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을 보고
밀정을 봤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무엇이 흠모할 만한 것이고 무엇이 혐오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길이고
무엇이 맞서 싸워야 막아버려야 하는 길인가
무엇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삶의 가치이고
무엇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규칙들인가
무엇이 교육받아야 할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교육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고
무엇을 위해서는 살지말아야하는가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하는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본받지 말아야 하는가
후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살라고 전해주어야 하는가
그러한 생각과 책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너는 조선이 독립이 된다고 생각하냐?"
성공이 된다고, 자신이 그 성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했을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짐승보다 못한 죽음,
이들은 그렇게 죽었는데...
어린 소녀 유관순의 죽음
고문 와중에도 "조국을 위해서 바칠 목숨이 두개이지 않은 것이 아쉽다"던
의열단원들의 결심과 죽음
일본에서 수많은 의심을 받았지만, 그를 믿어준 김구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에 목숨바친 이봉창
일본군대에서 훈련받았으나, 성공의 가도 대신 독립전쟁에 참여한 독립군들
일본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중국의 광복군 3지대에 도착하여 활약한 내 할아버지 김문택의 삶,
이들은 성공을 꿈꿨을까?
김구는 같은 민족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에 의해서 암살당해 죽었고,
김원봉은 광복 후 고국 땅에서 친일파 노덕술에게 고문당하면서 3일 밤낮을 꺼이꺼이 울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존경한다던 안창호는 깔끔한 양복 속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털이 덥수룩하고 옷이 헤진 죄수복 속에서 죽었고,
동양 평화를 외치던, 어떤 이들이 보면 정신병자일 안중근은 형장에서 고문받고 죽고,
중국 지도자들이 치켜세우고, 중국 민족운동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된 윤봉길은 잡혀서 총에 죽고,
그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야말로 개같은 죽임을 당했는데,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독립운동사나 혹은 인권 운동에서
소수 약자들을 위해 싸우며, 권력 체계에 대항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식인데
마틴루터킹 목사도...
이들의 독립전쟁, 독립운동의 성공으로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했을까?
결론적으로 보자면, 국제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의 패망은 미국의 참전과 연합국의 승전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일본 국왕의 무조건적 항복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역사 속에 어떻게 남을 것인지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독립운동 그 자체의 성공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성공에 집착하지 않았다. 결과에서 자유로웠다.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인륜, 인류애 이러한 것들에 자신의 운명을 던진 것이다. 그러한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성공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며, 선택한 자들은 친일로 변절한 자들이다.
누구나 살면서 역사 속에 어떻게 남을지 한 번은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 분들이,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한 것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삶은 영화 속의 표현 그대로 거지의 삶이었다.
"거렁뱅이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장관이고, 그 장관이 독립자금구하러 구걸하고 다니고. 아이구 나는 그렇게는 못삽니다."
인간은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하고 추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히틀러가 대량학살을 했고, 일본 제국주의가 대량학살을 했고,
또 수만은 collaborator들이 있었다. 그 협력자들에 대해서, 한나아렌트가 지적했었다.
"이들은 가정에서는 매우 훌륭한 가장이었다"
이제 개봉하는 영화 자백에서 나오는 국정원에서 권력에 빌붙어서 사는 일부 인사들,
역사가 치욕스럽게 기억할 그 원세훈, 김기춘 이런 사람들의 삶의 궤적도 마찬가지이다.
강신명인가 그 경찰총장도 마찬가지이고,
가족들은 아주 난리가 났더라. 자기 남편 보호한다고 아내가 나서고,
자기 아빠 존경스럽다고 아들 딸이 사진찍어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강신명)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인권이 사라진 그 시대에
개인 삶의 수많은 구석에서 수많은 선택이 있었다. 누구도 비켜가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영역에서는 어떤 직업에서는 일어났다
같은 법조인 중에서도 친일을 택한 자가 있고, 억압받는 소수민족을 위해 일한 자가 있다.
종교인 중에서도 친일을 택한 자가 있고, 좁은 길을 간 자들이 있다.
난세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점에도 수많은 선택이 일어난다.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개인적 성공을 위한 선택,
인간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는 선택
성공을 숭배하는 사회
그런데 지금 사회에는 성공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1등만 하면 무엇을 하든지 괜찮다.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한다, 뭐 1등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본적인 철학 마저도 무시하는 사회 풍조를 만들었다
천박하다.
한경직, 증조할아버지 김정선의 친구였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한경직은 신사참배를 했고, 증조할아버지는 그런 친구를 버렸다.
한경직은 광복 후에 영락교회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그의 친일행적을 아는 증조할아버지는
"나는 신사참배한 사람과 함께 안한다"고 거절했다.
김구 선생은 한경직 목사를 "그 돈으로 건물 세울 거면, 어려운 사람들 도우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 사람이 한국 종교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반면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안해서, 교단에서 버림받고,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야 여론을 봐서
얼마 전에 기껏한다는 게 "목사직을 복권"한단다. 미친 종교계의 종사자들이다.
복권을 한다는 건, 지금의 결정은 옳았고, 결정을 번복한다는 건데
지금 영화에서 반복되는 독립운동의 영웅들은 다 억울한 죽음과 어려운 삶을 살고,
당시 만주군에서 활동하며 피지배계층의 등골을 빨아먹으면서 성공가도를 추구한 사람들,
박정희, 백선엽 같은 사람들은 남한 사회의 주류가 되었고,
같은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베트남에 참전해서 사람들을 죽인 게 자랑이라고, 그런 것을 자신의 전공이라고 내세우는 무식한 군인들도 있다.
우선 친일과 신사참배 (한마디로,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철학에 굴복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기본적 교리에도 위배되는)에 있어서
증조할아버지 김정선의 친구였던 한경직 목사
그리고 그 영락교회의 일종의 청년부 같은 집단에서
"공산당 척결"이다라면서 사람들을 죽였던 서북청년단과의 연관성....
이런 역사에 대해서
그러니까 한국 현대사에서 자신들의 종교세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없고,
종교계에 갇혀서,
뭐 교회도 세계 1위 크다를 떠들고, 가장 빨리 성장했다 따위가 성공의 기준이고,
우리 교회 크다, 이런게 자랑 거리인 수준은
오늘 날과 같이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생각할 줄 아는 사회에서는
아주 수준 낮은 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이 당연하다.
친일파 자손 대부분의 경우 마찬가지이지만,
나의 고려대 경영대 대학동창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지인이긴 했지만, 그 생각에 감명을 받아본 적이 없고, 공감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비행기를 팔아서 돈을 벌고
적극 협조한 유명한 친일파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대학동창 중 한명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면,
이는 반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너는 정의롭지만 약해"라고 말하는 훈계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할아버지가 살아온,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살아온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길에 대한
이들의, 한마디로 친일파 집안의 해석에 대해서 의구심을 넘어서 한숨을 만들어낸다.
이 사회는
현실적으로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득세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 3대까지 망한다고 하고,
또 그것이 내가 할아버지와 집안에서 들어온 사실이지만,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본받을만하며,
무엇을 반성해야 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해야하는가
에 대한 기준이 없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말해야 하는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정화 교과서는 어찌하여 역방향으로 가는가.
또 다시 그 주체들은 친일파인가.
끝나지 않는 역사의 고리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친일파 문제가 7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아서 억울하다거나
잊어야 하는 과거에 집착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똑같은 질문이 오늘 우리의 삶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의 이름을 남길 것인가
라는 질문 속에서
사람들의 대부분은 회피하고, 망각하고 있고
소수는 적극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
나의 그 대학동창 친구는, 성공적인 삶을 아마도 살고 있다.
나는 그가 거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무언가 권력지향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을 보아왔고,
왜 하는가에 대한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없이
교회는 열심히, 종교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그저 그게 좋은 성공의 길이니까 시험을 보고
그저 그게 빠른 승진과 권력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이니까 미국 MBA에 간다
이런 식의 삶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서,
이건 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서 부모님은 어떻게 가르칠까
그의 할아버지는 어떤 가르침을 줄까
"나도 그랬으니, 너도 성공해라....."
아니면
"부끄러워해라"
그러한 이야기 속에 자신의 삶의 방향이 어디로 설정되어있는지를 모른채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 자신의 권력지향적 속성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은 본인은 모른채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각 자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까
철학이 없는 기술자들,
공감능력을 상실한 직업인들,
명령에 복종하는 부속품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를 들어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적이 있을까
혹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노력을 했을까
참으로 위험하다
지인이 있고, 동지가 있을찐데,
누구나 지인은 될 수 있지만,
동지는 아무나 될 수가 없다.
그러나 특정한 인물들에게 닥친 운명같은 순간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송강호에게 닥친 이런 계속되는 운명의 끈 같은 것들은
그의 모호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악마로 만들 선택의 순간들을 계속 강요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운동을 위해서 투신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선택의 순간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