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나는 거짓말을 했다.

by Kidcat혜진

20161104





창문 밖으로 빛나는 별들 아래. 누군가가 멀리서 손짓을 했다. 마치 친근한 듯 흔드는 그 손짓에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자, 높은 건물 위로 보이는 첨탑에서 뜀뛰기를 하듯이 뭔가가 휙 하고 내려왔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눈앞의 장면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나와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보는 한 사람.


아니,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지만 눈은 새빨갛고, 입이라 생각되는 그 안은 뾰족한 무언가로 가득 찬, 악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누가 봐도 악마였다.




- 이봐, 이봐.




그것이 입을 벌리지도 않고 말을 하자 나는 그제야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제 자리에서 폴짝거리며 뛰는 그것을 한 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 진정이 되는 거야? 인간들이란. 이런 재미난 것을 보여줘야 제대로 귀를 열고 듣는단 말이지.




바닥에 주저앉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는 데도 도망치지 못하는 기시감. 현실이 아닐 거라고, 이건 모두 꿈일 거라고 생각하는 나를 아는 것인지, 갑자기 내 손을 꾹 밟아온다. 아픔이 온몸에 전율을 가져온다.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더니 입 부근이라 생각되는 그곳이 뾰족한 귀가 있는 저 끝까지 찢어진다.




-이 봐, 너 말이야. 나와 거짓말 하나씩만 주고받으면 어때?

-뭐, 뭐?

-간단해. 나는 심심한 것은 딱 질색이니,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운 거짓말을 하나만 말해 줘.

-… 왜?

-왜냐니, 나는 심심한 것은 질색이라니까.

-그러니까, 왜 나한테….




눈동자가 없이 그저 빨갛기만 한 눈이 나를 보는 것 같더니 긴 혀를 내밀어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다. 저 긴 혀로 나를 집어삼키는 것도 가능할까. 그것보다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하면 나에게 안 좋은 일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이 악마가 원하는 대로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그저 최면에 걸린 듯 멍하게 그 얼굴을 보다가 결국 마음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한 마디.




-난 행복해.

-아?

-거짓말을…, 해 달라며.

-…….

-난 무척 행복해. 왜냐면, 난 태어날 때부터 행복했으니까. 부모님은 돈이 많은 부자였고, 집도 차도 여자도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 나라에서는 못 할 것이 없고, 부와 권력으로 내가 원하는 자리에도 앉을 수 있으니까.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내 주변에는 모두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뿐 이니까.




자신의 이마를 긴 손톱으로 긁적거리던 악마는 애매하다는 듯이 다시 되 물었다.




-그래서 행복한 거야?

-요즘 세상에 그런 행복이 어디 있어? 다들 아등바등 살기 바쁜 이유가 뭔지 알아?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것들을 원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이런 건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타고난 혜택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은 출발선부터 다르다고. 노력? 노력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지만, 결과물은 모두 내 것이니, 이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아, 그래. 맞아. 정말 그렇군.




영혼 없는 맞장구. 인간의 세상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다.




-딱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쉽다면?

-진정한 사랑을 못 해 본거겠지.

-그건 왜지?

-왜 긴, 다들 내 부와 권력을 보고 접근하잖아. 나로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조건이 안 되는 거야. 그래, 맞아. 그저 조건이 안 되었을 뿐이야. 이미 충분히 자격이 있는데 말이야.

-아, 그렇군. 역시 인간들이란.




난 한 참을 풀어내며 설명한 나의 거짓말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거짓말이 마음에 들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솔직한 감정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악마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악마는 다시 긴 혀를 내어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번에는 내가 거짓말을 할 차례인가?




자신의 손바닥을 비비면서 기대하라는 듯이 악마는 한 참을 뜸 들이다가 한 마디를 던진다.




-나는 네가 한 그 말들이 사실일 거라고 생각해.

-…….

-믿어. 네가 한 모든 말들을.

-… 뭐?

-내 거짓말은 이거야. 어때? 아주 간단하지? 큭큭큭큭…….




소리 죽여 웃다가 결국은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미친 듯이 웃는 얼굴이 점점 사납게 변한다. 서서히 일어나는 악마의 몸은 엄청나게 커 보인다. 별이 가득하던 밖의 풍경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암흑만 둘러싸고 있는 기분. 악마의 목소리는 곧 내 몸을 짓누르며 다시 한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몇 번이나 해도 재미있는 놀이야. 나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거짓말을 하라고 했는데, 항상 이런 식이야. 마지막에는 모두들 자신이 소망하는 것들이나, 아니면 그저 그런 진실을 말해버려. 큭….

-…아, 아니야. 이건 거짓말일 뿐이야. 난 그저….

-왜 그런 걸까? 왜 인간들은 항상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로 사는 거지?

-나는……, 그건….




커다란 몸을 더욱더 크게 부풀리더니 다시 홀쭉하게 변하는 그림자. 장난을 치듯이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다른 모양으로 만들던 악마는 결국 처음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모습은 변해도 일렁거리는 그 빨간 눈은 변함없이 나를 바라봐서인지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킬킬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않던 악마는 다시 내 얼굴 앞으로 자신의 긴 혀를 날름 내밀며 말했다.




-하긴, 인간들과 거짓말은 떼래야 뗄 수 없지. 큭…. 재미있는 사실은 뭔지 알아? 인간은 그렇게 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수 없이 후회하면서도 절대로 거짓말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이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

-잠깐이지만 즐거웠어. 자, 그럼 하던 일을 마저 해야지. 나도, 너도.

-…….



악마의 시선을 따라서 나도 열린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술병들. 그제야 내가 하려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다시 창문틀을 잡고 올라간다. 한 발을 내딛으면 끝인, 까마득한 아래. 모든 거짓말들 때문에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다. 조금 전 나는 이 자리가 생의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며 술기운을 빌리려고 했었지만, 어느새 술기운은 사라지고 없다. 악마의 빨갛고 긴 혀가 내 옆에서 속삭이듯이 일렁거린다.




-이제는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 보는 것은 어때? 아직 늦은 것도 아닌데.

-… 정말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살고 싶다면 너 자신에게 또 거짓말을 하라고, 얼른….

-난, 나는…….




킬킬거리며 다시 속삭이는 악마. 진정한 사랑도, 진정한 행복도, 어쩌면 내 마음의 거짓말들이 덮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거짓말들을 걷어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이 까마득한 아래로 한 발을 더 내 딛기 전에.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짓은 그만 하고 싶다. 눈을 감은 채 발을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한 걸음 더 내디뎠는가.










지금 누가 거짓을 속삭이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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