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프로콥(prokop)
부다앤 페스트
나는 반친구 안드라스를 프로콥(prokop)이라고 부른다. 프로콥은 안드라스의 성이다. 프로콥은 내가 평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고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말해 볼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프로콥이라 부르기로 했다. 안드러스애게 프로콥이라는 성씨가 어디서 기원 됐냐고 내가 묻자 그리스 어디쯤이라고 대답한 것이 기억난다. 우리나라처럼 성씨의 근원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의 아버지가 삼성에서 일하며 한국으로 파견되었을 때 처음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포로콥은 케이팝의 아이돌 외모를 동경한다. 그리고 엘프처럼 귓바퀴 위쪽을 뾰족하게 만드는 성형 수술을 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헝가리에서 왔으며 패션을 배우기 전에는 댄스 스쿨을 다녔다고 했다. 그는 친절하고 착했기 때문에 영어가 서툰 내가 대화를 나누기 좋은 상대였다.
방학을 맞이하여 프로콥이 살고 있는 헝가리로 놀러 갔다. 공항에 도착해 스스로 프로콥의 집으로 찾아가야 했다. 프로콥의 집은 부다페스트의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이라 공항에서 그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목적지에 도착 후 택시기사가 현지인이 마중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일반적인 관광객이라고 생각하고 박아지 요금을 더 청구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핸드폰을 빌린 것을 빌미로 요금을 더 청구하려 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로콥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의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 그리고 큰 강아지도 함께였다. 프로콥의 집은 부다와 패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단독주택이었다. 큰 마당에 잔디도 있는 2층 집이었다. 방문하기 전까지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부다와 패스트라는 도시로 나눠진다는 것을 몰랐다. 프로콥은 자신의 형이 쓰던 빈방을 내가 묵을 방이라며 소계해 주었다. 작지만 아늑했다. 그리고 그는 부다 패스트 여러 곳을 나와 같이 관광했다.
부다 페스트의 도시 전경을 보기 위해 부다성에 올랐다. 그곳에 온 한 헝가리인 아저씨는 내가 한국에서 온 줄 알고는 군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자기도 군대에 갔다 왔다고 했다. 프로콥에게 물어보니 예전에는 헝가리 사람들도 군대에 갔다고 한다.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들었다. 프로콥이 자신이 머리를 핑크로 물들이고 헝가리 길거리를 나니면 지나가던 사람이 게이라고 생각해 머리채를 잡아채고 해코지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보수적인 성향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은 프로콥의 집에서 해결을 했다. 프로콥의 어머니가 간단한 음식을 해놓고 가시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애플 수프였다. 풋사과로 만든 우윳빛 갈 스푸에 풋사과 조각들이 들어가 있다. 풋사과로 수프를? 맛이 짐작할 수 없었지만 한입 먹어본 후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빵 조각에 홀스래디쉬를 발라 먹는 것을 좋아했다. 홀스 레디쉬는 고추냉이와 같은 톡 쏘는 맛이 나는데 색은 흰색이다. 이것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여행도중 프로콥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남녀 사이에도 친구가 있듯 성소수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르게 생각 안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친구와 다르지 않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성소수자라고 헤서 특별하게 혐오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형도 성소수자라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그도 그의 형도 손자를 안겨드릴 수없어 슬프다고 말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공감이 갔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남들과 특별하다고 느꼈을 때 형에게 말했고, 형도 같은 성향이라고 고백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는 그저 프로콥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그냥 다른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못 누린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크나큰 슬픔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 프로콥은 평소 착하고 배려심이 많다. 그의 착한 이면에 그런 슬픈 상황들이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프로콥이 자신의 상황을 진심으로 말해 줘서 그를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도 나를 친구로 생각했기에 본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사연도 나에게 털어 노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타패스트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관광지라 그런지 곳곳에 조명이 건축물과 다뉴브강을 비춰 온 도시가 황금빛이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 번 더 와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도 프로콥은 이곳에 있을 것 같다.
마지막날 우리는 세체니 온천을 방문했다. 고풍적인 건축물과 온천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니 밤에 디제이 파티도 여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에 온다면 디제이 파티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나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와서 몇 시간 있다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고, 프로콥은 좀 더 온천에서 즐기다 간다고 했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영어를 못하는 택시기사 때문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영어가 가능해서 통역해 주었다. 알고 보니 택시기사가 카드 단말기가 없어서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했다. 행인이 다른 택시기사의 카드단말기에 내 카드를 결제하면 그만큼 현금으로 준다고 했다. 의심스러웠지만 방법이 없어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을 받았다. 그렇게 어렵게 환전된 돈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