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간호학의 어머니 ;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

Margaret Jane Edmunds

한국 근대 간호의 초석: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의 선구적 생애와 교육적 유산에 대한 심층 보고서

image.png
image.png

요약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Margaret Jane Edmunds, 1871~1945)는 한국 근대 간호교육의 시작을 연 캐나다 출신 간호사이자 선교사입니다. 1903년 서울에 와서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했고, 한국 최초의 체계적인 간호사 교육을 이끈 인물로 평가됩니다.

출신과 이력

에드먼즈는 캐나다 온타리오 스미스폴즈에서 태어났고, 미국 미시간대학교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부의 한국 간호교육 선교사로 임명되어 1903년 3월 서울에 왔습니다. 그 전에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가난한 산모와 어린이를 돌보는 방문간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었고, 현장 중심의 간호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국에서 한 일

그해 12월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을 맡았고, 첫 한국인 간호학생들을 직접 교육했습니다. 이 학교는 오늘날 이화여대 간호학부의 전신으로 여겨지며, 한국 간호교육의 제도적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또한 그는 'Nurse'의 한국어 표현으로 '간호원'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한글 간호교과서를 번역·발간했으며, 간호복 디자인도 직접 구상했습니다.

의의

에드먼즈의 역할은 단순한 교육자가 아니라, 한국 여성들이 전문직을 통해 사회 진출을 할 수 있는 길을 연 개척자로 평가됩니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과 직업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던 점을 고려하면, 그의 활동은 간호를 하나의 전문직으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초창기 한국 간호의 직업적 정체성과 교육 체계를 만든 핵심 인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복과 용어

이화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에드먼즈가 이화학당 당장 페인(Josephin O. Paine)의 도움을 받아 청색 상의와 흰색 치마의 간호복을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또 다른 자료들은 그가 간호 현장에서 쓰일 새 직업명으로 ‘간호원’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전합니다. 이런 작업은 당시 간호를 단순한 보조 업무가 아니라 독립된 직업으로 보이게 만드는 상징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훈장과 최근 조명

에드먼즈는 1945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받았습니다.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수여되었고, 이후 한국 간호계와 언론에서 그의 공로가 다시 널리 조명되었습니다. 2026년에는 로제타 셔우드 홀과 함께 여성 의료 발전을 기린 기념우표 소재로도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026년에는 로제타 셔우드 홀과 함께 여성 의료 발전을 기린 기념우표 소재로도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image.png


근대 조선의 의료적 공백과 여성 의료 선교의 여명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은 유교적 가부장 질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는 특히 의료 분야에서 여성들에게 가혹한 제약으로 작용하였다. 당시의 관습인 내외법은 여성이 남성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는 것을 금기시하였고, 이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었다.1 이러한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서구의 개신교 선교 단체들은 여성 의료진의 파견이 절실함을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곧 1887년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의 설립으로 이어졌다.2 하지만 병원이라는 하드웨어의 구축만으로는 근대적 의료 시스템의 완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고 환자의 회복을 과학적으로 관리할 전문적인 간호 인력의 부재는 당시 선교 병원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였다. 이러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조선의 간호 전문직 시대를 열기 위해 소명과 전문성을 품고 찾아온 인물이 바로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Margaret Jane Edmunds)였다.4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의 성장 배경과 전문적 정체성의 형성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는 187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미스폴즈(Smith Falls)에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혈통을 지닌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4 그녀가 성장한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나이팅게일의 간호 혁명이 전문직으로서의 간호학을 정립해 나가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에드먼즈는 어린 시절부터 크림 전쟁의 전장에서 헌신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일대기를 접하며 간호사가 되겠다는 숭고한 꿈을 키웠으며, 이는 단순한 직업적 선택을 넘어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도덕적 소명으로 자리 잡았다.7 경제적으로 평탄치 않은 가정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하였고, 당시 최고의 간호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손꼽히던 미국 미시간 대학교 간호학교(University of Michigan School of Nursing)에 입학하여 1894년 졸업장을 거머쥐었다.4

에드먼즈가 미시간 대학교에서 이수한 교육은 단순한 수발 차원의 간호를 넘어 해부학, 생리학, 위생학 등 근대 과학에 기반한 전문 간호학이었다. 1890년대 미국의 간호 교육은 표준화된 교육 과정과 엄격한 실습을 통해 간호사의 전문적 자율성을 확립해 나가던 시기였으므로, 에드먼즈는 당대 가장 선진적인 간호 지식 체계를 체득한 전문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8 졸업 후 그녀는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부(WFMS)의 선교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는 조선이라는 미지의 땅에 근대적 간호 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역사적 서막이 되었다.4

image.png


조선행의 결단과 초기 사역의 물리적 한계

에드먼즈가 조선 선교를 제안받았을 때, 그녀는 비행기도 없던 시대에 수개월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과 생소한 문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처음에는 망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10 그러나 그녀는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신앙적 결단으로 승화시켰으며, 1903년 3월 마침내 서울 땅을 밟게 되었다.2 당시 그녀의 도착은 개인의 이동을 넘어, 서구의 전문 간호 체계가 조선의 전통적 돌봄 문화와 조우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조선 도착 직후 에드먼즈는 1885년 호러스 알렌에 의해 설립된 제중원(광혜원)의 후신인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 교육 업무를 시작하며 조선의 의료 현실을 직접 목격하였다.2 그녀가 직면한 가장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과 여성 교육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 여성은 문맹이었으며, '간호'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학생을 모집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에드먼즈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어를 익히는 동시에 수술과 진료 보조 현장에서 몸소 시범을 보이며 간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10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설립과 제도적 기틀

1903년 12월, 에드먼즈는 보구여관 내에 한국 최초의 간호 교육 기관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의 전신)를 공식적으로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2 이는 한국 보건의료사에서 간호가 가사 노동이나 단순 보조의 영역에서 벗어나 '교육'을 통해 획득되는 전문직으로 전환되었음을 선포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교육 기관의 운영 및 협력 체계

에드먼즈는 학교 운영에 있어 체계적인 관리와 교파를 초월한 협력을 중시하였다. 그녀는 감리교뿐만 아니라 장로교 선교 의료진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교육 공간과 교수진을 공유하는 전략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였다.1 이러한 네트워크는 자원이 부족했던 초기 선교 환경에서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image.png

에드먼즈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간호사로서의 품격과 자부심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간호사를 지칭하는 한국어 명칭이 부재했던 상황에서, 'Nurse'를 '간호를 담당하는 전문 요원'이라는 의미의 '간호원(看護員)'으로 번역하여 정착시켰다.2 이 명칭의 제정은 간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는 중요한 언어적 기반이 되었다.


전문직 정체성의 시각화: 유니폼과 예모식

에드먼즈는 간호사의 전문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상징적 조치를 취하였다. 첫째는 한국 최초의 간호사 유니폼 도입이었고, 둘째는 예모식(가관식)의 개최였다.4

당시 조선의 복식 문화에서 머리에 무엇을 쓰는 행위는 남성의 전유물이거나 특정 관직의 상징이었다. 에드먼즈는 간호 학생들에게 캡을 씌워주는 예모식을 통해 이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전문적 권위를 지닌 존재임을 천명하였다.4 1906년 1월 25일 거행된 첫 예모식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부여하는 일종의 성인식과도 같았다.3 또한, 그녀가 고안한 유니폼은 위생적 기능성을 넘어, 병원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간호사가 수행하는 역할의 엄중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6

image.png


선구적 졸업생의 배출: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

에드먼즈의 끈질긴 교육적 집념은 1908년 11월 5일, 마침내 한국 최초의 졸업 간호사인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를 배출하는 역사적 결실을 보았다.4 이들의 졸업은 단순히 교육 과정의 이수를 넘어, 하층민 출신 여성이 전문 교육을 통해 지식인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회 개혁적 사건이었다.

김마르다는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고 보구여관을 찾았던 환자 출신이었다.6 이그레이스 역시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노비라는 비참한 처지에서 간호사라는 새로운 삶의 경로를 발견하였다.6 에드먼즈는 이들의 어두운 과거를 묻지 않고 오직 간호사로서의 자질과 열정에 주목하여 가르쳤다. 졸업 후 김마르다는 수간호사로서 후배들에게 해부학과 생리학을 강의하는 교육자의 길을 걸었으며, 이그레이스는 평양 광혜여원에서 마취 간호사와 수간호사로 활동하며 훗날 '의생' 면허까지 취득하여 독립적인 의료 활동을 수행하였다.13 이들의 성공적인 사회 진출은 에드먼즈가 지향했던 '교육을 통한 여성 임파워먼트'의 가장 찬란한 증거였다.

image.png


학술적 금자탑: 한글 간호교과서의 편찬

에드먼즈의 업적 중 가장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1908년과 1910년에 각각 상·하권으로 발행된 『간호교과서』이다.15 초기 보구여관의 수업은 교재가 없어 구전이나 선교사들의 개인 노트에 의존하였으나, ‘간호교과서’는 한글로 된 첫 간호학 교과서로 감리교인쇄소에서 출판됐다. 에드먼즈는 제대로 된 교재와 교과서가 없어 교육에 불편을 겪자 이를 해결하고자 교과서를 발간했다. 클라라 윅스(Clara S. Weeks)의 ‘Textbook of Nursing : Manual of Nursing’(1892)을 한국 실정에 맞게 번역한 것이다. 영어 교과서는 먼저 중국간호협회에 의해 한문으로 《護病要術 Essential of Nursing》(1905)로 번역 출판됐다. 에드먼즈는 미시간대 시절 배웠던 이 책을 한국에서 교과서로 사용하기 위해 그 상반부를 장재선에게 초역하게 했다. 에드먼즈는 영어 원문을 보며 긴요한 구절을 증감해 한국 상황에 맞게 수정했다. 여병현, 하란사, 현 순, 오세광이 감수했다.

image.png

출처 : 간호사신문(https://www.nursenews.co.kr)

이 교과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순한글 위주의 서술을 채택하면서도, 전문 용어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한자와 영어를 병기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18 이는 한글이 지식 전달의 도구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국어사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image.png

이 저작은 2016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658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간호학이 단순히 서구 기술의 모방이 아닌 한국어 기반의 학문 체계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다.9


결혼과 호남 지역으로의 사역 확장

1908년, 에드먼즈는 보구여관 교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윌리엄 버틀러 해리슨(William Butler Harrison)과 결혼하였다.2 해리슨은 1896년 입국하여 전라남도 목포와 전북 군산 등 호남 지역의 의료 및 교육 선교를 개척한 인물이었다.2 결혼 후 에드먼즈는 남편의 사역지인 목포로 거처를 옮겨, 서울의 선진적인 간호 시스템을 지방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녀의 호남 사역은 서울에서의 제도권 교육과는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설립한 병원과 학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여성들을 가르치며 지역 사회의 보건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매진하였다. 1911년 목포에서 태어난 아들 찰스 해리슨은 훗날 한국 전쟁에 미 해병대 장교로 참전하여, 부모가 헌신했던 이 땅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6 이는 에드먼즈 가문의 한국에 대한 사랑이 대를 이어 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이다.


은퇴와 별세, 그리고 늦게 찾아온 영예

에드먼즈는 1928년 남편과 함께 25년간의 조선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하였다.6 그녀의 귀국은 한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조선에 이식된 근대 간호 교육이 자생력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1945년,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바로 그해에 74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4

그녀의 공적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으나, 한국 간호계의 지속적인 발굴 노력 끝에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 받으며 역사적 복권이 이루어졌다.4 2015년 서울 세계간호사대회 개회식에서 그녀의 증손자들이 훈장을 수여받을 때, 전 세계 간호사들은 조선 간호의 어머니인 에드먼즈의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4


에드먼즈의 유산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가 한국 간호 역사에 남긴 유산은 단순히 '최초'라는 수식어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간호가 단순한 노동이 아닌 고도의 과학적 훈련과 윤리적 소명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녀가 강조한 "인내와 희생,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절제"의 간호 철학은 오늘날 고도의 기술 중심적 의료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한 간호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1

그녀가 세운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으로 이어져 수만 명의 간호사를 배출하였고, 그녀가 편찬한 교과서와 제정한 명칭은 한국 간호학의 학문적 뿌리가 되었다. 에드먼즈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은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여성이 어떻게 전문성을 획득하고 사회적 주체로 성장했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이다. 그녀는 낯선 땅의 소외된 여인들을 간호사로 길러냄으로써, 조선의 여성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자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선사한 진정한 교육자이자 치유자였다.

에드먼즈의 헌신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간호 현장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돌봄을 제공하는 모든 한국 간호사의 활동 속에는, 1903년 서울의 찬바람을 뚫고 조선 여인들에게 캡을 씌워주며 희망을 노래했던 에드먼즈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삶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인류애와 전문직적 사명감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본 보고서에서 다룬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의 생애와 업적은 향후 한국 근대 의료사 및 여성사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이며, 그녀가 남긴 교육적 방법론과 전문직 윤리는 미래 간호 인재 양성을 위한 철학적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간호의 여명기에 그녀가 비추었던 촛불은 이제 거대한 횃불이 되어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참고 자료

1. 혼란의 시대, 간호 교육과 의료 활동에 헌신한 - The-K 매거진,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thekmagazine.co.kr/data/theK_2203/sub1_05.php

2. Stories of American Methodist Missionaries from Duke's Korean ...,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blogs.library.duke.edu/blog/2025/04/01/stories-of-american-methodist-missionaries-from-dukes-korean-studies-collection-part-2/

3. [The management of nurses' training school of PO KU NYO KWAN ...,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pubmed.ncbi.nlm.nih.gov/22343700/

4. 간호사들의 어머니 '에드먼즈' 대한민국 훈장 추서 - 메디포뉴스,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06757

5. Women's Leadership and Nursing Profession in South Korea - PMC,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467437/

6. South Korea Honors American Nurse Who Founded First Nursing School in 1903 - character,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charactermedia.com/south-korea-honors-american-nurse-who-founded-first-nursing-school-in-1903/

7. 첫 한국인 졸업간호원 김마르다, 1908 -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 - 티스토리,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816

8. Margaret Jane Edmunds, 1894 - Alumni Association of the University of Michigan,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alumni.umich.edu/notable-alumni/margaret-jane-edmunds/

9. 문화재청 '간호교과서' 문화재 등록 - 후생신보,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www.whosaeng.com/83730

10. 'Mother of Korean nursing' honored - The Korea Times,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koreatimes.co.kr/southkorea/20150619/mother-of-korean-nursing-honored

11. Collection Spotlight Archives - Duke University Libraries Blogs,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blogs.library.duke.edu/blog/category/collection-spotlight/

12. Korea's first nursing school founder honored,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koreaherald.com/article/447160

13. 이화의료역사이야기 | 보구녀관 |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part.eumc.ac.kr/dept/pogoonyogoan/bbs/bbsView.do?menuId=003020&&cid=2508

14. GOOD NAME – A WONDERFUL HUMAN CHARACTERISTIC "Good name is better than good oil" (Ecclesiastes 7:1). - ResearchGate,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88427294_GOOD_NAME_-_A_WONDERFUL_HUMAN_CHARACTERISTIC_Good_name_is_better_than_good_oil_Ecclesiastes_71

15. 최초의 한글 '간호교과서' 문화재 됐다 - 간호사신문 - The Korean ...,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m.nursenews.co.kr/page/ArticleDetailview.asp?sSection=135&idx=6890

16. 한국 간호교육의 선구자 에드먼즈,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814

17. 이그레이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81210

18. Kanho Kyokwaseo (Textbook of Nursing), the First Published Korean Nursing Books,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40569388_Kanho_Kyokwaseo_Textbook_of_Nursing_the_First_Published_Korean_Nursing_Books

19. 간호교과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ko.wikipedia.org/wiki/%EA%B0%84%ED%98%B8%EA%B5%90%EA%B3%BC%EC%84%9C

20. The Journal of Korean Academic Society of Nursing Education, 4월 20, 2026에 액세스, https://www.jkasne.org/journal/view.php?number=190

매거진의 이전글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