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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첫 패션 스튜디오 인턴쉽

영국 Dragana Perisic

by KIDAE 기대 Feb 10. 2025

 나는 영국 쇼디치의 한 여성복 매장 지하에서 재킷을 만들 원단을 재단하고 있다. 세르비아 출신인 중년의 패션디자이너는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듯 택배가 잘못 왔다고 혼자 소리를 지르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갱년기가 온 건가? 아니면 패션 디자인이라는 직업이 그녀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만들었나? 감정기복이 심한 디자이너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면서도 아침마다 나의 커피를 사 오는 따뜻함도 있다. 중년의 여성 디자이너의 이름은 Dragana Perisic이다. 그녀는 그녀의 이름과 같은 숍을 운영하고 있다.



London College of Fashion 대학의 2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학과 과정 중 한 학기는 Placement라는 괴정이 있다. 쉽게 말해 외부 패션기업에서 인턴쉽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선해 주는 것도 아니고 학생 본인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 영국의 교육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처럼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을 가져와 머리에 넣어 주지 않는다. 학생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서 찾아야 한다. 학교와 교수님들은 옆에서 도와줄 뿐이다.


 모든 학생들이 처음 겪는 Placement라는 학과 과정에 당황하였지만, 우리는 한 사람씩 영국에서의 첫 인턴쉽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나는 1, 2 학년 때까지 학교에서 작업한 것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고, 간단하게 나를 소개할 말을 적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아는 모든 패션 스튜디오에 이메일로 보냈다. 처음에는 답장이 오는 곳이 없어서 지원을 더 많이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발견한 영국의 패션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책속에서 패션스튜디오의 이메일을 발견하곤 더욱 많은 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나중에 알게된 잡사이트와 직접 방문하여 CV(이력서)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닥치는 대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쇼디치의 한 작은 여성복 개인 브랜드였다. 디자이너는 내가 작업한 옷이 보고 싶다고 면접날 가져오라고 했다. 중년의 여성 디자이너는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봉재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영국에서의 첫 인턴쉽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이 앞서 언급한Dragana Perisic이다. 참고로 쇼디치는 올드스트리트는 자유롭고 힙한 분위기로 다양한 편집숍, 빈티지숍 등 유명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학교가 끝나면 이곳의 옷가게들을 돌면서 새로운 시즌의 옷을 구경하며 옷의 구조와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 날짜를 확인 하는 이메일

 

 그다지 유명하지 않는 개인 브랜드라서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영국에서 나의 첫 인턴쉽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이곳의 인턴쉽이 끝나고 나서 더욱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다른 곳도 지원을 해서 파리패션 위크에서 활동하는 브랜드와 영국 패션위크에서 활동하는 브랜드 등 여러 패션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이 쇼디치의 작은 디자이너 숍은 일층에 매장이 있고 지하에 옷을 만드는 공간이 있다. 아침에 오면 일층 매장의 청소기로 바닦을 정리하고, 매장정리, 시즌 상품 구성 및 디스플레이 등을 했다. 드라가나(Dragana)는 내가 맡은일을 잊지 않고 잘한다고 나에게 매장 열쇠를 주며 관리를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 부터 원단 재단, 봉재 등 실제로 판매될 상품들의 제작도 하게 되었다. 바느질을 곧잘 했던 나는 디자이너가 원단으로 개발한 목걸이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국인 손님들이 방문을 했었는데 한국 말을 할 줄아는 내가 응대를 하게 되었고 그 손님들에게 100만원이 넘는 재킷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자 드라가나(Dragana)는 아침마다 칭찬과 함께 나를 위한 커피를 직접사와 제공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내가 판매한 재킷의 디자인, 재킷 아래 부분이 분리되어 스카프로 활용 할 수 있다. 암석의 레이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숍의 대부분의 상품들은 드라가나(Dragana)가 직접 개발한 상품들이다. 숍의 겉모습만 보면 그냥 동네의 중년들을 위한 옷가게 같지만 아이템 하나하나 살펴보면 디자이너의 고뇌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친구에게서 영감은 받아 만든 크로스 백은 라이딩을 할 때에 걸리적 거리지 않고 편안한 착용감을 준다. 바지의 패턴을 이용해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치마는 이전에 일했던 인턴이 패턴을 훔처가 생산을 보류하고 있다. 나도 이치마의 디자인은 탐이났다. 그 밖의 색감이 독특한 머플러 등 의외로 실용적이고 호감이 가는 아템들이 꽤있었다.



 주에 3번은 드라가나(Dragana)의 어시스턴트인 레이첼이라는 흑인 여자아이가 출근한다. 레이첼은 덩치가 나보다 컷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 갔다왔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친절히 설명해 줬고, 매장 지하에서 나와 함께 판매된 상품을 대채할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녀의 옷도 이곳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100만원 때의 높은 가격대 임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팔려 그녀를 기쁘게했다. 확실히 획일화된 디자인을 좋아하는 한국과는 달리 개성있고 핸드메이드를 좋아하는 영국사람 들은 어설프더라도 독특한 디자이너의 감성이 들어간 상품을 선호 하는것 같다.


 

 레이첼에게 여름 휴가로 갔다온 리스본에 대해 이야기를 한적이있다. 나는 레이첼에게 리스본의 한 해변에 방문 했는데 그 곳의 백인들은 동양인을 처음 보는듯이 나와 친구들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계속 쳐다 보았다고 말했다. 레이첼은 자신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레이첼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 흑인을 처음본 중국인들은 신기해하며 심지어 다가와 만지기까지 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드라가나(Dragana)와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드라가나는 내가 왜 한국에서 이렇게 먼 영국까지 패션을 배우러 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알랙산더 맥퀸이 좋아서 그가 활동했던 곳에서 공부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맥퀸이 살아있을 때 직접 본 적이 있다며, 네가 직접 그를 봤다면 실망했을 거라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패턴사인데 맥퀸과 함께 일을 했었다고 했다. 친구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마다 맥퀸이 그녀의 친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맥퀸은 항상 예민했고 그녀의 친구가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리면 괴팍하게 변했다고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맥퀸이 그렇게 예민했던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영국에 오기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심리적 압박이 심했으면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을까? 지금은 패션계의 전설로 남았지만, 갑작스러운 유명세와 매 시즌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했던 그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드라가나 인스타그램

 맥퀸이 측은하게 느껴겼다. 그가 전설적인 인물이라 해도 내가 인턴쉽을 하고 있는 이숍의 주인과 같은 패션을 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숍의 주인 중년의 패션디자이너가 택배를 뜯으며 신세 한탄을 하듯이, 맥퀸도 자신이 고용한 패턴사에게 자신의 삶을 한탄하듯 괴팍하게 굴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멀게 느껴졌던 전설 같았던 맥퀸의 이야기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들려주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꿈의 세계에 더욱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인턴쉽이 끝나고 중년의 패션디자이너는 가끔씩 나에게 전화를 하곤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학교일로 바쁘다고 끊었지만, 지금 이렇게 가끔씩 그리워하는 추억으로 남아있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전화를 잘 받아 줄걸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보게 된다면 드라가나가 나를 반겨 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영국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곳에 한번 들르고 싶다.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그녀를 팔로우 하며 가끔씩 좋아요를 누른다. 얼마전 내가 올린 영국 학교의 졸업장에 그녀가 좋아요를 눌렀다. 그녀도 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듯 그녀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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