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그림이 좋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필요한 책과 학원은 끊임없이 지원해 주셨던 엄마덕분이었을까? 대단한 학원은 아니었지만 날 동네에 있는 학원이라는 간판조차 없었던 아주 허름한 학원에 보내셨다. 자매가 운영하는 공부방 비슷한 곳이었는데 언니가 피아노를 동생은 미술을 가르쳤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치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미술을 선택했다.
피아노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나는 음악적 재능이 없고 악보를 보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내 손가락이 건반 어디에 가야 하는지 눈으로 손가락의 위치를 계속 확인해야 했다. 천천히 하면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고 차차 피아노를 치는것이 재미있어졌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첫번째로 만난 피아노 선생님을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은사가 아닌 두가지 물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카스, 그리고 모나미 153 볼펜. 어른이 되어 되돌아 보니 그때의 피아노 선생님은 정말 많이 피곤하셨던 것 같다. 지도를 해 주실 때 선생님의 입에선 항상 박카스 냄새가 진하게 났다. 손등을 계란 형태로 만들지 못했거나 내 손이 잘못된 건반을 향해 가고 있을 때를 아주 잘 포착해 모나미153 볼펜의 심지를 날카롭게 세워 내 손등에 찌르기를 수십번.
박카스 냄새가 내 콧등을 찌르고, 모나미 153은 내 손등을 찔렀다. 그 두가지가 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피아노가 너무 싫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던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지난 방학에 그렸던 그림들이 어느새 전시장에 들어가 있었고 번쩍거리는 딱지가 붙어있다. "금상"
방과 후 미술과목을 특별히 지도해 주시던 담임선생님이 수업이 끝나고 나를 부르신다.
넌 앞으로 그림을 계속 그리면 좋겠어.
내가 잘하는 것을 나보다 선생님이 먼저 알려주신 이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는건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17살 고등학생. 꿈이 가장 많을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대에 가는것이 꿈이었던 나는 미술학원에서 데셍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어릴때 공부방 미술학원에서 잠깐 배워본 포스터를 그리는 방법과 명도와 채도차이를 나타내는 색상표를 포스터 칼라로 칠한 것 말고는 정식으로 미대에 가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미대 입시준비를 하려면 적어도 중학교 졸업 하자마자 3년을 미술학원에서 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그때는 열일곱살이면 입시미술을 시작하기 살짝 늦은 나이었다. 실제로 입시미술을 준비하던 내 친구들도 이미 여러해 전부터 홍대 앞에서 입시미술을 하고 있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홍대 정문 앞 거리에 한 줄로 길다랗게 늘어선 미술학원에서 물감이 뭍은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슬리퍼를 신고다니는 미대준비생들을 볼 때면 너무 부러웠다. 어릴때와 달리 입시반 미술학원 비용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금액이라서 등록조차 하지 못할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담을 받아보고 학원비용을 알아보다 엄마한테 걸렸다.
"이리와, 여기 앉아봐"
"엄마는 너 미술 못시켜. 알지?"
"응..."
"엄마는 자식이 많잖아. 너네들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는 못키워."
"그리고, 너 미술하면 뭐 먹고살래?"
"손가락 빨아 먹고 살꺼야?"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려서 미술로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걸려있었던 나는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싶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 감히 대들지 못했다.
마음이 시끄럽고 답답할 때 동네를 운동삼아 뛰어다니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울음을 삼키며 뛰고 또 뛰었다.
도대체 미술을 하면 왜 가난한거야?!
도대체 미술을 하면 왜 가난하다는거야? 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은채 계속, 계속 뛰었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난 원하지 않는 대학에서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다. 관심이 없던 분야이기에 전공을 살린 분야로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일했다. IT회사에서 웹담당자로 코딩을 익히면서 이곳과 적성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매 순간마다 들었다. 지긋 지긋한 회사생활에서 매일을 견디고 벼텼다. 유학을 가려고.
지금은 미대 입학과정이 많이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한국에서 미대에 입학하려면 미술학원에서 데생을 배우지도 않고 기본기도 없이 어딜 감히 지원하느냐고 코웃음을 치던 때였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대를 가는건 포기했지만 다른길이 있었다. 유학을 가서 이제는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꺼야! 당연히 엄마는 나의 유학을 반대하셨지만 미술이 돈이 되는걸 보여주겠다고 말씀드리고 유학가는걸 허락받았다.
스물여섯. 꿈에 그리던 미대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고 들어야 할 수업이 너무 많아 간혹 힘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었다. 행복했다. 영영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던 수업들은 어느새 끝을 향해 갔다. 여느 유학생들이 고생하는 만큼 나도 딱 그만큼만 고생을하고 졸업을 했다. 미대에 가는게 목표였는데 목표가 끝나니 꿈이 사라진것 같았다. 간직해 오던 꿈을 이루고 나니 그 다음은 뭘 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한 후 또 같은 상황이 닥쳤다. 졸업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타협을 했다. 아직 한국에선 미술 전공자들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지만 제일 힘들었던건 야근. 디자인 분야는 다른 부서와 달리 수정사항이 빈번히 생겨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곳이다. 늦게까지 부려먹으면 야근수당이라도 주던가! 무엇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것은 디자인 결정권자가 전공자가 아니면 여러 시안 중 항상 제일 이상한 것만 고른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에서는 디자인 일을 안하기로 결정했다.
몇 해동안 전공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다 어느순간 문뜩. 왜 또 그때로 돌아간거지? 나는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면서 살고 싶은데 꿈을 이루었던건지 혹은 꿈을 잃어버린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또 몇년이 흘렀다.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하지?
뭘 해야하지?
나는 아직도 나의 길을 찾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게 되면 언젠가 닻을 내릴것이다. 최근에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정한 이후로 갑자기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졌다. 졸업 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마도 손이 많이 굳었을것이다.
그림도 글과 같아서 마음이 우울할 땐 밝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도 예술가들의 작품 어딘가엔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 작품에 묻어나온다. 그런 심리적 작용들은 큐레이터가 사람들에게 해당 그림을 소개할 때 좋은 소스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되면 아마도 항상 밝은 그림만 그릴수는 없겠지.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림을 그리면 행복하다.
역시, 그 무엇보다
그림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