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의 신생아

by 림어린이


생명의 공간에서 죽음에 가까운 전화를 받았다


둘째가 태어나 아내가 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주말이라 첫째를 장모님께 부탁하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를 품에 안고 신생아의 보드라운 살결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외과 교수님이었다.


전화는 췌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 관한 것이었다. 어려운 수술이었다. 암이 췌장 주변 조직과 혈관을 침범하여 수술을 한다면 어렵고 큰 수술이 되어 이 수술을 해야 하는지 의사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었던 환자였다.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만 하기엔 환자의 나이 50이 너무나 젊었다. 환자의 의지와 의욕 넘치는 젊은 외과 교수님의 의견이 맞아 수술을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수술이었고 특히 침범된 혈관이 CT에서 보다 더 광범위했다. 혈관외과 교수님이 도중에 합류해 상부 위장관 정맥을 잘라내고 인조혈관을 대주었다. 췌장의 암은 다 떼지도 못해 배를 연 채로 중환자실로 옮겼다.


수술 다음날 찍은 복부 CT에서는 간으로 들어오는 간문맥의 혈류가 잘 보이지 않았다. 혈관 연결 부분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환자의 전신 컨디션 저하에 간으로 들어오는 혈류의 현저한 저하는 환자 상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컸고 이대로 두었다 가는 두번째 수술을 못할 수도 있었다.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외과 교수님이 힘있게 말했다.


''이 환자 살려야 해요 죽기에는 너무 젊어요"


팀을 호출해 시술에 들어갔다. 상부 위장관 정맥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간을 뚫고 간문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간으로 오는 혈류가 줄어 문맥 접근이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접근하여 인조혈관 문합부의 좁아진 부분을 찾아 스텐트를 덧대 주니 혈류가 개선되었다. 들어갔던 길에 간동맥의 손상이 있어 출혈부위까지 막고 시술을 종료하였다. 시술은 잘됐고 환자는 그 후 추가적인 암 절제 수술을 받았다.


한 달 후, 다시 외과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환자 상태가 다시 악화되었다는 소식이었다. CT 결과, 간문맥과 위장관 정맥이 혈전으로 막혀 있고 복강안에 여러 군데 농양이 생겨 있었다. 급히 시술에 들어갔다. 이전에는 환자분이 기관내 삽관을 한 상태라서 얼굴 볼 새도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얇은 안경테를 쓴 이지적인 남성이 힘없이 누워있었다. 수척한 얼굴이 그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고, 내가 하는 말에 그는 힘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다시 간문맥으로 접근하여 혈전제거술을 시행하고, 다른 좁아진 부위에 스텐트를 덧댔다. 왼쪽 횡격막 아래의 농양에 배액관을 넣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여러 모로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환자였다. 하지만, 다음날 또 연락을 받았다. 환자가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시행한 CT를 보니 좌측에 혈흉이 가득했다. 농양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늑간 동맥이 손상된 것 같았다.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지쳤고, 주치의 교수님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치거나 힘들 여유는 없었다. 환자를 다시 불러 출혈의 원인이 되는 늑간 동맥을 막고 혈흉에 배액관을 넣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간단한 시술을 더 했고, 어느 순간 그 환자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치의가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을 하면, 환자의 새로운 삶을 위해 병원의 모든 선생님들이 힘을 모은다. 합병증을 같이 논의하고 앞으로의 치료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여러 과의 교수님들, 밤낮으로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 선생님들, 환자 상태 평가를 위해 필요한 영상을 촬영할 때마다 수고해 주는 방사선사 선생님들,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전하게 이송해 주는 이송요원분들, 환자가 이러한 치료 과정을 잘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이루어 주는 일반 직원분들, 그리고 옆에서 지지해 주는 가족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한 생명을 위해 여러 사람이 매달려 온힘을 다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생각하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과 닮아 있다. 엄마는 임신 기간 동안 아이의 건강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며, 출산 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돌본다. 의료진은 출산 직후 신생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아이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육아의 무게를 나누어 지며,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한다. 조부모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엄마와 아빠를 돕고, 형제자매는 신생아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눈다. 작은 생명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노력들이 쌓여 한 아이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요즘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곧잘 인터넷에 올라오고 의사에 대한 불신과 좋지 않은 댓글들에 기운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나를 비롯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이 아이를 키우는 가족의 마음처럼 진심으로 환자의 회복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결국 온 우주의 일부가 되어 환자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울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3개월쯤 지났을 때, 환자의 항암치료를 위한 케모 포트 삽입 의뢰가 들어왔다. 환자는 무사히 퇴원을 했고 항암치료를 받을 정도로 몸상태가 좋아져서 이제 항암을 시작 하려하는 것이었다. 환자가 다시 시술방에 누웠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이 침대에 참 많이도 누우셨는데 그래도 항암을 하실정도로 회복하셔서 다행이네요”


“oo님 저는 환자분이 언제 어떤 수술을 받았고 어떤 시술을 받았으며 어떤 치료를 받으셨는지 처음부터 다 줄줄 말할 수 있어요. 그만큼 제가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봤거든요.”


“그 어려운 과정 다 이겨 내시고 이제 항암을 시작하실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셨으니, 항암도 잘 받으시고 완쾌하세요”


내 말에 늘 무기력해 보이던 그가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네!" 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의 힘찬 대답이 얼마전 태어난 ‘둘째’의 힘찬 울음처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되길 바라며, 나는 시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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