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백수 김한량 Jun 09. 2024

나는 담배를 사랑한다.

프롤로그

내 기억에 처음 담배를 물었던 때가 아직도 선하다. 고1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기 싫은 전학을 억지로 간 직후였다.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겉돌고 있을 때쯤 나에게도 친구가 한 명 생겼다. 얼굴도 예쁘고 소심한 나와는 다르게 성격도 털털해 동경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흡연가였다. 번화가에 놀러 갈 때 친구는 가끔 건물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곤 했다. 


"너 담배 피워?"

"어."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나에게 담배 상자를 내밀었다. 티브이에서 본 모든 정보를 최대한 모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배 한 가치를 집어 들었다. 자연스러웠어. 친구가 라이터를 들이밀었다. 라이터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에 눈이 뜨거워 살짝 놀랐지만 최대한 멋지게 윙크를 해 보이며 담배를 불에 들이밀었다. 


"너 담배 처음 피지?"

'뭐지? 분명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웠는데?' 

"아니야, 펴."


나는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친구는 호흡을 들이마셔야 담배에 불이 붙는다고 말했다. 아차차... HD 화질의 드라마에서 담배에 불을 붙일 때 배우들이 호흡을 들이마시며 볼이 미묘하게 줄어드는 것까지 캐치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짓말이 들킬 새라 식은땀을 흘리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우윀케케켁케게켁"


들이 마신 연기를 그대로 흡입한 후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기침을 해버렸다. 친구는 모르는 척해주었다. 나는 이후에도 이 친구와 놀러 다닐 때 같이 숨어 담배를 피우곤 했다. 물론 뻐끔대기만 하는 담배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탈이 나름 스릴 있었다.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담배를 사서 뻐끔 담배를 피우곤 했다. 들이킬 순 없었지만 입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앉아있는 내 모습이 꽤나 성인처럼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진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호주에서였다. 21살 즈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호주의 퍼스라는 도시에 발을 내딛을 때 내 영어는 숫자를 12 이후로 세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사회성도 내 영어 수준과 비슷했는데 완전 소심해서 '안녕'이후에 무엇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대환장 I였고 맥주는 한 잔도 못 마시는 알쓰였다. 함께 떠난 EEE 동생 덕분에 'OO 자매'로써 친구들이 모일 때 자리 하나는 얻을 수 있었지만 내 기준 너무 많은 사람 수에 누구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지도 몰랐고 남들은 취해가는데 나만 정신이 또렷한 시간이 유쾌하지는 않았따. 그나마 내가 친구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최고의 찬스는 담타(담배 타임)이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조용한 골목으로 나가는 친구 무리 속에 끼어들면 나에게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그나마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을 따라 나가서 담배를 뻐끔뻐끔 대는 횟수가 늘어나며 어느 순간 흡연자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한국으로 귀국할 때쯤에 나는 호주의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수준까지 영어가 늘었는데 나의 선생님이 술과 담배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담배는 나에게 주말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와 같은 시간을 선물했다. 각자 이야기 하느라 시끄럽던 친구들도 담배 한 가치가 타들어가는 순간에는 잠시 여백을 즐기는 여유가 생겼고, 뿜어지는 연기의 속도처럼 잠시 늦춰진 템포에 깊은 라포를 쌓을 수 있는 대화들도 오고 가곤 했다. 어색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담배보다 좋은 핑계는 없었고,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는 생각할 시간도 주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며 '라이터 있어요?'는 언제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최고의 플러팅이었다. 이렇게 적어내려가며 생각해보니 나에게 사회에서 사람 구실할 수 있게 가르친 것은 담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나는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참 사랑했다. 


담배가 죄책감이 되기 시작한 것은 서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많아지며 몸의 많은 곳에서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당연하게 담배를 가장 먼저 의심했다. 의사들은 당장 금연을 하라며 경고했다. 건강이 최고의 자산인 프리랜서이기에 나도 담배를 끊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에만 담배를 피우자', '비흡연자들 앞에서는 피우지 말자' 등의 간헐적 금연을 시작했지만 총 흡연량이 줄지는 않았다.


그러다 진짜 담배를 끊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올해 수영을 시작하면서이다. 철인 3종에 도전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km를 안 쉬고 헤엄을 치는 것이 목표인데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숨이 차서 300m 이상을 나아가지를 못했다. 물속에서 숨이 차 너무 힘들 때 지금이 바다 한가운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진짜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금연 1주일 차.  세상의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눈이 부신 형광색 옷을 입고 길을 걷는 행인에도, 나와 눈이 마주친 자전거에도, 도보 블럭에 붙은 껌딱지에도, 내 몸을 스쳐 떨어지는 낙엽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운전을 하고 골목을 서행운전하던 중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불순하게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갑자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너무 화가 나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골목이 떠내려가라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에 나조차도 너무 깜짝 놀랐다. 전혀 화를 낼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행인은 나의 소리를 못 듣고 지나쳤다. 식겁했다. 내가 미쳐가고 있다. 급하게 집에 와 인터넷 검색 창을 켜 내 증상을 적어 내려갔다. 다행이었다. 금단 증상 중 하나였다. 


'그래. 담배를 피우면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것이었어.'


결국 또다시 금연에 실패했다. 그냥 참으면 될 줄 알았다. 사실 금연이 내 사회생활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금연은 아마 개인 의지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연 클리닉을 찾아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