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에 담아내는 달력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하는 어린이

by 나늬

Calendar

달력을 디자인하기로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기존에 했던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이 입체인데 반해, 평면적인 작업으로 진행되어 어린이들이 단조롭게 느끼면 어떨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달력을 만드는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을 하기로 결정하고, 달력을 깊이 있게 살펴보며 깨달았다. 생각보다 달력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보는 달력을 지긋이 바라봐 보자. 그 속에 놀라울 정도로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낼 요소들이 많다는 걸 발견하고 매우 흥미로운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차올랐다.


가로와 세로의 선택
한 장 달력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지점은 가로형인지 세로형인지의 결정이었다. 실제 달력을 만든다면 사이즈를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만큼 천차만별의 사이즈를 수용할 수 없는 환경임을 고려해(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가로형과 세로형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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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형(좌측), 가로형(우측)

그리고 실제로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을 때 어린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자신의 달력 판형(가로형과 세로형)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며 결정했다. 마치 완성될 자신의 달력 모습을 머릿속에서 본 것처럼.


서체의 선택
달력에서 서체는 의도하고자 하는 표현을 담아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달력은 숫자가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떤 숫자 서체를 선택하느냐가 달력의 디자인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숫자를 적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이만의 하나뿐인 손글씨가 담기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글씨로 적게 되면 1~31까지의 반복된 숫자가 같은 모양으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직접 쓴 손글씨의 숫자 0~9까지를 모두 도장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제작해야 하는 도장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졌다. 그렇게 고민 끝에 다양한 서체의 숫자 도장을 활용하기로 했다.

IMG_9902.JPG 숫자 도장을 찍는 모습

놀라운 점은 어린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체의 숫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슷비슷하게 선택할 줄 알았지만, 압도적으로 이 숫자 서체를 선택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며, 예측할 수 없는 그 생동감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Eraser & Repetition

어린이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만들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점이다. 작업에 몰두하는 어린이를 관찰할 때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깊이 있게 몰입하고 반복하여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달력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에서는 더더욱 그런 어린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우개가 닳고 닳아지고, 종이가 지우기를 반복해서 구멍이 날 정도로 그렇게 반듯반듯하고 칸의 간격이 균등한 달력의 프레임을 구성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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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웠다 쓰고 재고 지웠다 쓰고 다시 재며 완벽한 달력이 되기까지

디자인스케치에는 달력 프레임을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케치에 완벽한 달력 프레임을 표현하고자 애쓰는 어린이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달력 프레임을 가로형과 세로형으로까지 준비했지만, 이미 이야기하기에는 어린이들의 몰입이 깊어져 자, 지우개, 연필, 디자인스케치 종이를 마음껏 주며 충분히 시도하고 반복하기를 기다려줄 뿐이었다.


Process

어린이를 대상으로 디자인교육 수업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 안정적이었던 단계로 정리하였던 아래의 6단계를 기초로 하여 각 단계에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기획하였다.

1단계 <발견>은 주제가 무엇인지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도록 주제와 연계된 디자인 사례를 살펴보는 것.

2단계 <정의>는 디자인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디자인적 요소로 명확히 가져가야 할 것을 짚어보는 것.

3단계 <발달>은 디자인 툴킷 도구를 활용해 시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이끌고 컨셉을 구성하는 것.

4단계 <전달>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스케치하여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것.

5단계 <창작>은 스케치를 기반으로 실제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6단계 <공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서로 살펴보며 의견을 나누는 것.


<한 장 달력> 프로그램 개요

1단계 <발견> : 편집디자인이 적용된 다양한 달력 관찰하기

2단계 <정의> : 달력의 구조를 이해하며 프레임 살펴보기

3단계 <발달> :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카드를 보며 비주얼스토밍하기

4단계 <전달> : 디자인스케치 워크시트에 아이디어 구체화하기

5단계 <창작> : 자신만의 <달력> 디자인하기

6단계 <공유> : 서로의 결과물을 감상하며 이야기 나누기

이렇게 6단계에 걸친 프로그램 개요를 명확히 정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뿐인 <한 장 달력>을 디자인해 보기로 했다.


Visual storming

비주얼카드는 어린이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기 위해 마련한 다양한 시각적 자극이다. '달력'을 디자인할 때 어떤 이미지를 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달력은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음을 떠올렸다. 몇 월의 달력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시기적 특성을 담는 특징말이다. 우리가 만들 달력은 11월, 12월이 이었다. 원래 한 장 달력으로 기획한 의도는 한 장 남은 12월의 달력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12월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제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 시점이 11월이다 보니 지금 시기의 달력을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요구가 많았다. 그래서 11월, 12월의 달력을 만드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겨울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담아내 비주얼카드를 구성하였다.

48.jpg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끌어주는 비주얼카드

비주얼카드를 활용할 때마다 놀라운 점은 늘 어린이들의 관심을 이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끔은 동일한 카드를 선택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저도 선택한 이유는 다르다는 점이다. 모두 다른 카드를 모두 다른 어린이가 모두 다른 이유로 선택하여 자신만의 이미지로 해석한다는 점이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IMG_9889.JPG 창문에 부착해 놓은 비주얼카드

달력 디자인은 숫자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해 어린이들이 찾은 비주얼카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소스로 활용하여 어떻게 달력에 담아낼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생각보다 그림을 표현할 공간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마주했을 때 어떤 어린이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단순화하여 표현하기도 했고, 어떤 어린이들은 월을 표시하는 숫자에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자신만의 디자인을 구체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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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쥬얼카드를 통해 연상, 결합, 창작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모습

Mistake

실제로 사용할 달력이기에 날짜를 잘못 표기하는 실수는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달력 샘플, 달력 프레임 여분 등을 준비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역시 나의 생각보다 더 어린이들은 완벽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가지고 1~31까지의 날짜를 맞춰서 찍어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50번의 도장을 찍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면 이내 실수하게 되는데, 그때는 그전까지 찍은 것을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어린이는 없었다.


오히려 반복되는 실수를 겪은 어린이들이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찾아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10이 넘어가는 숫자는) 1부터 모두 찍어놓는 거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모두 1을 앞에 찍으면 돼."

IMG_9914.JPG 달력을 우측에 두고 번갈아보면서 1부터 천천히 찍는 모습

어렵지만, 해낼 수 있는 경계를 찾아서

늘 어린이들이 즐겁게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즐거움이 곧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유의한다. 어린이들은 충분히 시도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즐겁게 몰입하고 시도하며 스스로 잠재성을 꺼낼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도움을 주거나 그 모습을 바라봐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나는 늘 귀 기울이고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눈빛, 이야기, 호흡, 그리고 그들만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말이다.



아주 아주 작은 양면테이프를 돌돌 말아서 가져와 자신의 작품의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이 살짝 떨어져 있는 곳에 그 테이프를 끼워 넣으며 깔끔하게 붙여내려고 시도하는 어린이를 볼 때면, 나는 느낀다. 어린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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