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덥다는 게 체감되는 날씨다. 숨만 쉬어도 더운 공기가 피부로 스며든다.
내가 주로 생활하고 있는 방은 에어컨이 없는 방이다. 에어컨은 거실에 있는데 소품처럼 보기만 했다가 요 근래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이따금 틀며 지낸다. 전기세가 무서워 안 틀고 있었지만 역시 돈이 좋긴 좋다. 무더운 여름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찬 공기가 금방 거실에 가득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만감이 교차한다.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거실엔 에어컨이 있지만 업무를 볼 땐 에어컨 바람을 못 쐰다. 그렇다고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못 쐬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상하다면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일을 보는 곳. 즉 에어컨이 없는 그 방의 문을 열어두면 집중이 안되고 불안해서 꼭 닫고 잠가야 안심이 된다. 밀폐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완벽한 밀폐는 아니지만) 컴퓨터로 업무를 본다. 근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컴퓨터 본체에서 나오는 열기가 상상이상으로 강렬해서 어느새 보면 피부가 끈적거린다. 남들이 보면 독하다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는 균열에 핀 잡초처럼 버텨야 하는 시기이다.
찜통 같은 방에서 나라고 가만히 버티는 것은 아니다. 의자 옆에 놓인 선풍기는 무조건 세게 틀고 얼음 왕창 넣은 컵에 차가운 물도 여러 번 떠 마신다. 날이 이러니 얼음을 안 찾을 수가 없어서 최근에 얼음트레이를 구입했다. 원래 얼음은 대형마트에서 작은 봉지를 사서 썼지만 날씨 덕에 이틀 만에 빈 봉지가 되고 또 큰 컵에 담아 놓은 찬물이 금방 식어서 얼음이라도 왕창 넣어야 그 찬기로 오래 버틸 수 있기에 필수불가결로 구입했다. 그런데 써보니 요 녀석 참 물건이다. 실리콘으로 돼 있어서 꺼내기도 쉽다. 밑바닥을 살짝 눌러주기만 하면 빠져나온다. 빠져나온 얼음은 큰 컵이 꽉 차도록 넣고 곧바로 다시 물을 채워 냉동실에 넣어두는 게 일상이 됐지만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마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버텼으려나 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옛날에는 얼음이 굉장히 귀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얼음마저 없었다면 나는 흐물 하게 녹아내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