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통 May 26. 2016

꼬옥 안아드립니다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낭만이 뚝뚝뚝 떨어지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속삭이듯 노래해주고, 마크 러팔로가 부스스한 매력을 휘날려주는, 뉴욕의 거리거리가 소음 하나하나가 모두 음악을 이루는 그런 영화, '비긴 어게인'!.

어쩌면 내용은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는 진정성이랄까 사람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참 착하다.

마크 러팔로가 키이라 나이틀리 노래하는 장면을 처음 보면서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드럼 등이 저절로 연주되는 것을 보는 장면은, 순간 나도 음악의 마법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머뭇머뭇, 나 자신을 그렇게 믿을 수도 없고 품고 있는 아픔과 두려움도 크지만,

노래하고 연주하며 음악을 할 때, 그렇게 소통할 때 그들은 자유롭고 즐겁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정말 좋았던 것.

꼭 안아주는 포옹.

이 영화는 꼭 따뜻하고 진심 어린 빅 허그 같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마음이 산산조각 나서 짐을 꾸려 나와, 거리 연주를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 친구는 연주하고 있던 기타를 바로 내려놓고 그녀를 꼭 안아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안아주는데,

특히나 그 품이 폭신폭신할 것 같은 제임스 코든이어서 그런지, 나까지 왈칵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키이라 나이틀리의 마크 러팔로 백허그.

마크 러팔로가 화내는 장면 특히 이해됐는데, 내 앞의 사람이 나를 제 멋대로 판단해서 배려나 충고랍시고 말해줄 때, 받는 상처와 부딪히는 벽. 그리고 정말 미안해 백허그.

난 이 장면에서 울컥해서 그만.... 눈물을!  




내게도 음악은 허그 일지 모르겠다.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새벽, 니나 시몬은 같이 울어주었고,

유난히 지친 퇴근길, Yann tiersen 음악은 어깨를 빌려주었고,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는 iron and wine이 플랫슈즈를 신고, 같이 걸어주었다.

청소하기 싫을 땐 Foster the people 음악에 맞춰 흔들흔들하며 할 수 있었고,

신나 죽겠을 땐 earth wind and fire가 함께 춤을 춰주고,

로맨틱 해지고 싶을 땐 헨리 맨치니의 음악이 내 주위에 바셀린을 발라서 뽀얗게 만들어주었다.

비긴 어게인에도 나왔던 토니 베넷의 음악은 으슬으슬 추울 때 들으면 든든하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 존 카니는, 수도 없이 음악의 빅 허그를 받고, 그 안에서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애정이 느껴진다. 그 애정에는 뭔가 민주주의적이기까지 하다. 자유와 평등이 느껴져서인가?




인상적이었던 것이, 존 카니 감독,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전작 '원스'처럼 두 남녀가 소통 이상의 따뜻하고 설레는 무언가를 느끼고 나누지만, 딱 거기까지지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착하구나 이 사람들. 하고 생각하다가, 집에 와서 양치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악과의 관계가 이렇지 않을까.

음악의 마법에 빠져도 봤고, 누구보다 날 이해해주고 위로해주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음악을 하거나, 음악을 하더라도 재능이 있거나, 혹은 재능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음악 대신 우리의 다른 꿈을 대입시켜도 같은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은,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꿈은, 그렇게 우리를 꼭 안아주고, 놓아준다.

온 마음을 담아 꼬옥 안아주고서는, 속삭여주는 거다.

자, 세상에 나가서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 


대단한 실력으로 꿈을 꼭 이뤄야지만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함께해야지만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니듯.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리고 '원스'가 이토록 애틋한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살과 뼈가 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