울 방학, 다음 주쯤 선생님을 뵙자며 동기들끼리 약속을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또 뵙겠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틀 정도의 시간을 남기고서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


며칠 후가 바로 선생님을 뵙기로 했던 날인데 거짓말 같았다. 놀란 마음 사이로 슬픔이 삐져나왔다. 내가 맺은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처음이라 모든 반응이 초면이었다. 정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건가. 동기의 연락을 받고 허탈한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상실이란 건 공유할 수 없는 거라 느꼈다.


동기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서 장례식을 찾아갔다. 먼 길을 가야했지만 차라리 그렇게 멀리 가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는 동안 내내 선생님을 떠올렸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곁으로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을까 생각했다.


장례식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영정사진을 보면 정말 그 죽음이 실감 날 거 같아서 오히려 외면하고 싶었다. 혼자 찾아간 장례식에 선배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멍해 있는 나를 선배들이 챙겨줬다. 인사드리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밥 먹고 가라며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다.


밥은 넘어가지 않았고 슬픔을 쏟아낼 공간이 필요했다. 한층 위로 올라가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눈물로 쏟아 나오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잠시 깨어날 수 있었던 건 우리와 이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고마우면서도 야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배의 차를 타고 창밖을 쳐다봤다. 선배들과 각자의 기억을 주고받으며 함께 슬픔을 달랬다. 선배들은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들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우리와 했던 공연은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선생님을 떠올리며 앞으로 쌓을 수 없는 시간들을 달랬다.


장례식이라는 게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하고 위로받기 위한 장소라는 걸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히 낯선 채로 간직하고 싶었다.


이후에도 종종 생각이 났다. 특히 처음 연극 연출을 맡았을 때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 내게 멘토였던 선생님이 많이 그리웠다. 궁금한 것들을 마구 여쭤보며 장난스러운 응원을 받고 싶었다. 혼자서 해내는 동안 많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연극이 올라가는 날까지도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 여러 이야기들이 입에서 맴돌아도 뱉어낼 기회가 없었다.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선생님이 계신 납골당에 찾아갔다. 그래도 잘 끝낸 거 같아요 말씀드리며 공연 팸플릿을 올려두는데 한바탕 또 울음을 쏟아냈다. 장례식 이후 납골당은 처음 찾아가는 거였는데 새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또 실감이 났다. 대답 없이 일방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많이 공허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묘소에만 가면 엄마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다른 친척들은 덤덤하게 있는데 엄마는 항상 울어버려서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슬픔은 매번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늘 그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슬픔도 무뎌지고 힘든 순간 선생님을 떠올리는 일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어떤 작곡가의 사망 소식에 다시금 내가 떠올리는 기억은 선생님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때 느꼈던 낯설었던 슬픔으로 마음이 저릿하다.


나는 이제 선생님이 돌아가셨던 그때의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선생님과 함께였다면 우리는 분명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성장을 이뤄간다고는 하나 죽음에 대한 건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의 끝을 받아들이고 또 내 끝을 덤덤히 인정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 마지막의 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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