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행
파리의 여행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파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일행은 오후 일정을 마치고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 데 우리 일행 중 한 여자 원우가 다가와서 "저와 언니, 오빠 부부와 한 팀으로 저녁에 파리 중심지에 가요"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어제 우리 일행들과 몽마르트언덕위에 있는 샤크라쾨르성당에 갔다가 조금 늦게 도착한 관계로 결국 개선문 루프탑에 올라가지 못한 억울함이 있어서 원우들의 제안과 무관하게 우리 부부만으로 다녀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너무 인원들이 있어서 모시고 다니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래 누구하게도 소문내지 말고 우리끼리만 가자" 나는 아내에게 "저녁에 우리 둘만 다니면 위험하기도 하고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봐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니깐 데리고 가자"하고 말했다. 아내도 "그러자"하고 응해주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와서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서 호텔 로비에 나왔다. 그런데 호텔 로비에는 우리 일행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그 일행들 중에는 나에게 붙어서 야간투어 할 멤버들과 지도교수팀 하고 함께 할 멤버들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어제 야간투어가 소문났었는지 나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멤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도교수 옆에는 도슨트 요원으로 동행한 모 대학 연구교수가 파리 유학시절에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을 만나고 있었고 우리 일행들과 함께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바로 달려가서 나하고 동행하고 싶은 멤버들을 파리 유학생에게 모두 넘기고 싶은 꾀가 났다. 파리 유학생들은 젊었을 땐 한 인물 했을 것 같은 선남선녀였을 것 같은데 오랜 유학생활 속에서 다소 창백하고 초췌해 보였다. 아무튼 해외유학생활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우리 일행들에게 파리 밤을 구경시켜줄 수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교수 동료 유학생들은 "우리는 그런 계획은 없고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려고 왔어요"하면서 다소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동행을 희망하는 원우들을 모아보니 모두 10여 명이나 되었다. 저녁 먹으면서 4명만 가기로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어제보다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가야만 했다.
먼저 지하철역으로 출발했다. 뒤따라오는 우리 원우들은 마치 어린이들 같이 천진난만해 보였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수록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아무것 모르는 내가... 여기 살아보지도 않은 내가... 저분들을 혹시나 잃어버리면... 나는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일은 상상도 해서는 안돼! 내가 잘 데리고 다니면 되지... 암...
나는 우리 일행을 모시고 개선문에 도착했다. 바로 개선문 입장 티켓을 사서 약 50미터 높이의 개선문 옥상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방법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야 하는 데 매우 좁은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쉽지 않았다.
몇몇 연세가 있으신 분은 매우 힘들게 올라가고 있었다. 마침내 옥상에 올랐다. 50미터의 개선문이라도 파리의 12 거리 방사형 도시임을 바로 알 수 있었고 저 건너편 에펠탑은 불꽃놀이하듯이 수많은 전구에서 형형색색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어서 실제로 가서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진으로도 쉽게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들은 너 나할 것이 없이 눈으로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가며 열광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참으로 황홀한 파리의 밤이었다.
나는 우리 일행을 한분 한분 점검해서 개선문 지하도에 들어가서 에펠탑으로 가는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뒤로 우리 일행을 꼼꼼하게 점검하였다. 내 뒤 후미는 아내가 점검하고 있었다. 혹여 남편이 일행들을 잃어버리면 어찌하나 하는 노파심이었다. 우리 일행은 에펠탑에 도착했다. 다행히 에펠탑은 영업하고 있었고 입장권을 쉽게 사서 올라갈 수 있었다. 시간이 다소 늦어서 그런지 여행객들은 많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아마 이 시간에 에펠탑을 관람하는 여행객 중 동양인은 우리 일행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파리 전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 도시의 지평선은 끝이 없었고 지평선 끝까지 전기 빛이 보였다. 역시 대단히 넓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 늦은 시각 에펠탑의 빛도 식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들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충분히 묻어 있었다. 나는 다시 노트르담 사원으로 가기로 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지하철보다는 택시를 선택했다. 3명 단위로 택시를 태웠다. 약 4대의 택시기사에게는 노트르담 사원 정문까지 모셔달라고 개별적으로 부탁을 했다.
다행히 모두 노트르담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트르담 사원의 조명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각자 사진을 찍은 뒤 파리 제7대학(소르본) 앞으로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기며 불금을 느끼고 싶었다. 노트르담 사원을 지나 센 강 옆에 대학가가 있었는데 수많은 대학생들이 나와서 젊음의 열기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가게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가게 지배인이 입장을 거절하였다. 이 저녁에 아시아인들이... 나이도 제법 있는 동양인들이... 왜 우리 가게에... 하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인종차별을 느끼면서도 혹시 가게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 일행들이 이 장면을 봤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까지 했다. 나는 좁은 골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일행을 데리고 나와 노트르담 사원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앉아 맥주 한 잔씩을 마실 수 있도록 주문했다.
어느덧 밤 10시 노트르담 사원의 빛은 사라졌다. 우리도 이제 호텔로 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우리 아쉬움 속에서 건배를 하였다. 모두들 이렇게 아름다운 파리의 밤을 경험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제가 파리는 2-3번 왔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어떤 일행 중 한 분은 나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이분들과 함께하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웠지만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제와 같이 소매치기 사건이 없도록 더욱 철저히 점검하였고 택시 한 대마다 자세히 이야기해 주어서 그런지 우리 일행들은 모두 무사히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어쩌다 얼떨결에 여행 가이드'가 된 나는 호텔 앞에서 담배 한 개비 건네들며 밤새 긴장했던 가슴을 겨우 쓸어내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