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아, 너는 괜찮아?
20160920
최근에 우리 동네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나 봐요.
예전에 왔던 아저씨들은 알 수 없는 이상한 언어들로 이야기를 했고, 나한테는 상냥하게 대해주며 학교까지 따라왔었어요. 엄마가 안내했던 쓰레기장에서는 그날도 동네 사람들이 찌그러진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고기를 꺼내서 먹었어요.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던 아저씨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건 기억이 나요. 그리고 며칠 동안 마을 여기저기서 카메라가 보이더니 사라졌어요.
그 후에 혹시라도 일렁거리는 화면에 그때의 우리 동네가 나올까 봐 잘 보지도 않던 텔레비전을 틈틈이 챙겨봤지만, 그런 방송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를 찍어갔던 화면은 도대체 누가 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금방 잊었어요.
우리 마을은 노는 사람이 많아 보여도 항상 나름대로 다들 바쁘니까요.
그리고 몇 달 후에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또 왔어요.
지난번에 카메라 여러 대를 들고 와서 우리 마을 구석구석을 찍어갔던 아저씨들과는 조금 차림새가 달라요. 하나같이 똑같은 조끼를 입고 있어요.
카메라는 없었지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아픈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마약을 얼마나 복용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봐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같이 학교까지 가면서 이야기도 나눠요. 서툴지만 우리나라 말을 하는 J는 그중에서도 나에게 처음을 말을 건넨 사람이에요. 긴 문장은 더듬거리면서도 열심히 손짓 발짓을 하는 J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고 했지만, 얼굴은 어려 보이는 동양인 남자예요.
학교를 가는 길은 언제나 멀지만, 난 학교를 빠지지 않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했어요. 그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나의 꿈은 ‘친절한 경찰’이라고 말했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져요.
얼마 전에 반 친구 P에게 우리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올림픽이 어떤 건지는 알고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으니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P는 그 이야기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했어요. 자신의 집에서 작은 화면의 텔레비전, 그 속에 나온 유도 선수 이야기를 해줬는데, 우리 마을 같은 가난한 마을 출신이라고 했어요. 그 말을 하는 P의 표정은 왜 그런지 좋지 않았어요.
어쨌든, P의 마을은 우리 마을보다 더 학교에서 먼 곳인데 오늘은 P가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해요. 어젯밤에 멀리서 울리는 총소리를 들었거든요. 마을을 관리하는 마약상과 경찰들이 또 총질을 한 거겠지만, 그 사람들만 다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나를 밤에는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해요. 둘째형은 이미 마약 조직에 들어가 버렸지만, 나는 그러지 않길 바라는 거예요.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글자 연습을 했어요. 나는 수업도 잘 듣고 빈자리만큼 선생님께 대답도 열심히 해요. 학교에도 몇몇 낯선 사람들이 보여요. 오늘은 교실에서 새로운 노래와 놀이를 가르쳐줬어요. 학용품도 한 아름 안겨주고, 그동안 본 적 없었던 책도 몇 박스나 차로 실어왔어요. 지난번에 카메라 앞에 설 때도 신이 나긴 했지만, 그건 비교할 바가 아니에요. 이게 무슨 날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런 날 P도 같이 있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J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와 같이 걸었어요. 나는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괜찮지만, J에게는 먼 거리일 수 있어요. 그래서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J는 한 참 동안 나를 쳐다보고는, 괜찮다고 말했어요. 정확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J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요.
걷는 것. 안 힘들어. 넌 매일 걷지만, 난 오늘 하루. … 미안해.
말이 서툴러서인지 갑자기 J가 사과를 해서 이상하긴 했지만, 대충의 뜻은 알 수 있었으니 되었죠. 나는 그냥 웃었어요. J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어. 내 말을 듣고 J는 그냥 웃어요. 구불거리는 골목길과 언덕을 몇 개 넘어서며 우리는 제법 오래 같이 걸었어요. 쓰레기장이 저 멀리 보이고, 이른 저녁부터 그 주변에서 불을 피우는 사람들도 보였어요.
그런데 앞만 바라보고 걷던 J가 갑자기 내게 손을 내밀었어요. 무슨 일인지 모른 채 내가 그 손을 잡자, J는 그대로 나를 잡아끌고는 뒤돌아 세운 채 얼른 골목길로 숨었어요. 곧 이어서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것 같았어요.
탕탕, 총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자동차가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어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사람들이 지르는 고함소리, 경찰들의 무거운 신발 소리, 동네에서 가끔 보던 마약상의 목소리까지. 점점 가까워지던 자동차 소리가 우리가 있던 골목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어요. 그 뒤로 경찰차도 지나가고 사이렌 소리….
나는 그 장면들을 눈을 감은 채 들었어요. 그리고 J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도 조끼 너머로 들렸어요. J는 자동차 때문에 일어나는 먼지바람이 온몸을 덮는 동안에도 그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나를 바짝 안고 있었어요. 절대로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못 보게 하겠다는 듯이 골목의 안쪽으로 나를 향하게 한 채 그대로 한 참을 있어요. 하지만 나는 알았어요. 사실은 나보다 J가 더 무서워한다는 걸.
고개를 들어 J를 바라보자 J도 나를 내려다봤어요. 긴 한 숨, 그리고 나를 걱정스럽게 보는 J에게 내가 먼저 물었어요.
나는 괜찮아.
너는 괜찮아?
또다시 J는 한 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괜찮다고 말했어요. 다행이에요. J도 나도 다치지 않았고, 둘 다 괜찮으니. J는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그저 내 손을 꼭 잡은 채 골목을 나와 집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J는 오늘 학교에서 들려줬던 자기 나라의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그 말의 뜻은 다 알지 못하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서 나도 흥얼거렸어요.
지는 해가 사이렌 소리에 맞추듯 바삐 움직이고, 우리가 부르는 흥얼거림은 점점 느려지고, 타박타박 일정하게 걷는 걸음. 나란히 선 그림자 두 개. 드디어 우리 집이 눈앞에 보이자 그제야 J는 안심한 듯, 내 손을 놓아줬어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내게 J도 작게 웃으며 내 손에 쥐어준 사탕 두 개, 그리고 내일 학교에서 또 보자는 인사.
무사히 돌아온 집에서 엄마는 나를 품에 꼭 안아줘요. 총소리가 나서 걱정했다고 했어요. 거의 매일 들리는 소리지만, 그래도 엄마는 항상 나를 걱정해요. 나는 기분이 좋은 한 편으로 다시 또 문득 떠오른 P가 걱정이 돼요. 내일은 꼭 P가 학교에 와서 J를 소개하여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일도 오늘만큼만 괜찮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뒤에, 얼른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했어요.
P가 무사하길,
J와 내일도 만날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오늘처럼 괜찮기를.
오늘은 괜찮았어, 내일은 괜찮을까?
습관처럼 보내버린 언제나의 오늘이 뭔가 미안한 하루.
내일은 누군가에게 미안한 하루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