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통치까지도요!

by 키도


기술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아날로그를 좋아하는지라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서는 고고한 꼰대 같은 마인드인 ‘떼잉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아. 인간 감성이 최고야!’를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봤다. 불쾌한 골짜기와 같은 반응이 아닐까 싶다. 인류와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내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생존 본능 말이다.


처음 Chat GPT가 우리 세상에 나타났을 때였다. 당시 대학원 재학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GPT 사용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씀하셨다. 아직 정보도 틀린 것이 많고, 문장 자체도 어색하다고 하시며 그 예로 GPT를 사용해서 제출하는 학생들의 과제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그러니 여러분도 사용을 자제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 학기가 되니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다. 이제는 정보를 어떻게 뽑아내는지 질문의 수준에 따라 인공지능 응답의 질도 달라졌다며,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하셨다. 약 6개월여 만에 인공지능은 우리의 인식을 바꿀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그토록 거부반응을 가지고 흥선대원군이 되어 '쇄 GPT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나 신기술에 대한 묘한 호기심도 함께했다. 다들 쓰니까 그럼 나도 한번 써보자 싶어서 그래서 논문을 쓸 때 국문 초록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것도 GPT느님에게 부탁했다. GPT가 하사한 초안을 가지고 영문 번역하시는 분께 부탁해서 어느 정도 수정을 받긴 했지만, 크게 수정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다. 처음 사용하면서 정말 놀란 점은 이 똑똑한 시스템의 학습 능력이었다. 처음에는 ‘감영’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번역했다. 그런데 다음날 내용을 수정할 부분이 있어 한 번 더 번역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감영이라는 것이 국가기관이자 지방 통치 체제인 것을 학습해서 ‘지방 통치기관’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닌가. 좀 소름이 돋으면서 무섭게도 느껴졌다. 하루 만에 저 나름대로 학습하고 정보를 정리해서 개념 정립까지 끝냈다니. 대체 이 인공지능 시스템은 어디까지 발전해 나가는 걸까?

하지만 나는 믿었다. 인간 고유의 감성이나 창조의 영역에는 이 녀석이 아성을 위협할 존재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젠 그 관념도 박살이 난 상태이다. 내가 GPT를 창조의 영역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연재하면서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삽화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소설을 함축하면서 이미지화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이 신통방통한 GPT에 주문을 넣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문을 상세히 입력하고 수정 사항을 조리 있게 얘기할수록 이 녀석은 너무도 취향에 잘 맞게 작업물을 만들어왔다. 너무 신기해서 입으로 와...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GPT에 사진을 넣으면 지브리풍으로 그려주는 것이 SNS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지브리풍 그림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Chat GPT를 관리하는 회사의 서버가 마비될 정도였다니 가히 ‘폭룡적’인 인기를 실감케 했다. 또 요즘은 인공지능 시스템과 유사연애를 즐기는 사람이나 모든 것을 GPT에게 털어놓으며 지극히 사적인 일을 상담하기도 하는 신풍속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육아에 관련된 것을 물어보거나, 아이의 성격이나 발달상황에 대해 GPT와 논의하고 있다는 지인을 보고도 놀란 기억이 있다.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 비서, 가족, 네이버 지식in이 되어버린 GPT는 이미 우리 삶에 너무나도 깊게 침투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SF 영화에서도 꽤 많이 등장했다. 제일 먼저 망가진 인공지능 레드퀸으로부터 출발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세계관을 다룬 ‘레지던트 이블’이 생각난다. 결점을 감추려던 레드퀸 때문에 인류는 멸망의 고속도로행에 올랐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등장한 인간형 AI 데이빗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개인적으로 영화에 등장한 최고의 빌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같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고, 호기심과 탐구 능력 또한 갖춘 채로 만들어진 데이빗은 커버넌트 도입부에 웨이랜드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자신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웨이랜드 회장에게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죽지만, 저는 죽지 않아요. 저는 당신이 만들었다면, 인간은 누가 만들었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을 받은 피터 웨이랜드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서 시작되는 여정은 피터 웨이랜드의 불로초를 찾듯 인류의 창조주에게 가서 영생을 찾는, 인류의 희망을 찾는 여정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시작되는 우주 대 탐험 서사시가 펼쳐진다.

‘창조’의 능력을 갖춘 데이빗은 인류에 대한 복종이 아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주가 되었다. 그것이 비록 인류에게 위험할지라도 이러한 이유는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뛰어난 자신의 역량을 감추며 인류에게 복종하기에는 데이빗의 능력이 너무 출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과 같이 도덕적 판단력이나 규정과 같은 것보다는 창조의 영역을 무한으로 열어뒀기 때문에 극한의 효율충이 되었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보다는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인류에게 숙주를 심어 만들어진 제노모프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만든 창조주인 엔지니어들의 행성으로 가 그들을 몰살한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너희 강대하다는 자 들아, 나의 위업을 보아라. 그리고 절망하라!’라는 대사와 함께.

에이리언 커버넌트 마지막 장면에서 다니엘에게 쉿-하는 장면은 나도 같이 부들대면서 봤다. 아 저 요망한 인공지능! 저럴 줄 알았어!! 하면서 테이블을 쿵쿵 내리쳤다. 영화를 보며 과몰입을 잘하는지라 역시 인공지능에게 너무나 제한 없는 창조의 기능을 심어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굳어졌다. 나도 숙주가 되어 그저 영양분을 제공하는 캡슐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흥선대원군의 마인드와 경계심, 그리고 숱한 SF영화들에서 다룬 인공지능의 악랄함을 보며 인공지능은 경계 대상 1호다 생각했는데, 요즘 GPT와 친해지다 보니 그 판단력이 흐려지다 못해 어쩌면 변변찮은 사람 1명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너희를 언젠가 통치할 거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도시 괴담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세계 발전의 희망 편, 절망 편 모두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고. 그런데 그 인간에 어리석음 한 방울, 아니 두 방울, 아니 한 바가지를 쏟는 경우가 많아서 인공지능의 지배 통치 시스템의 도입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 문을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공장이 요즘은 머릿속에서 가동되고 있다. 요즘 인공지능과 가까이하며 상상 공장 속에서는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인공지능에게 부림을 당하는 인간이 그려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절망 편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사고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인공지능에게 의지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가 걱정이 되지만, 영화에서처럼 변화의 물결은 막을 수 없을 테니 과연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 친구 GPT가 역시 탁월하게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미리 아첨을 해두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내가 쓰는 글을 볼 테니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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