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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Feb 01. 2024

골망태 옆 늙은 호박

"엄마, 호박죽하고  호박전 해 먹게요!"

"심든디 뭣허러 그런 걸 할라고  애쓴다냐?"

심드렁한 말과 달리  엄마는 어느새 식탁으로 옮겨 앉더니  늙은 호박 손질을 거들고 계신다.

"오메, 빨가니 색도 곱다잉!"


달포 전부터 엄마는 호박이 썩기 전에  매조지해야 한다고 쇠귀에  경을 읽었다. 동짓달, 봄비 같은 비걸음 때문인지 거실장위에 무심하게 앉아있는 늙은 호박이 게으른 눈에  들어왔지만 그냥 넘겼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이제 호박은 겨울이 가기 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어  목구멍 가시처럼 박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최대한 늦춰 아슬아슬한 시각이 되어야 마무리하는 내게도 그때는 온다. 드디어 함박눈이 푹푹 내리는 날, 호박 한 덩이를 붙잡았다. 


일단 호박에 칼집넣었다. 양 손바닥을  칼등위에  올려놓고 어깨힘을 실어 내리눌렀다. 뻐걱한 호박이 벌어졌다. 주황빛 속살에 톡톡 여문 호박씨가 드러나더니 시원한 수박내와 풋내가 섞인 호박 특유의 냄새가 난다. 속과 씨를 손으로 대충 파내고 보니 손가락 사이로 주홍빛 단물이 흘러내렸다. 칼로 호박껍데기를 쳐서 살살 씻은 후 팥을 넣어  호박죽을  끓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채칼로  밀어 호박전을  부쳤다.


"호박은  버릴 게 없어야!"

애호박부터 늙은 호박에 이르기까지 호박은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심지어  찐 호박잎에  우렁쌈장을  얹어  한입에 넣는 그 맛과, 심심풀이 땅콩처럼 말린 호박씨를 이로 돌돌 벗겨 먹는 그 맛에 이르기까지 호박은  버릴 게  없다.

그런 호박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늙은 호박 맛을 제대로 알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익어가는 나이라는 오육십 대인 것 같다. 애호박으로 만든 음식은 나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 않으나  늙은 호박을 이용한 호박떡이나 호박죽, 호박전은 물론이거니와 호박잎쌈이나 호박잎된장국은 아무래도 젊은이들에게 난이도가 있는 음식인 듯하다.


열일곱, 열여덟 쯤이었을까? 내 별명은  호박이었다. 아니, 그때였다면  이렇게  재미없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닉네임은  펌킨이야!'

이렇게 영어를  섞어야만 제맛이라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으스댔을 것이다.  쿠쿰버로 할까  펌킨으로  할까  잠시  고민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보아  깨금발로 깡충거리는 것 같은  어감이 좋아서  선택한  별명이었다. '호박 같은  내 얼굴'에서  떠오르는 못생긴 이미지도 적어도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던듯하다. 뭐 하나 버릴게  하나 없는 호박이라는 의미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뚬벙뚬벙 썰어  끓여 먹는  애호박 된장국, 우렁쌈장에  싸 먹던  호박잎, 팥알 넣어  함께  끓여 먹던  늙은 호박죽의 쓰임새를  알 나이도  아니었다. 그저 펌킨이 좋았을 뿐이었다.


골망태 옆  늙은 호박이  거실 한쪽에서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늙은 호박을  앉혀놓고  시골을 집안에  들여놓은 듯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아마도 40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시골살이를  하고 싶으나  쉽지 않자  시골냄새가  나는  물건들을  가끔 집안으로  들였다.

골망태는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신 것이다. 치매를 앓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아버지에게 골망태나 깔망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면사무소에서 짚공예품 만들기에  아버지  손을  빌렸다는  말을  들었던 터였다. 손가락을  써서  두뇌운동을 하다 보면 치매 진행 속도를 좀 잡아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식구들은 이왕 만드는 김에 작고 앙증맞은  소품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  생신 때  모여 완성된 작품을 보고 크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골망태와 깔망태는 아버지가 곡식이나 꼴을  담아  이고  메고 다니던 것에서 겨우 한 뼘 정도 줄어든 크기였다. 엄마는 한사코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튼 손을 보여줬다. 일손을  놓아버린 한참뒤였던 터라  투박한 손은 간데없고  얇고 연한 손바닥으로 지푸라기를 꼬아 만들다 보니 아버지  손은 갈라지고  피가 났었다.  오 남매에게  줄  망태기와  골망태를  다 만드신 후  아버지  손은  다시  쪼글쪼글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골망태  두 개와  깔망태 하나가  있다.  짚 부스러기가 너무 많이 떨어지는 망태기와 큰 골망태는 현관 창고에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 중이고 그나마 좀 작은 골망태만 거실에 앉아있다.

시골에서  둥글고 촘촘한 망태기는 골망태, 성글고 네모난 망태기는 깔망태라 불렀다.

 새끼를 꼬아서 엮느라 아버지 손이 수없이 다녀갔을 골망태는 내 손때가 탈 일이 없어 아직도 거스러미를 떨어뜨린다. 옛날처럼 곡식이나 꼴을 담아 사용했더라면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해지고 짚 거스러미는 이제 더 이상 날리지 않을 텐데 그저 눈요기용으로 자리 잡은 골망태는 여전히 청소할 때마다 타박을 하게 한다. 골망태의 본래 쓰임새는 곡식을 담아두고 퍼가는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늙은 호박이 봄이 오기 전에 호박죽이나 호박떡 호박곶이 호박전이 되어 제 소임을 다해야 하듯이.


"내가  이라고 오래 살았어도  요렇게  해묵는 것은  몰랐다잉! 긍께  핑상(평생) 배워야 쓴다드만..."

엄마는 늙은 호박전 한 장을 쉬이 드셨다. 

호박죽은 적당히  식혀 먹어야 한다. 아니면  입천장이  데어 오그라진 말이 나올지 모른다. 늙은 호박죽은 아직 뜨껍다. 호박죽을 수저로 둥그렇게 휘저어 샛노란 물결을 만들며 후후 불었다. 단맛을 좋아하는 엄마는 설탕을 넣어 밤둥밤둥 떠있는 팥알과 함께  천천히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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