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과 수맥

by 키도
“야, 너 그거 알아? 수맥이 흐르는 곳에 살면 잡귀가 붙고 몸이 아프대.”


언제나 그렇듯 얘기는 잘 들어주긴 하지만, 의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부하기엔 미지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구미가 당겼다. 땅속에 물이 흐르는 터에 사람이 살게 되면 몸이 아프고 잡귀가 붙는다니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미신으로 치부하기엔 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은 미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는 사람이 살아서도, 묫자리를 써서도 안 된다는 풍수지리에 관련된 문화도 괜히 생겨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릴 때 TV를 보면 웬 풍수지리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길쭉한 안테나 같리인 건지, 그냥 저 아저씨 손힘으로 움직이는 건 아닐지 의심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심을 꺾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학문과 예체능을 모두 섭렵하고자 하는 그 시대의 다빈치형 멋쟁이셨다. 그래서 할아버지 댁에 가면 신기한 책들도 많았다. 독학으로 역학과 풍수지리도 익히셨기에 책장에는 아주 오래전에 여러 사람의 손을 탄 책도 있었다. 호기심 부자인 손녀에게 탐험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던 할아버지의 북 컬렉션을 보자 호기심 레이더가 발동해 왠지 재밌을 것 같은 책을 뽑았다. 그 책의 도입부는 12 간지 띠에 대한 내용이었다. 잔나비가 원숭이구나 하면서 책장을 넘겼고, 4컷 만화 같은 페이지가 나와서 보는데 갑자기 소복을 입고 눈과 입이 찢어진 처녀 귀신이 등장했다. 깜짝 놀라서 책을 손에서 놓쳤고,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얼른 덮어서 책장에 다시 꽂아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다음 책에는 산과 강, 마을과 같은 그림들이 나왔다. 한자가 가득해서 무슨 내용이지 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풍수지리학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 기억을 가진 채 중학생이 되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유월의 초여름날이었다. 3일간의 장례를 치르고 발인이라 선산에 모시러 가는 날이었다. 체구가 있으셨던 할아버지의 관을 8명 정도의 장정이 끙끙대며 들고 올라갔다. 미리 자리를 봐둬서 할아버지를 모시는 자리에는 땅이 파여 있었다. 정말 할아버지가 땅속으로 들어가시는구나 싶어 슬픔에 잠겨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갑자기 웬 흰 도포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듯 모습을 하고 나타나신 할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나침반 같은 걸 들고 오셨다. 그리고 관을 땅속으로 내릴 때, 땅속으로 내린 관을 들고 계신 분들께 손짓하시며 조금 더 좌로, 우로 방향을 지시하셨다. 마치 그 모습이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지휘자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 세밀하게 방향 조정을 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됐으니까 이제 내려놓으라 하셨다. 그 어르신 덕분에 할아버지는 편안한 자리에 몸을 맡기실 수 있었다. 그때 봤던 나침반 같은 것은 ‘윤도’라는 풍수지리와 관련된 물건이었다는 것을 박물관에서 유물 정리를 하다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문득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고 궁금해졌다. 아빠랑 성묘를 가는 길에 그 어르신은 어떤 분이었는지 여쭤봤다. 그분은 할아버지랑 아주 오랫동안 교류를 하시던 분이었고, 풍수지리에 굉장히 해박하신 지관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돈을 받지 않고 묫자리를 봐주러 오신 거였다고 하시며, 그분과 관련된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아빠의 친구분 집안에 자꾸 우환이 생기자, 친구분이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이 그 댁 조상 중의 묫자리 한 곳이 좋지 않아 화가 집안으로 미친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저씨는 우리 집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셨고, 아빠에게 연락하셨다.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해 살펴줄 수 있는 분을 아냐고 여쭤봤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모실 때 도움을 주셨던 지관 어르신을 소개해 주셨고, 그분을 모시고 아저씨 댁의 선산으로 향했다. 지관 어르신이 선산 전체를 쓰윽 한번 둘러보시더니 아저씨의 아버지를 모신 산소를 가리키며 저곳에 수맥이 흐르니 당장 땅을 파보라고 하셨다. 아저씨와 산소 일을 하러 오신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이냐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산은 아주 비옥하고 푸슬푸슬한 황토 땅이었기 때문이다. 지관 어르신은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삽질 몇 번만 해도 물이 솟구쳐 오를 거라고 하셨다. 반신반의하며 일꾼 중 한 분이 그쪽 묫자리에 삽질하셨고, 대여섯 번 땅을 파자 정말로 땅에서 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판 자리에 웅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묫자리를 더 파보니 돌아가신 지 오래인 시신이 물이 흐르는 곳에 있어 부패하지 못하고 퉁퉁 불어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묫자리를 옮겨 다른 곳으로 모셨다.


2024년에 개봉했던 파묘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악지에 묘를 쓴 친일파와 그곳에 관련된 일제의 만행이 담겨있었다. 영화를 보며 아빠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했다. 이러한 일화를 통해 미신 중에도 풍수지리 같은 것은 우리의 오랜 문화이고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니 가벼이 여길 순 없겠다고 생각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게도 인간의 신체는 70%나 물로 이루어졌다는데 왜 물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살면 탈이 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에 본 글에서 사람이 물가에 살면서 물을 계속 바라보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 자체가 음의 기운이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물귀신이 가장 악독하고 한번 홀리면 떨치기 힘들다는 내용도 본 적 있다. 아니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을 바라보며 끝없이 생각에 잠기기 때문일까? 물이 흐르는 곳에 살아서도 안 되고, 물가에 살면 우울증이 생긴다는데 왜 한강뷰 아파트는 그렇게 비싼 걸까?

또한 사주를 구성하는 음양오행 중 물이 많으면 생각이 많고, 우울감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니 물을 가까이하고 살면 그리 좋지 않은가 보다. 물 때문에 몇 백 년 된 목재가 썩기도 하고, 배수가 잘 안 되면 물이 고여 추가적인 피해도 발생하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접했기 때문에, 볕이 잘 드는 곳과 통풍이 잘되는 곳이 왜 중요한지, 그곳이 왜 명당인지는 잘 알겠더라.


그리고 아주 나중에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지혜가 조금 더 쌓인다면 역학과 풍수지리를 공부해 보고 싶다. 삶의 이치와 조화를 조금은 더 배워가고, 나무가 아닌 숲을 살펴볼 수 있는 통계학이자 지리학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분야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중이 제 머리를 깎는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미신이라 치부하기엔 수맥, 풍수지리, 역학 등은 너무나 흥미로운 분야다. 본인이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선언했지만, 어쩌면 미혹되는 믿음에 대해서는 잘 현혹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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