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갔다가, 가방을 하나 찾았다.
명절날 이었다. 모처럼 온가족이 모여 앉아 돼지 갈비를 먹은 후였다. 자욱한 고기 냄새 때문에 마당으로 난 문을 열었더니, 그 건너로 나의 방이 보였다. 내가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겠다며 가시를 새우고 한참을 웅크렸던, 그 방이.
그 방에는, 눈을 감으면 악몽이 찾아와서 하얗게 지새운 밤들이 있다. 눈을 떠서 자책이 되고 두통이 시작된 낮들이 있다. 도망치듯 두고 나온 서랍과, 상자와, 가방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꿈이 있다. 아직도 계속되는 그 꿈에서 나는, 제한된 시간에 거리거리를 맨발로 뛰어다닌다.
나는 내내 그 방이 두려웠다. 그래서 점점 더 집과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날은 돼지 갈비 때문인지, 명절 분위기 때문인지 용기가 불끈 났다. 그래서 저 방으로 가려는데, 엄마가 말린다.
"에휴. 그 방 가지 마. 물이 새고 난리였다. 다 곰팡이 폈어. 천장도 위험하고......"
그래, 엄마에게도 저 방은 애물단지였겠지. 그런데 아빠는 생각이 다르다.
"그래도 가봐. 뭐가 있나, 한 번 가봐."
그 사이 더 빡빡해진 나무 문을 여니, 세상에나, 정말 몇십 년은 묵은 듯한 나의 방이 있다. 내가 꼬물꼬물 만들었던 커튼이 창문에 겨우 걸려있고, 그 사이로 빛나는 먼지들이 떠다닌다. 캐캐 묵은 곰팡이 냄새가 난다. 책상 위로 흙먼지가 잔뜩 떨어져 있다. 물이 고여있던 흔적도 보인다. 나의 낡은 방은, 금세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다. 낡은 기둥이 겨우 버티고 있다. 이 방 위로 길이 난다고 한다. 몇 년째 정확한 날짜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새 포장도로가 나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웠던 방은, 막상 열어보니 그렇게 공포영화급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서글펐다. 엄마 아빠의 주름진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서글픔이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한 걸까.
그래서, 아빠 말씀대로 그 방에 뭐가 있었냐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상자들 틈에 뚱뚱한 사진첩이 하나 있었다. 그 속에는, 그동안 내가 꿈에서 맨발로 걷고 뛰던 장소와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렇게 찾아 헤맨 여행가방이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찾은 기념으로 꿈을 꾸지 않을 동안에도 그 거리거리를 걸어보려 한다. 더 이상 쫓기듯 뛰지 않고, 찬찬히, 앉아 쉬기도 하면서.
이제 뒤를 돌아서 방을 나가려는데, 내 키만 한 에펠탑이 날 가로막는다. 맨발 꿈을 꾼 어느 날, 방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방 안쪽 문에다가 그렸던 에펠탑이다. 그 날 꿈속에는 하늘에 분홍 구름이 걸려있었는지, 하늘은 짙푸르고, 에펠탑에 걸린 구름은 온통 분홍색이다. 나는 내 앞의 파리를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악수하듯 손잡이만 잡고서 문을 열어 나왔다. 마음이 콩콩 뛰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