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농린이(농구+어린이)'입니다.
it's a slam dunk (case).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알고 있었다. 제목 정도는. 어쩌면 줄거리 정도는 말할 수 있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강백호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부에 들어가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소년만화.
어쩌다 슬램덩크를 볼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한다.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때문에요.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다.
이미 수 차례 돌려보고, 다시 또 보고 있던 터라 흘려듣던 드라마의 대사가 귀에 꽂혔다.
it's slam dunk. 쉬운 일이에요.
자막을 보고 검색창을 열었다. 내가 알맞게 알고 있는 것이 맞았다. '덩크슛'을 뜻하는 농구용어로는. '확실하게 성공할 것'이라는 영어 속담-혹은 관용구-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슬램덩크를 보게 된 이유와 어떤 연관이 있냐고 묻는다면,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it's a slam dunk.라는 대사는 드라마의 한 회 내내 반복되었고, 마인드맵처럼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내가 만화 '슬램덩크'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 보고 있던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없었고, 유명한 이미지 정도로만 알고 있던 '명작'이 궁금해졌다.
슬램덩크. 그거 그냥 농구만화 아닌가. 좀 궁금하네.
스무 권. 짧지 않은 길이의 만화를 순식간에 봤다. 여운에 젖었다. 명작은 명작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던 부분에서 감상에 잠기고, 늦은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창고를 뒤적였다.
농구공을 찾아냈다.
농구를 한 적은 없지만 농구공을 선물 받은 적은 있다.
고등학생.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의욕이 넘치던 시절의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생일선물로 갖고 싶은 게 있어? 농구공. 가진 게 있긴 한데, 갑자기 농구공? 응, 농구공이 갖고 싶어.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던 내 눈에 농구하는 캐릭터가 멋있었고,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덥석 농구공을 받았다. 한두 번 시도해 본 후에 농구공은 다시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농구공을 바닥에 튕겼다. 바람이 많이 빠진 데다 손에 잘 붙지 않았다. 몇 차례 더 튕기고서야 감을 잡았다. 런지 자세로 오른손으로 공을 두어 차례 튕기는데,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승부욕을 자극했다.
이거, 재밌는데.
한 시간을 한 자세로 공만 튕겼다. 조금 익숙해지고서 드리블을 시도했다. 역시나 제멋대로 튀는 공을 쫓아 달려가야만 했다. 몇 분을 더 애먹고서야 감각을 익혔다.
큰일 났다. 재밌다.
다음 주 일정을 확인했다. 평일 오전에는 공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안심했다.
운명을 믿으시나요? 하고 누군가 물어오는 일이 종종 있다. 스물하고 겨우 몇 년을 더 살았을 때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요,라고 답했다. 요즘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이 언제일지 모르는 것뿐이죠, 하고 답한다.
고등학생 때의 농구공은 조금 빨리 내게 찾아왔던 걸지도 모른다. 예고편처럼. '농구'라는 퍼즐을 처음엔 창고에 집어넣을지 몰라도 다른 퍼즐이 더 모인 후에 다시 꺼내게 될지도 몰라. 그리고 그 퍼즐은 아마도 지금 맞춰진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