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도는

영화 '스트레이 키즈 : 더 도미네이트 익스피리언스'

by 쿙가

한 해의 2월이란 특별한 행사도 공휴일도 없는 무심한 달이다. 새해 소망의 열기는 식어가고, 계속되는 어두운 하늘에 어느새 인내심을 잃고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마는 그런 달. 이런 시기에 독일에서 스트레이 키즈영화가 개봉됐다. 평소 영화관에 자주 가지 않아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 또는 곧 개봉할 영화는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지나간다. 이 영화가 독일에서 상영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우연히 구글창에 뜬 광고 덕이었다. 회사에서 차분히 지루함을 견디고 집에 가던 퇴근길에 이 영화소식을 접하자마자 심장이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콘서트를 보러 가는 기분을 내고자 집 근처 영화관 대신 좀 더 멀리 있는 새로 생긴 영화관으로 갔다. 어둡고 스산한 일요일 아침 열 시 반. 영화 상영 전에 나오는 광고에서 자기네 상영관 사운드가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겠다며 울창한 열대우림 속 새소리, 빗소리, 바람소리를 들려주었다. 오, 오, 역시 영화관 사운드는 달라. 그런 설렘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멤버가 생각보다 많고 화면에 잡히는 무대, 춤, 관객 등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다. 한 시간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그 후에는 완전히 스며들어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입을 딱 벌리고 봤다. 좋았는데, 진짜 좋았는데, 근데 한 번 더 봐야 얼마나 더 좋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덕질 경력자 친구가 말하길 원래 그렇게 빠져드는 거라면서 한 번 더 보러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일주일 내내 스키즈 플레이리스트만 듣다가 예약일이 다가와 다시 상영관을 찾았다.




두 번째 관람은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 세 시간이 삼분처럼 흘렀다. 영화관에는 십 대와 소수의 학부모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고 나와 어색한 눈짓을 교환할 한국인은 아예 없는 듯했다. 오른쪽에 빈 몇 자리를 띠어서 앉은 학생은 열 살이거나 그 아래로 보였고 어머니랑 와서 내내 조용히 앉아있었다. 내 바로 왼쪽 자리에 앉은 십 대 초반인듯한 학생도 어머니랑 같이 왔다. 예전에 한국 앨범 전문점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고 어떤 아주머니한테 "여기 이거 줄 왜 서계시는 거예요?"하고 물었었다. 누구 앨범인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가야 한대서 따라 나왔는데 어느 가수인지는 모른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그분이 떠올랐다.


나는 내 왼쪽에 앉은 학생이 어느 멤버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계속 흥겨움이 느껴졌는데 특정 멤버가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마다 흥겨움은 배가 됐고 감탄사가 연달아 나왔다. 그 멤버의 인터뷰 장면이 나올 때는 육성으로 "Süß! Süß! Süß!"를 연발했다. 귀엽고 잘 생겼다는 뜻이다.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바로 뒤에서도 다른 학생들 목소리가 계속 들렸는데 그중 한 명은 한국어 가사까지 다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불러서 내내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고, 그 애 옆의 다른 한 명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 이름을 계속해서 외쳤다.


콘서트가 막바지로 가고 흥이 더욱 올랐을 때 갑자기 관객들이 어떤 노래를 기점으로 우르르 앞으로 뛰쳐나갔다. 열몇 명쯤 되려나. 큰 영화 스크린 오른쪽 아래 공간에서 둥글게 손을 잡고 노래에 맞춰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SNS에 올라가는 챌린지도 아닌 것 같았다. 어두워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원을 그리며 뛰는 속도에서 그 열기와 흥이 느껴졌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뿔뿔이 각자 자리로 돌아왔다. 내 뒷자리의 한국어 가사까지 다 외우고 있던 애는 얼마나 열심히 뛴 건지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계속 헥헥거렸다. 몇 곡이 흐르고 그 애의 숨이 차분해질 때쯤 마지막 곡이 나왔다. 스키즈가 영상 속에서 같이 뛰자고, 이 스태디움이 흔들릴 정도로 뛰자고 외쳤다. 그 애는 또다시 괴성을 지르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서 강강술래를 돌았다. 덕분에 내 심장도 흥에 겨워 팔딱팔딱 뛰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콘서트에도 가고 그러나 보다.


상영관을 나오며 온갖 에너지를 다 받고 나온 기분이었다. 이 정적이고 침울한 달에, 이 춥고 어두운 겨울날에 이렇게 재밌게 뛰어놀 수 있다니. 강강술래를 돈 사람들은 분명히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단체로 움직이길래 학교에서 같이 오기라도 한 건가 싶을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좌석도 다 달랐고 나이대도 달라 보였다. 아마 그 노래에 대한 스키즈 팬들만의 무언가가 있거나 아니면 상영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온 사람들이 서로 입을 맞춰났거나. 강강술래 도는 걸 영상으로 찍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이렇게 재미있게 논다는 걸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정말 신난 십 대들은 뛰고, 보호자들은 차분이 좌석에 앉아있고, 나는 놀라서 쳐다보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며 생각해 봤다. 내가 오늘 스키즈를 봤는가. 봤다, 분명히 봤는데 이건 무효다. 내가 오늘 공연을 봤는가. 아니다. 나는 내 주변에 앉은 십 대들의 스키즈 최애를 파악하고 그들의 한국어 가사 외움 정도를 알게 된 거지 공연을 본 게 아니었다. 똑같은 공연을 세 번째 보기 위한 자기 합리화를 마친 후 결국 팝콘 옆 티켓 판매 기기로 가서 세 번째 상영표를 구매하고 집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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