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미술을 가르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워 온 시각예술가이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미술창작과 동시에 대학시절부터 현재까지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왔다. 다양한 미술 장르 중에서도 2차원 그리기가 창작의 주된 관심사이며, 이는 미술교육의 내용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작품 활동과 미술교육을 같이 해오면서 이 둘이 갖는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예술은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성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그 결과물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또한 예술은 태생적으로 정답이 없고 공식화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기에, 내가 원하는 정도의 느낌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창작을 통해 쉽게 해낼 수 있는 것들도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내가 처음으로 미술을 과목 혹은 하나의 학습분야로 접하게 된 것은 유치원이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를 넘어, 교육제도권 내에서 나름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초, 중, 고등학교, 미술학원을 통해 미술교육을 계속 받고 미대에 진학했다. 이와 같은 미술교육제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미술공부와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 한국의 미술교육은 다소 주입식의 기술 중심 교육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틀렸다거나 나쁜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교육이 갖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경험을 더 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지금껏 받아온 교육들은 현재 내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중요한 기반을 형성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가가 개인의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다. 미술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미술교육이 개인의 예술적 잠재력을 끌어내는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은 어떻게 알아보는가? 나는 미술대학을 진학한 후에 아르바이트로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함과 동시에 어느 예고에서 미술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미술창작과 미술교육을 병행해오면서, 이 둘이 갖는 차이와 시너지 효과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미술대학원에서는 창작자로서의 나의 입장과 작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예고에서는 드로잉의 기초에 해당하는 개념과 기술을 가르쳤다. 내가 예술가로서하는 드로잉과 가르치는 드로잉에는 차이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창작자로서 드로잉을 하며 경험하는 것들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체험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술교육자로서 드로잉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해도 모든 학생들이 내 생각만큼 수업내용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학생들 간 능력의 차이도 존재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기관의 교육제도에 맞춰 하나의 수업 목표를 정해야 했지만, 이를 모든 학생들에게 일반화시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드로잉을 매개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갖는 또 다른 장점 및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일을 한다는 즐거움도 컸지만, 드로잉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드로잉의 역할과 다양한 표현기법들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나의 창작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학원에서의 아동미술, 예중/예고 입시미술, 예고에서의 기본기 교육, 미대 입시교육, 미술영재교육, 미국대학원에서의 미술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 등의 경험을 거치면서 미술 창작자가 미술 교육한다는 것이 두 분야에 갖는 의미들에 대한 질문들이 더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이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한 실마리라도 찾아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미술창작과 미술교육 간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 연구자로서,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을 보면서 새롭게 깨닫고 정리된 생각들과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들이 주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주제와 관련된 생각들, 그리고 창작자로서 미술창작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같이 정리해 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