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모대학교 문화예술 CEO과정에 입학하는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문화는 무엇이고 또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웬 문화예술? 하면서 나 스스로도 어울리지 않는 분야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CEO과정에 입학한 원우들을 면면히 보면 어느 누구 보다도 좀 더 배웠고 재력도 좀 있는 유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과정 속에서 소개되는 외국 문화예술에 대하여 어느 정도 학식과 경험이 내재된 부인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평소 문화예술분야의 문외한인 나는 그들(핵심들과?)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에서 나와 좀 비슷한 사람끼리만 어울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과정이 중간쯤 지나가다 보니 원우들 중심으로 해외여행이 계획되었는데 '인상파와 함께하는 프랑스 문화기행'이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아를, 아비뇽,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 화실, 북부에 있는 몽셍 미셀 등 사실상 프랑스 문화예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알찬 여행이어서 나는 부부동반 여행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수년 전에 업무 출장으로 프랑스에 가보긴 했었지만 파리만 다녀온 경험만 있었다.
우리 일행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 도착하니 전에 가봤던 에펠탑, 개선문 등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보고 있던 중 문득 강 건너 루브로 박물관이 있는데 우리 일정계획에서 빠져있는 것을 알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루브로 박물관은 일정에 없으니 사진이라도 남기고 가자 하고... 우리 부부는 루브로 박물관 앞까지 와서 아쉽지만 사진만 찍고 되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일정에는 그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는 샤크라쾨르 성당 관람 계획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유명지는 우리 일행 중에 "평소 파리에 안 가본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는 자신감(?)으로 여행 계획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칭 명문대 서양미술학과 출신이라는 현지 가이드에게 문의를 했다. 우리 일행 중에 특히 내 아내는 프랑스 여행이 처음인데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가이드는 나에게 '단체여행 중에는 소수 인원들 만으로 개인행동을 할 수 없는데 꼭 가보고 싶다면 일행 중 10명 정도 간다면 호텔로 가는 코스를 변경해서 내려주겠다'라고 했다.
나는 아내를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타진해 보았다. 생각과 달리 여러 명이 같이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가이드는 몽마르트르 언덕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가이드는 나에게 '선생님! 지금부터는 선생님이 호텔까지 일행을 책임져야 합니다'하고 가이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10명의 우리 일행을 모시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갔다.
석양이 지는 몽마르트르 언덕! 모두들 금빛으로 물든 파리 시내를 보면서 감탄을 자아냈다. 정면에는 조금 한 야산조차도 없는 지평선 같은 파리 시내...
나는 아내에게 "가이드를 힘들게 설득해서 왔는데... 올라온 보람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니 아내는 "파리 시내가 너무 예쁘다"하면서 즐거워했다. 나는 바로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는 샤크라쾨르성당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성당 내부는 매우 소박한 느낌이었는데 내부공사까지 해서 어수선하기도 하다. 나는 성당을 나와서 길거리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이미 해질 무렵으로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 좁은 골목에 그림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나와 아내는 여러 그림을 보다가 그림 1장당 2 유로 하는 모사 그림(복사품) 5장을 사서 우리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성당 앞으로 다시 왔다.
우리 일행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신 원우 한분이 나를 보는 순간 어쩔 줄 모르고 반겨주었는데... 이 원우님은 혼자 구경하다가 문득 국제미아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지나가는 경찰에게 호텔로 데려가 달라고 사정도 해 보았다고 한다.
아~ 이 분을 세심하게 챙겨주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을 했다. 나는 "죄송합니다. 이제 제가 잘 모시고 다니겠습니다"하면서 심적 안심을 시켜주었다.
처음 해보는 지하철 티켓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리는 개선문 역에 도착해서 개선문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티켓팅을 하려고 하니 벌써 시간이 경과해서 마감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움을 느꼈다. 우리 일행도 중요하지만 내 아내에게 개선문 옥상에서 금빛으로 물든 에펠탑뿐만 아니라 파리 방사형 12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개선문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나는 우리 일행들에게 '상제리제 거리에 있는 파자 집에서 맥주 한 잔 어때요? 하고 물어보니 우리 일행 중 반대하는 사람들은 1명도 없었다. 시골 촌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고생하는 것 같은 갈증이 있었던 것이다.
파김치가 된 격조 높은 문화예술인들은 피자집에 들어와서도 한 잔의 생맥주가 너무 고마웠던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현지인들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떠들고 현지 피자 음식을 먹으면서 계획이 없던 여정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 한 분은 '내가 파리를 여러 번 왔었는데 파리 시내를 지하철까지 타면서 돌아다니긴 처음이야! 너무 좋다'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나 했다. 서로 음식값을 지불하겠다는 의견을 집약하여 " 오늘 음식값 및 지하철 요금은 모두 엠 빵입니다'라고 하면서 기분 좋게 나왔다.
나는 우리 일행이 무사히 호텔에 도착시키기 위해서 샹젤리제 거리 노상에서 여러 대의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2-3미터 밖에서 우리 일행 한 분과 현지인으로 보이는 흑인 친구와 반갑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유어 차이나? 재팬?" "노우 아이엠 코리아", 결국 흑인 친구는 전문 소매치기였다. 어설프게 당한 B 회장님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B회장님의 행동에 너무나 어이없었다. 그렇게 당부드렸는데... 우리 일행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였고 모두 숙소에 올라갔다. 갑자기 내 방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 동행자인 C 사장님께서 "우리 B회장님을 위로해 주자"라고... 나는 호텔 Bar에서 새벽 3시까지 B회장을 위로해 주었다. 나는 앞으로 가이드만큼은 하지 말자고 속으로 굳은 결의를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나는 또 가이드를 하고 말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