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by Kidcat혜진

20161120





Y는 문화제에 간다고 말했다. 그 문화제라는 것은 시위 혹은 집회였다. 그런 시위, 집회 따위에 참여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했지만, Y에게는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사실 수능을 앞둔 주말에도 Y는 집회에 나갔다. TV 화면, 그리고 SNS상에서 퍼지는 그 파도치듯 일렁거리는 수많은 불빛들 사이에 Y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이건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일이야.

-뭐, 좀 그렇긴 한데. 그런 어른들이 한둘 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잘 못 되는 거야. 그런 생각부터 시작인 거라고. 들어 봐….




블라블라. 또 시작되었다.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컵라면을 뒤적거리던 나에게 Y는 큰일이라도 났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난 여전히 그런 말들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뉴스며 인터넷에 나오는 그 모든 말들을 잘 걸러내서 들어보아도, 이제껏 살아왔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새삼스러웠다. 그저 왜 하필 지금인가를 생각했다. 왜 하필 내가 수능 칠 때 이런 일이 발생해서 하루 종일 시끄럽고, 또 조용하지 않으냐 말이다.


Y는 이런 나를 몹시 답답해했다. 3년을 함께 친구로 경쟁자로 지내온 Y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우리 또래의 학생들이 바다에 빠진 참사가 났을 때도 Y는 일주일을 넘게 슬퍼했고, 반년을 넘게 그 이야기를 반복했고, 1년을 넘게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다. 지금도 Y의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붙어있다.




-넌 가. 난 안 가. 등급 컷만 확인하고, 난 오늘 좀 쉴 거야.

-야. 너는 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




3년을 참아줬으니, 나도 Y에게 한 마디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생각보다 등급 컷이 나오지 않아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신으로 원서를 썼던 Y는 두 곳이나 합격을 한 상황이고, 내가 알기에는 수능까지 점수가 잘 나왔다. 나는 소위 말하는 등골 브레이커가 되기 싫어서 국립대학 여기저기 등급 컷이라도 잘 찾아서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나라가 이 지경이니 함께 집회에 나가자는 그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네가 이제껏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냐고. 감정 낭비야. 말 타고 대학 들어간 그 여자애? 그래, 좀 짜증 난다고 쳐. 그런데 걔 말고도 그런 애들이 한 둘이겠어? 그래 봤자, 또 같은 상황이 반복일 거야. 지금 당장 뭔가가 변화된다고 해서 쉽게 바뀔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진즉에 변했겠지.

-……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막말로 시위하는 사람들도 그래. 성숙한 시민의식이니, 뭐니 하면서 평화시위 어쩌고 하는데…, 하~. 그럼 그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진즉에 이 지경까지는 오지 말았어야 하지 않냐 말이야. 왜 어른들이 잘 못한걸 우리까지 나서서 구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거냐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바꾸자고. 노력하면 변할 수 도 있는 세상으로 말이야. 아무것도 안 한다면 정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잖아.

-너나 가. 나는 안가. 달라질 거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살래. 지금은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Y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그대로 돌아섰다. 메고 선 회색 가방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붙어 있었다. 편의점 앞에서 함께 먹던 라면은 이미 식었다. Y에게 괜한 심술을 부린 건가 싶어서 나는 한 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그대로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아파트 불빛, 네온사인, 시국 선언, 대자보, 여기저기서 들리는 하야, 퇴진, 탄핵 등등의 단어들이 어지러웠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어쩌면 역사책에 기록될지도 모르는 시기였다.


그날은 지난 주말과 비슷한 인파가 광화문에 집결했다고 뉴스에서는 떠들었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에서 그와 비슷한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고 했다. 그게 왜. 뭐가 어때서. 그 장소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훨씬 많아.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야. 그래서, 왜. 뭐가 나쁜 건데. 베개로 얼굴을 덮은 채 허공을 향해 발차기를 한 번 날렸다.




-아아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를 지르고 나니, 무엇인가 응어리졌던 부분이 풀리는가 싶더니, 곧 다시 서글퍼졌다.


다음 날, Y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를 앞에 두고 Y는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라면을 끓여서 식탁에 올려두었다. 호로록 거리며 함께 먹은 후,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괜히 머쓱해진 내가 물었다.




-잘 하고 왔어?

-응, 사람들도 많이 참가했고, 가수들이나 연예인들도 많이 왔고.

-응….

-이거 내가 요즘 재미있게 읽었던 건데, 너도 한 번 읽어봐.




Y가 내미는 책을 받아 들었다. 책의 제목은 ‘고요한 밤의 눈’이었다. 수험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문학 또는 비문학 서적도 아닌, 그저 내가 처음 들어보는 문학상의 수상작이었다. 그것도 최신작. 수험생의 느낌이 전혀 없던 Y라서 그런 소설책을 권하는 것이 놀랍지도 않았다. 대충 받아 든 채 뒤적거리는 나에게 Y는 말했다.



-있잖아. 내가….

-…….

-어디서 들었는데 말이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에 그럴듯한 무언가를 맞추기 위해서 자꾸 숫자나, 학설 따위를 교묘하게 끼워 맞춘데. 신자유주의자들이 과학에서 진화론이나 유전법칙을 여기저기 이용하듯이 말이야.




또 시작인 건가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두 알고 있는 음모론은 이미 음모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악은 이미 악이 아니라, 그저 사실이고 현실일 뿐이다. 그 사실이 믿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애쓰고 노력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말해줄까 싶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오늘 Y는 평소보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울고 있지도 않으니까.




-그런 걸로 끼워 맞추면, 난 말이지. 뉴턴의 법칙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사실은 높은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무거운 자리에 있으니까 누구보다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야. 만약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중력의 법칙으로 그 무게만큼 바닥으로 떨어져야 하는 사람들 말이야.

-…….

-물론 그 사람들을 그렇게 될 때까지 가만히 둔 우리 책임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라도 제대로 떨어트려야지. 우리가 맡긴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알 수 있도록 말이야.

-넌…, 아니 우린, 이제 겨우 어른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았어.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하지. 왜냐면…, 어쨌든 내가, 아니,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잖아.




Y가 나를 보면서 웃었다. 예전에는 답답하면 울고, 슬퍼도 울고, 화가 나면 더 많이 울던 Y였는데, 요즘은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 지극히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울다가 웃다가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는 지금의 내가 결정한다. 등급 컷, 점수 몇 점 따위가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써 목메며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가 들어가려는 어떤 대학교의 간판도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Y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Y가 살아갈 세상도 상상해 보았다. 음모론이 음모론에서 끝나고, 악이 사실이 아니라 잘못으로 정의되어 마땅한 처벌받을 수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이루어지는 세상. 그런 지극히 당연한 세상이 내가 Y의 손을 잡고 나간다면 조금 더 빨리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우리가 나이를 먹어 지극히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처럼, 이 세상도 그렇게 당연한 세상이 되길.


문득 펼친 책에는 Y가 형광펜으로 색칠한 구절이 있었다.




“이것은 과정이고, 과정이 혁명이다. 혁명보다 멋진 축제는 없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중략)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제6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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