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그림책 스터디] © 기이해
관계
글 안도현
그림 이혜리
출판사 계수나무
내가 되고 싶은 '나' vs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나'
고등학교 3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독서반에 들어갔다. 당시 그림책은 어린이만 읽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어른이 읽을 수 있는 동화들을 자주 읽었다. 정채봉 시인의 수필 책이나 안도현 시인의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이 분들의 강연도 들을 정도로 그런 장르의 글들을 좋아했다.
안도현 작가의 『관계』는 어릴 시절 분명 감명 깊게 읽은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강산이 두어 번 지나 다시 읽은 그림책은 뭔가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인 도토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낙엽 아래 숨어 사는 것이 불편해서 도토리는 차라리 누구한테 발견되거나 쥐들의 먹이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갑갑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낙엽은 도토리에게 새로운 관계를 맺자고 이야기한다. 낙엽이 바라는 도토리의 존재의 의미는 도토리가 살아남아서 자신들을 도와 감찰나무로 태어나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되고 싶은 '나' vs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나'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도토리가 감찰나무가 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려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본질의 의미 그대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의미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나' 중에 뭐가 더 가치 있는 삶일까? 생각해 본다. 각자의 삶에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어떤 정답이 늘 정해져 있지는 않겠으나 최근에 필자도 이러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 바 이 부분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최근 나의 지인 중 한 분이 이런 글을 올리신 적이 있다. 이 분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친 교수님 이셨고 지금은 은퇴를 하셨다. [아래는 글 전문]
오래전부터 좋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메모해 둔 작은 노트북이 한 30 권 된다. 어제는 이 노트들을 뒤적이다가 플라톤 아카데미 최진석 교수의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강의와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강의를 들으며 메모해 두었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또 남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살려면 지켜야 할 나 나름대로의 원칙들을 적어 보았다.
1. 친구와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리고 지키기 싫은 약속은 하지 않을 것
2. 지나치게 겸손하지 말 것 (지나치게 겸손하면 너무 쉬운 사람, 너무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친구가 생긴다.)
3.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이 원한다 해서 하지 않을 것
4. 지나치게 착하지 말 것 (지나치게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너무 순진한 멍청이 호구로 대하는 친구가 생긴다)
5. 남이 나를 좋아하는지 신경 쓰지 않을 것
6. "NO"라고 말할 수 있을 것
7. 내가 남을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
이것들만 지켜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남에게서 상처받는 일은 많이 줄게 될 것이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나의 경험에서 온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오지랖이 되어 친절을 베풀었다가 너무 쉬운 사람, 순진한 멍청이가 되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청소년이었을 때의 순수한 마음이 없어져서였을까? 아니면 세월이 지나 사람들의 관계에 치이다 보니 적당히 관계 맺는 법을 알아버려서였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는 '나' 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나'도 꽤 괜찮은 삶 아닐까....
마음속에 까치밥나무 이야기는 늘 품고 있지만 내가 되고 싶은 '나'도 좋아!
어쩌다 보니 오늘만 동심을 잊은 © 기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