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것을 바로 세우는 것
금니가 하나 더 생겼다. 친구들을 만난 다음날 이를 핥아보는데 뭔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가 부서져있었고 전날 브런치 식당에서 과일잼 같은 걸 먹다가 딱딱한 씨를 깨물었던 기억이 났다. 설마 그 정도로 이가 부서지나 싶었지만 전에 레진 치료했던 부분이 깨진 거라 생각했다. 당장 이는 비어있었지만 주말이라 치과를 갈 수 없었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전화했지만 워낙 바쁜 치과라 화요일에 겨우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가려는 치과는 아주 사연이 깊다. 대학생 때 처음 알게 된 곳인데 오른 어금니 쪽 이가 자주 아팠다. 뭔가 불쾌하게 시린 느낌이 났었는데 집 근처 치과를 방문해도 별 이상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고통을 느꼈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하철 광고판에 있던 치과를 별생각 없이 찾아갔다.
그곳에선 더 자세히 검사를 받았다. 엑스레이로 찍고 또 추가로 검사를 했던 거 같다. 검사 결과, 잇몸 위로 농이 차있고 그게 치아를 계속 녹이고 있다고 했다. 그 치과가 아니었다면 계속 그 상태로 방치했을 일이었다. 신경치료를 받으며 응급처치를 했지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 난 대학교 극장에서 스태프로 일할 때였는데 당장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총괄 헤드 역할이라 나 없이는 진행이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무조건 공연 전에 수술을 끝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무모하다고 보셨는데 그때 나는 내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게 책임감인줄만 알았다.
선생님은 빠른 수슬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의 후배에게 연락을 해주셨고 당장 다음 주에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전신마취를 하는 나름 큰 수술이었는데 부모님을 걱정시킬 거라는 걱정에 나는 괜찮은 척했다.
사실 수술의 두려움보다도 지금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데 수술비며 입원비는 괜찮을까 그걸 더 신경 쓰느라 불안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아빠도 엄마도 모두 바빠서 수술 전날 나는 병실에 홀로 머무르며 수술 유의사항을 혼자서 들었다. 전날 밤, 잠은 안 왔지만 친구들과 연락하며 병원복 입은 사진을 공유하며 애써 나를 진정시켰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마취가 풀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수술은 잘 끝낼까? 걱정했지만 사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더 파고들기 전 마취약이 들었고 수술도 무사히 끝냈다. 전신마취를 했던 터라 마취가 다 풀리기 전까지 잠에 들 수도 없었는데 약기운을 다 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극장에 나갔다. 사실상 학기 중도 아니었고 고작해야 선배들의 공연 조명 설치를 돕는 일이었는데 뭔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회복도 못하고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밤새며 일을 했다. 수술 후 실밥을 풀지 못해 죽만 먹으며 무리하니 살이 빠질 대로 빠져서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다. 대단하다며 다들 혀를 내둘렀는데 그게 칭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경험은 부질없는 영광이었다. 나를 위해, 내 작품을 위해 열심히 하는 거라면 끝까지 해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더 무리하며 내 몸과 마음을 망가트렸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변화하게 된 건 작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세상의 관점을 나로 바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난 당장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참거나 버티기보다는 당장 병원에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그야말로 건강한 사고방식에 더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치료를 받게 된 치과에서는 역시나 내 예상과는 다른 상태를 들려주었다. 전에 치료받았던 레진이 깨진 게 아니라 썩어있던 충치 때문에 이가 무너진 것이라며, 더 심해지기 전에 치과에 방문해 다행이라 하셨다. 내 이를 본 따 금니를 만들어주고, 치료는 마무리했으니 괜찮을 거라 하셨다. 이번에는 나도 금니가 얼마일까 걱정하는 대신 내 판단대로 빠르게 치과를 방문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나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있던 방을 바꾸고, 썩어서 무너졌던 충치를 치료하며 내 삶에서 무너졌던 많은 곳들을 차츰 복구하는 중이다. 한 번 더 겪어내는 스물아홉은 무사히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