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은 반친구 Dino(디노)가 자기가 살고 있는 중국의 Xiamen(하문)이라는 곳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간단한 검색으로 Xiamen(하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Xiamen(하문)은 중국의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항구도시였다. 바닷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도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중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Dino(디노)가 살고 있는 지역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Xiamen(하문)까지의 항공 가격은 30~40만 원 정도였다. 내가 찾은 항공 가격 중 저렴한 편에 속한 항공은 반드시 경유를 해야 했다. 갈 때는 홍콩을 경유하고 올 때는 베이징을 경유하는 항공으로 결정을 했다.
Xiamen(하문)의 공항에 도착하니 Dino(디노)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Ada(아다)라는 Dino(디노)의 가장 친한 친구도 같이 마중 나와 있었다. Dino(디노)의 아버지 차를 타고 숙소 가는 길은 이색적이었다. 제주도에서 보던 야자수 나무를 볼 수 있었고, 길게 늘어선 아이보리 색 아파트도 이색적이었다. Dino(디노)의 아버지는 차로 나와 친구들을 Dino(디노)가 미리 예약한 내가 묵을 숙소에 내려주고 가셨다.
Dino(디노)는 내가 머무는 동안 Xiamen(하문)의 최대한 많은 곳을 소계해 주려고 노력했다. Dino(디노)는 Xiamen(하문)을 'Amoy(어노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중국으로 통합되기 전 Xiamen(하문)에 살던 소수민족의 이름 같았다. Dino(디노)의 부모님도 집에서는 Amoy(어노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Dino(디노)는 Amoy(어노이)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중국으로 통합되면서 아무래도 본토어가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하지만 Amoy(어노이)라는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하다 보니 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Amoy(어노이)는 상당히 발전된 곳이었다.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는 높은 빌딩이 없는 개발도상국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Amoy(어노이)의 메인 거리는 높은 건물이 많았다. 심지어 그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는 오래된 건물의 앤티크 한 분위기 살린 감성적인 카페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된 곳과 반대로 재래시장 주변에는 아직도 예전의 낙후된 건물들이 있는 곳도 있었다. 개발된 곳과 아닌 곳이 길하나로 아주 가깝게 마주 보고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철장에 갇혀있는 오소리 같이 생긴 동물이 있었고, 이동물에서 나온 가시도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악어를 토막 내어 팔고 있었다. Dino(디노)에게 악어를 어디서 잡아왔냐고 물으니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 밖에 처음 보는 식자재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쇼핑의 거리에는 매장 바로 앞에 스케이트보드장을 운영하는 스케이트보드숍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슈프림 티셔츠와 자체 제작한 의류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Amoy(어노이) 슈프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중국의 유명한 MBA선수가 오픈한 농구화 숍에서는 내가 사고 싶었던 나이키 에어업템포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안 맞아서 포기해야 했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중국브랜드의 핀스트라이프 후드 집업을 구입했다. 캐주얼웨어에 주로 사용하는 핀스트라프원단으로 스트릿 무드의 후드집업을 만들었다는 게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클럽에 방문했다. 관광도시라 그런지 유흥도 많이 발전한 듯했다. Amoy(어노이)의 클럽은 2~3 군대 가 있었다. 우리는 날마다 다른 곳을 방문했다. 클럽들은 한국의 웬만한 클럽보다 넓고 시설도 좋았다. DJ와 조명 노래도 뒤처지지 않았다. 신기한 점은 목걸이로 된 큰 명찰을 걸고 있는 남자 도우미들이 여럿이 있었다. 도우미라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클럽에서 사고가 안 나도록 방지하는 사람들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 도우미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한다. 내가 담배를 살 곳이 없냐고 하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담배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팁을 주려고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들은 술 취한 여자에게 남자들이 접근하면 막아주기도 하였다. 클럽 안의 안전요원 같았다.
클럽 안에는 뚱뚱하고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돈이 엄청 많은 사람 같았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다가 옆에 있는 백인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었는데 자기는 중국인이라며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중국에서 자라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외모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을 경험한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초대받은 여러 테이블을 오가며 클럽을 즐겼다.
하루는 Dino(디노)가 구랑이라는 섬에 데려갔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구랑섬으로 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줄이 엄청 길었다. 줄서있는 인원만 봐도 얼마나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Dino(디노)는 안 되겠는지 업자에게 뒷돈을 줘서 봉고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줄은 길었지만 이전보다는 적었던 것 같다. 기다림 끝에 우리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구랑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Dino(디노)는 어렸을 때 구랑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구랑섬은 모든 것이 관광객들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관광객들을 위한 작은 숍들이 늘어서있는데 하나같이 진주를 팔고 있었다. 바닷가라 진주가 많이 나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길거리에서 굴로 만든 전을 팔고 있었다. Dino(디노)는 굴전은 이곳에서 꼭 먹어야 한다며 사주었다.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맛있었다. 중국에서 모래사장을 보니 신기했다. 중국인들도 우리나라 사람과 다름없이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ino(디노)의 친구 Ada(아다)는 친절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합류하여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Ada(아다)는 영어를 곧잘 했다. 나와의 의사소통은 거의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신기해서 영어를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내 친구들은 학교에서 배운 영어로는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불가능했다. 물론 단편적인 예시 일수는 있지만, 주입식으로 가르처서 실전에는 사용할 수 없는 교육보다는 실전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중국의 영어교육이 한국보다는 앞서있는 것 같았다.
항구의 도시답게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Dino(디노)와 Ada(아다)는 나를 로컬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요리를 주문하고 노상에 펼쳐진 식탁과 의자에서 음식을 먹었다. Dino(디노)가 다른 가게에서 밥을 비닐봉지에 따로 사와서 요리와 같이 먹었다. 요리의 이름은 하나도 몰랐지만 정말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영국에 있을 때도 Dino(디노)와 차이나타운에 가면 주문은 Dino(디노)가 알아서 했고 주문한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거리의 중국 남자들은 더운 날씨에 모두 윗옷을 벗고 다녔다. 인구가 많은 중국 답게 거리에도 사람이 넘쳐났다. 관광객들은 찾아 볼 수 없는 샤먼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한국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다른 날에는 2층으로된 로컬식당에 갔다. 1층에는 큰 수조가 있었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몇몇 중국 친구들도 와서 어울렸다. 원형의 중국식 탁자에 둘러않아 식사를 했다. 이곳도 정말 맛있었다. 이동 중 학교운동장을 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Dino(디노)의 친구에게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이 있냐고 물어보니 중국은 원래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한 친구가 식용 벌레를 파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한국에서 번데기를 먹으니 식용 벌레를 먹어보라 했다. 나는 못 먹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에게 먹어보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못 먹는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도 우리는 클럽에 가서 밤늦게 까지 놀았다. 다음날 비행시간이 새벽 6시여서 Dino(디노)는 목적지를 핸드폰 메모장에 수기로 한문으로 적어주고 호텔 카운터에 내가 퇴실할 때 택시를 잡아주라고 부탁했다. Dino(디노)는 잘 가라는 인사를 했고, 나는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Amoy(어노이)에 있는 동안 Dino(디노) 덕분에 여행으로도 경험 못할 값진 로컬 경험을 하였다. Dino(디노)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