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의 당선작을 뽑는 설계공모에 50여개 전후의 작품이 제출
최근 공공건축물 설계 공모에서 심사위원 공개 시점에 대한 논란이 있다.
논란의 한 축에 심사위원 사전공개의 긍정적인 면을 소개하는 기사로 최근 00시 공공건축 설계공모는 공정하다는 소문이 정설로 퍼져 있어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설계공모에 응모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00시가 '기회의 땅'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개의 당선작을 뽑는 설계공모에 50여개 전후의 작품이 제출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설계 공모를 준비하는 주최 측의 입장에서는 공고 이후 많은 설계안이 제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이 그 안에서 좋은 설계안을 뽑아서 좋은 공공건축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본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응모가 있다는 것은 1차로는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흥행의 이유에는 심사위원의 공정성이 가장 클 것이고, 제출물의 간소화, 온라인제출, 양질의 지침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의문이 드는 문제는 현상설계라는 것이 결국 50개의 제출작중 1개만이 당선작이 되고, 당선에 해당하는 설계비를 받고 설계를 할 수 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잊혀지는’ 49개는?
하나의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서 설계사무소는 2~3명이 2~3개월은 고민하고 에너지를 투입해야 가능하다. 50개 사무소에서 2.5명이 2.5개월을 투입한 것이고 1일 8시간씩, 총 투입 시간으로 따지면, 모든 인원의 시간의 합은 약 75,000시간이 투입된 것인데, 1개 당선작을 만든 설계사무소 빼고는 모두 허공에 사라지는 시간이다. 무려 7만 5천 시간.
혹자는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설계공모를 하는 훈련의 과정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설계공모에 당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건설경기가 어려워 많은 응모작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보상 없는(혹은 최소한의 상금만 받고 끝나는) 시간투입이 바람직한 것일까?
당선이 되는 사무소 외에는 2~3번, 5번, 심지어는 10번의 설계공모를 제출하고 당선이 되지 못하는 사무소들이 많다. 설령 몇 번의 설계공모 끝에 당선되었다고 하여도 이 전에 설계공모를 제출하기 위해서 쓴 에너지가 막대하여 당선되더라고 이전에 쓴 에너지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당선에 자신감이 붙어 계속 공모를 제출하는 회사도 많다. 그러면 막상 당선된 설계공모의 설계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라져 버린 그 시간을 다른 곳에 쓰거나, 좀 더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쓸 수 있다면 75,000개의 시침들은 분명 더 나은 실존하는 건축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다수의 낙선을 반복하던 설계인들은 많이 낙심하기도 하고, 본인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설계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경우도 있다. 설사 떠나지 않더라고 공공건축 시장을 완전하게 외면하기도 한다. 50개 중에 1개를 당선작으로 뽑는 것인데 49개에 들었다는 것이 그렇게 그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일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심사위원이 공정하고 1-2일의 시간 동안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심사를 잘한다고 해도 심사위원도 주관을 가진 사람이다. 제출안의 채점은 객관식이 아니고 주관식이고 최종적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몇 개의 안들이 경합을 하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해서, 당선되었다고 해서 결코 진짜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제출안은 탁월하게 좋아야겠지만, 50여개 중에서 뽑힌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은 공감하는 설계인들이 많을 것이다.
공모에 많은 제출작들이 제출되었다는 것이 그 공모가 공정하기 때문인 것을 반증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설계시장의 어두운 면을 보면 결코 자랑할 일은 아닌것 같다. 그래서 난 감히 이런 상황들이 같은 건축인으로써 안타깝고 때론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그곳에 사장되었는지를 묵도하지 말아야 한다.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한 것은 자명하지만, 그 결과가 많은 설계인들의 에너지를 매몰시키고,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고,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함께 고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