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성향과 취향을 가능하면 한껏 발휘하는 것 말고 자기실현의 다른 방법이 있던가. '자기 자신이 돼라' - 헤르만 헤세
자영업 15년, 가게에 앉아 책 읽기 시작하고서의 6년이라는 시간은 돌덩이를 내려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2000일이 넘는 5만 시간 이상의 시간이 지났네요. 돌덩이 안에 내 모습이 있고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해 가면서 내가 될 때까지 단련해 가는 피카소 식의 자기 구현이지 않았을까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가고픈 마음이 진정한 나를 알에서 깨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점 단순해지고도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나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 모습이라고 말해야겠네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단순함을 모자람이라고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몰랐을 나의 창의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죠.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지던 시간들도 있었죠. 그럴수록 지적으로 만족스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지적이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다만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배움이죠. 나의 무엇이 사람들과 다르고 또 비슷하여 공명하는지 알아가길 좋아해요. 내가 나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지요. 그 긴 여행에서 요긴하게 쓸 지도 같은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흔들릴 테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여행이자 확장이 독서였습니다.독서라고 책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중요했죠. 읽은 책의 권수보다사람이 훨씬 많았기에 가능했던 성장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로 잘 살아가는 데에는 적절한 여과장치가 필요했어요. 그것은 마치깨끗한 물과공기 같은 것이겠죠. 또 내 안의 배설물을 깨끗이 버릴 수 있는 배수 장치도 필요해요. 그것은 정화, 치유, 휴식의다른 말일지도 모르고요. 사람들에겐 저마다 조금씩 고집스럽게 해가는 것들이 있어요. 글쓰기, 춤, 음악, 그림, 요리, 여행 등은 우리 각자가 자기 삶에 둔 순환 장치입니다. 저는 읽고 쓰고 싶은 것이겠죠. 내 삶의 순환이 잘 되도록 하는 에너지가 바로 독서입니다.
저의 독서에도 나름의 '고집', '자기만의 감각'이란 것이 있었음을 오늘 헤르만 헤세의 글을 통해 다시금 인식해 봅니다. 역시 나를 깨워주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p 109
당신의 보통에 군중이 살아가는 평균적인 삶이 아니라 고유한 삶을 영위하도록 타고났다면 그 길이 힘들지라도 당신의 고유의 개성으로 고유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도 찾게 될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저자헤르만헤세출판뜨인돌출판사발매2024.02.06.
나와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헤르만 헤세
주도적인 성장과 몰입을 무엇으로 경험하느냐는 선택이지만진짜 하고 싶은 것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 필요 없이도 스스로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겐 있어요. 거기서 '고집'과 '자기만의 감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자신이 싯다르타이자 그의 아들이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른들의 가르침과 방향에 대해 반대의 선택을 하길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싯다르타를 읽으며 느낀 바대로 아이를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가자고채근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 보니 내가 살아온 가치를 그대로 이어 전해준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요. 부모 마음은 좋은 것만 주고 싶은데 그런 일이란 쉽지 않아 보이네요. 애초에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자기에게서 올 테니까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요즘 재미를 붙인 것이 있는데 바로 수학이에요. 내년에 중학생이 될 아이의 교과 과정이죠. 아이가 무얼 배우게 되나 하는 호기심과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열었어요. 저도 예전엔 아마도 억지로 했겠지만 이제야 심심풀이라도 주도적으로 해보니 재밌는 거예요. 물론 저에겐 학습결과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재밌을 수 있겠지만요. 역시 배움은 놀듯이 그러나 몰입해서 해야 하나 봅니다.
아무튼 아이 수학 교재에서 삼차 다항식을 요리조리 계산하며 느끼는 희열이 상당했어요. 무엇보다 집중하고 성실해야 하는 풀이 작업이더라고요. 인내하고 몰입해서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더군요. 이건 예술이다. 미지수를 구하는 것.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근사한 작업이었더라고요. 우리의 삶이 미지수라는 걸 이제야 알았거든요. 수학의 매력은 이런 걸까요. 양쪽 변에 같은 상수를 곱하거나 나누어도 같은 조건이 된다는 것. 그때 나의 선택은 어쩌면 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무엇을 해도 나는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기 신뢰가 필요했던 거죠. 무엇을 하건 그 과정에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A와 B의 여집합도 그래요. A도 아니고 B도 아닌 것, 사회생활에서 그런 것을 얼른 캐치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이제 와서는 너무나 철학적으로 들리네요.
내년에 중학생이 될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스터디 카페 친구쯤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생기가 도는 저를 만났어요. 잘못하면 아이에겐 이런 엄마가 독이 될지도 몰라요. 선을 넘지 말아야겠죠. 아이의 주관을 존중해야겠고요. 아마 아이는 앞으로 뭐든 친구들과 의논하고 함께 해나가겠지만 어쨌거나 아이가 공부할 때 뒤에서 저도 공부하는 엄마가 되고 싶네요.
주말에 아이와 같이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좀 샀어요. 아이가 의지를 불태우며 문제집이 필요하다네요. 속아 줍니다. 알든 모르든, 약속을 지키든 못 지키든 경험해 봐라. 의지와 실행력이 같아지려면 엄청난 과정을 필요로 하겠지요.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저도 알거든요.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어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더 많이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내적으로 화해할수록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헤르만 헤세
사람은 뭔가 결핍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사람을 찾게 된다.
로버트 그린
게임 구매 포털사이트인 스팀에서 결제 문자가 날아와서 아이에게 전화해 보니 진짜 구해했네요.
"게임 결제했어? 뭐를?"
"수학 공부 미리 한다더니?"
"아크 샀어. 사고 싶어 했던 버전이 있어서 아빠가 하나 사줬어."
"자기는 왜 또 게임을 결제해 줬어?"
"진짜 하고 싶은 버전이라고 해서 해줬어"
하긴, 내가 책 사고 싶은 이유와 다르지 않을 테지요. '진짜 사고 싶은 책이나 게임이나'
엄마는 자기의 결핍과 희망으로 아이에게 함께 책 읽고 재밌게 공부해 보자고 말합니다. 아빠는 자기의 결핍으로 재밌게 노는 게 좋다고 PC 게임을 결제해 줍니다.
주도적인 성장과 몰입을 무엇으로 경험하느냐는 선택이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어떤 것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아도 하고 있는 것 말이죠.
싯다르타를 읽으며 느낀 바 대로 아이를 채근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는 다릅니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 보니 내가 살아온 가치를 그대로 이어 전해준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부모 마음은 좋은 것만 주고 싶은데 그런 일이란 쉽지 않아 보이네요.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자기에게서 올 테니까요.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그 길에 대한 암시다. 이제까지 어떤 인간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은 없었다.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