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좀 보시라고
자두, 국수가 되어 돌아왔다. 어제는 순대국밥이더니...
꼭 이런 걸 바라진 않지만 이 맛을 모른 척 하긴 싫다.
작업대 위에 중면 굵기의 국수 두 다발이 놓여 있었다. 둘둘 말아놓은 종이 포장지가 시중에서 파는 그것과는 달랐지만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길 건너 목사님이 주신 게 아닐까? 예상이 맞았다. 일요일 아침, 교회문이 열려있길래 얼른 자두를 가져다 드렸더니 기어코 남편 손에 국수를 쥐어 주셨다고 한다. 자두, 국수가 되어 돌아왔다.
아주 작은 규모인 교회는 우리가 이곳에 정착한 몇 년 후 식당 겸 주택이던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자주 얼굴을 마주치진 않지만 가끔 일요일 아침이면 건물 차양밑에 내놓은 화분에 물을 주는 목사님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목사님은 부활절이면 달걀과 국수를 들고 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가게에 빼꼼히 얼굴을 내미시곤 했다. 우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게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는 일로 많은 날을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있었다.
전날은 국밥집에 가져간 자두가 양푼 가득 담긴 순대국밥이 되어 돌아왔다. 어젯밤, 자두와 바꿔온 순대국밥은 우리 저녁이 되었다. 밥상에 앉아 우리는 자두를 돌려야 할 곳들을 가까운 곳부터 손꼽았다.
가게 양쪽에 있는 원룸이 제일 먼저였다. 왼쪽 원룸은 가을이면 단감을 꼭 들고 온다. 사장님은 아기 턱받침 같은 녹색 감꼭지 위에 매끈하게 올려진 주황빛 감만큼이나 밭에서 막 돌아온 싱싱한 목소리로 건네주고 가신다. 맛이나 좀 보라고. 어느 때는 배추 한 통, 서너 조각의 김장김치가 주인 없는 가게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확인 전화를 드리면 수화기 너머 한마디가 들린다. 맛이나 좀 보라고. 우리는 맛보기엔 너무도 충분한 것들을 돌려드릴 별다른 방법이 없어 간혹 원룸 사장님이 우리 사다리를 빌려 쓰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
오른쪽 원룸은 자두나무가 신세를 지고 있으니 당연하게 자두를 받아야 할 몫이 있다. 원룸 주차장 위로 자두나무가 줄기가 뻗어있기 때문이다. 자두나무에 흰꽃이 피고 푸른 그늘을 드리워 줄 때까지는 미안하지 않지만 낙엽이 질 때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 여기저기 흩어질 때면 미안함에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원룸사장님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저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컹컹 짖는 우리 강아지와 장난을 치며 비질을 한다.
이번에는 특별히 오른쪽 원룸 3층에 사는 이에게도 자두로 인사를 해야 한다. 흰 자두꽃이 필 때마다 예쁘다고 감탄을 건넬 뿐 아니라 그녀는 며칠 전 자두를 따거든 조금 주실 수없냐며 들고 가던 빵까지 하나 꺼내주며 화사하게 웃었다. 얻어먹은 빵이 얹히지 않으려면 꼭 잊지 말아야 했다.
자두나무는 이곳으로 이사 온 9년 전에도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배나무와 자두나무 한 그루씩 이웃 원룸과 경계선에 가깝게 서있었다. 건설업을 하던 전 주인이 쌓아놓은 건축자재더미와 함께 어지럽게 서있던 두 그루를 남편은 베어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하자고 했지만 이곳을 소개해준 지인과 나는 옆에 서있는 원룸건물 주차장과 사이에 녹색지대를 두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행히 배나무만 베어버리고 자두나무는 남겨두었다.
뻣뻣한 건물사이에서 자두나무는 사월 흰 꽃등을 촘촘히 달아 살포시 웃을 수 있는 틈을 만들고 꽃이 진 후 푸른 잎으로 메꾸어 놓은 다음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이면 초록 알맹이를 팽팽하게 키워낸다. 황록색으로 변한 자두알을 바라볼 때마다 시큼한 침이 입안에 고인다. 그리고 부끄러운 볼처럼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그 맛 좀 보여줘야 하는지 손꼽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주황색 옷차림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미화요원 아저씨, 몇 년 전 자두맛을 보더니 자두가 익으면 연락해 달라는 남편 친구들, 임신한 며느리 주겠다고 따러오시겠다던 꽃집 사장님도 손가락 하나 구부리는데 들어간다. 언니와 남동생들도 그 명단에 조용히 들어있었다. 다행히 자두나무는 꽤 크고 많이 열려서 스무 명 남짓한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마침 따고 있을 때 지나가는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거나 먼저 말이라도 걸어올라치면 따놓은 바구니에서 두 손으로 퍼올려 건네거나, 장대와 낚싯대를 연결해 만든 전지 끝에 매달린 양파망을 코앞에 밀어주었다. 낮은 울타리 너머 행인에게도 배달되는 그 놀이에 그 재미에 우리는 신이 났다.
"작년에도 지나가다 얻어먹었는데..."
길가는 아줌마가 먼저 아는 척했다.
"올해는 비가 잦고 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맛이 좀 덜해요."
맛이 덜할까 봐 걱정돼서 그리 아시라고 귀띔을 하고 다시 장대를 들고 따고 있으려니
"정말 맛있는데요!"
아줌마는 큰소리로 뒤돌아 말했다. 다행이다 싶다. 혹시 인심 쓰고도 맛없다고 버려버리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없잖아 있었다
"어이, 꼬맹이 학생!"
주변을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밖에 없었다.
"정말 많이 컸구나! 아주 쪼끄만 하던 애가 이렇게 많이 컸네! "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듯 소년미 물씬 나는 학생은 남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이곳에 8~9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몇 명의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길이면 가게에 들러 우리 강아지와 놀다가곤 했다. 중학생은 편의점에 아빠 심부름 가는 길이라며 금방 다시 오겠다고 했고, 남편은 편의점에서 비닐봉투한장 챙겨 오라고 뒤돌아 뛰어가는 아이에게 말했다. 편의점에서 챙겨 온 봉투에 담긴 자두를 들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맛있게 먹겠다며 그 학생은 또 뛰었다. 그 뒷모습이 너무 풋풋했다.
이십여 년이 넘게 해마다 보내주시는 보성 이장님의 어른 주먹만 한 감자도 이때 한몫했다.
"맛이나 보라고 보냈어라. 논 감 자잉께 쪄잡수지 말고 반찬이나 해 드시오."
구수한 사용설명까지 담아 도착한 감자 한 박스는 시골에서 가져온 수미감자와 자두를 조금씩 넣어 아들, 딸, 동생들에게 건너갔다. 또 방문간호를 하는 간호사 선생님과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도 맛 좀보시라고 건너갔다.
참 다행이다. 맛 좀 보라고 건너오는 여러 가지 것들에 다시 맛 좀 보시라고 건넬 수 있는 자두가 있어서.
(교회에서 들어온 두 다발의 국수 중 한 다발은 가게에 자주 들르는 어느 한분에게 맛 좀 보시라고 다시 나갔다.
그분은 어느 땐가 시골 어머니 드리려고 샀던 무엇인가를 가게에 한 움큼 남겨놓고 갔었다. 맛 좀 보라고.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게 분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