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위즈덤하우스, 2020
새해를 맞고난 첫 달에는 생각이 많았다. 물론 난 늘 생각이 많긴 하지만 이 달에는 좀 더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이 많았고 덩달아 한 달 내내 여러 가지 일정이 많아서 글을 전혀 올릴 수가 없었다. 대신 일기장에 내 생각과 일상을 날 것 그대로 써 내려가다가 일기장의 오분의 일이 글자로 빼곡해진 걸 발견했다. 주된 고민은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고민하는 과정을 써볼까 했다가도 늘 같은 고민에서 멈추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지?". "이게 재밌나?".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오늘은 무엇을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게 '나빴다' 혹은 '좋았다' 이렇게 세 글자로 끝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쓰는 문장 구조도 늘 똑같지 않나. 사실 나는 그날 하루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었다. 하지만 새해 기념으로 읽기 시작한 어떤 에세이가 나를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것도 쓸 수 없음'의 늪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김혼비작가의『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축구를 좋아해서 여자 축구 클럽에 다녔던 혜온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구는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축구에 인생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 말을 하면서 약간 벅차올랐다. 일말의 관심도 없던 축구. 그런 축구에 대한 에세이를 읽으며 받은 감동. 그리고 그 감동이 흘러넘치다가, 나도 이런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종국에는 브런치에 올려놨던 지금까지의 글들을 다 비공개로 돌려놓게 되었다. 원래 목적은 내 글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막상 보니까 생각보다 이것저것 쓴 게 많았다. 제대로 다 읽어보려다가는 결국 아예 손을 놓아버리게 될 것 같아 차라리 리셋을 하기로 했다.
1월에 회사에서 대박사건이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글을 썼다. 술술 써졌다. 세네 시간 지나자 다리가 뻐근해져 왔고 몸에 한기가 들정도가 되어서야 글이 끝났다. 드디어 좀 차분해진 마음으로 글을 다시 읽었다. 사건이 기승전결로 전개되었고 각 구간마다 내가 느낀 놀라움이 각 문장에 스며들어있었다. 대박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정하고 보니 그리 큰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예약 발행을 해 놨다가 다음 주에 올려야지, 설레발을 치다가 결국 올리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회사 이야기가 구구 절절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쓰다 만 글이 하나 둘이 아니다. 내가 보고 들은 사건을 나열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나의 대부분의 시간이 출근 준비, 출근, 업무보기, 퇴근으로 이루어져 돌아가다 보니 많은 사건이 회사에서 일어난다. 일기장에 쓰면 나 혼자 보고 말 내용이니 아무거나 다 써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는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내가 겪은 하루를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싶은데 그럼 난 일기를 쓰고 싶은 걸까? 에세이는 그럼 대체 무슨 글이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에세이란 뭘까.
일기 쓰기가 재미있는 건 내 생각과 경험을 날것 그대로 거침없이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에 필터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 출력이 바로바로 돼서 재밌다. 에세이 읽기가 재미있는 건 실제로 있었던 상황에 해석과 감상이 덧대어지기 때문이다. 에세이에서는 일기와 비슷하게 직접 경험한 일들로 이야기가 채워지는데, 일기와 다르게 그 경험들이 글쓴이에 의해 재배치되고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는 이에게 전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세계에 빠져든다면,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글쓴이의 옆에서 같이 걸어가는 느낌이다.
문학, 자기 계발, 에세이 중에서 가장 많이 읽은 분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학생 때는 문학을,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자기 계발이나 경제 책을 위주로 읽었다. 에세이의 비중은 높지 않지만 오히려 에세이가 다른 어떤 분야의 책들보다도 더 내 삶에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무엇을 쓰든 일단 뭔가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양다솔 작가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고 에세이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으며, 작가가 그랬듯 나도 따라서 동양차를 마시게 되었다. 김선영 작가의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를 읽고는 꾸준히 필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도 에세이를 쓰고 싶다.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적기에는 뭔가 너무 거창하고 민망하니까 일단은 쓰고 싶다.
1) 내 상상 속의 누군가(독자라고 쓰기에도 민망하다)가 그냥 누가 오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깐 짬을 내서 읽는다.
2) 읽고 슬쩍 웃는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3)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간다. 딱히 여운이 남지 않아도 된다.
4) 의외로 흥미롭기도 하고 문득 생각나서 다음 편을 읽는다.
이것이 바로 나의 큰 그림, 나의 작은척하는 소망이다.
작가가 예전에 쓴 글에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써 놨다고 한다. "얜 왜 일기를 써놨어?"
이런 댓글을 직접 받았다고 상상해 보니 심장이 아팠다. 이 말은 맨날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이기도 했다. 어쩐지 내가 쓰는 모든 글 들이 남에게 공개 가능한 일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난 내가 오늘 뭘 먹고 뭘 했는지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데서 그치지 않았으면 했다. 슬프고 힘든 일에는 버틸 힘을 한 포대기 넣고, 즐거운 일에는 유쾌함을 넣어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날 읽어! 날 읽어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보통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면 뭔가 깊은 통찰력을 얻긴 한 것 같은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여전히 막막하고 혼란스럽다. 인생이 어려워서 철학서를 읽고 용기를 얻었는데, 막상 눈앞에 닥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그 상황에만 집중해서 방법을 단계적으로 알려주는 책이 도움이 된다.
이 책은 196페이지 분량으로 쉽고 간결하게 떠먹여 준다. 읽다 보면 책이 나에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건 이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에세이를 쓰려고 시작할 때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서 묻어두었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다 여기에 있었다. 솔직한 글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적어야 하는지, 주제를 정해놓고 써야 하는지, 댓글에 연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주변 인물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주의할 점, 한 편에 몇 개의 에피소드를 넣는 게 좋은지 등 배울 내용이 많았다.
여전히 에세이 쓰기는 어렵다.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떨린다. 무얼 하든 자의식 과잉이 되는 것 같고 별생각 없이 쓴 내용이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글을 발행했다가 취소했다가. 그러고 나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상 글을 겨울에 썼는데 퇴고만 하다가 봄이 되어버리는 경우다. 눈이 많이 내려 눈사람 구경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한 여름에 업로드하기에는 시기가 안 맞아 신경이 쓰이고 그렇다고 다음 해 겨울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다.
그래서 책을 읽고 에세이 쓰기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내가 깊이 고민한 주제에 대해서 쓰기
사건 하나에 대한 에피소드만 쓰려고 하니까 결론도 없고 일기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많이 쓰려고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직장인이고 직장인은 퇴근하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매일 쓰려고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자. 글 하나를 충실하게 쓰자.
'사건을 보는 나, 즉 나의 관찰과 해석이 글의 핵심'이 되도록 쓰기
가끔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을 겪고 그에 대해 하나하나 나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나열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 상황을 나의 예전 경험들과 연관시켜 해석해 보자. 어떤 사건과 상황 그 자체를 구구절절 다 적을 필요가 없다.
회사 이야기, 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쓴다면 당사자들이 읽는다는 전제 하에 쓰기
하지만 회사에서 밖에서 좀 더 알찬 시간을 보내고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회사 밖 시간을 회사 안의 시간을 준비하는 용도로 쓰는 게 아니라 내 자유와 삶과 의지로 쓰자.
퇴고에 대한 기준 세우기
여전히 퇴고를 위한 적정 선을 잘 모르겠다. 이 글도 1월 초에 쓰기 시작해서 2월쯤 갈아엎고 3월에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4월이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한없이 퇴고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적당히 타협하는 방법을 익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