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이 호러가 되는 순간
"시간은 금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이 명언은 현대인에게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 (The 8 Show)>를 보고 나면, 이 말이 더 이상 격언이 아니라 '협박'처럼 들리게 됩니다.
여기, 8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8개의 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돈을 법니다. 꿈같은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곧장 우리에게 자본주의의 민낯을 들이밉니다. 아주 불쾌하고, 블랙 유머가 뚝뚝 묻어나는 방식으로 말이죠.
드라마 속 세상은 참으로 공정하지 못합니다. 참가자들은 제비뽑기 하나로 자신의 '시급'이 결정됩니다. 1층은 분당 3만 원, 8층은 분당 34만 원. 누군가는 "운도 실력"이라며 웃어넘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층 입주자가 아무리 밤새워 계단을 오르고, 똥물을 뒤집어쓰며 노동을 해도, 가만히 펜트하우스에서 와인을 마시는 8층의 자산 증식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이 불편한 설정이 기시감을 주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기 때문이죠.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수저의 색깔이 평생의 '시급'을 결정하는 사회. 드라마는 이 구조적 부조리를 '게임'이라는 껍데기를 씌워 적나라하게 비웃습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고요? 글쎄요, 1층에서 8층으로 이사 가는 건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쇼의 규칙 중 가장 섬뜩한 지점은 바로 "시간을 벌고 싶다면 주최 측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즉, 돈을 더 벌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쇼'를 벌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요? 좋아요와 조회수를 위해 기괴한 춤을 추고, 혐오를 전시하고, 타인을 깎아내리는 현대의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거대한 CCTV 앞에서 "제발 나를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는 광대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요?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는 이를 '스펙타클의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곧 권력이 되고 돈이 되는 세상.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은 '재미'라는 상품 앞에서 가차 없이 편집됩니다.
<더 에이트 쇼>는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인간의 탐욕을 비웃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웃음기가 싹 사라집니다. 화면 속 잔혹극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했을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몇 층에 살고 있는가? 아니, 나는 누군가의 8층 생활을 위해 내 시간을 헐값에 팔고 있는 1층은 아닌가?"
만약 당신이 오늘도 출근길 지옥철에서 "이놈의 회사 때려치워야지"를 되뇌면서도, 카드값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미 <더 에이트 쇼>의 성실한 참가자입니다. 다만, 퇴근 버튼이 없는 쇼라는 게 함정이지만요.
이 드라마, 씁쓸하지만 추천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쳇바퀴를 돌리는 이유가 '나' 때문인지, '시스템' 때문인지 한 번쯤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내 시급이 오르진 않겠지만 말입니다.